서구 전통에서 몸에 대한 사고는 세 가지 분류 기준에 근거해 있는데, 그 기원은 역사적으로 보면 베사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에서 유래한다. 즉 그는 몸과 관련하여 세 가지 분리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인간은 자신 안에서 (몸과 인간, 영혼과 몸, 정신과 몸 등등으로) 분리되며, 둘째, (공동체적 사회 구조에서 개인주의적인 구조로 이행됨으로써) 인간은 타인과 분리되며, 셋째, 우주(우주와 인간은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는다. 우주와 몸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몸은 자신의 내적 논리에 의해서 규정될 뿐이다)에 의해 분리된다. 이러한 베살리우스의 전통은 후대에까지 이어진다. 즉 인간 육체의 물질성을 인정하는 대부분의 이론들은 항상 개인주의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회 이론들과 결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구 전통에서 몸이란 '개체화의 원리'로서 기능해 왔을 뿐만 아니라, 주체의 실재성을 설정하고 타자와 구별짓게 하는 경계석 역할을 해왔다.
--- p. 215
어빙 고프만은 낙인 찍힌 사람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노인을 제외하지 않고 있다: "보통의 사회 관계 영역에 속하지 못하는 개인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 특징으로 인해 우리가 그와 마주치게 되면 쳐다보고 등을 돌리게 된다" 평범한 사회성이라는 관점에서, 노년을 구분짓고 다소 조심스럽게 사회적으로 소외시키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낙인이 지니는 시회적 역할을 엿볼 수 있다. 노인은 때로는 낙인 찍히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낙인은 노인이 속해 있는 사회 계급과 가족이나 친지들의 포용력의 정도에 따라 그 영향력이 다르게 나타난다.
오늘날 노년은 유동적이며, 다소 비현식적이며, 근대성 속에서 방황하는 인구 집단으로 구성된 '회색 대륙'이다. 세월은 더 이상 경험과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은 더 이상 낡아 버린 몸에 존재하지 않는다. 노인은 조금씩 상징적 의미를 잃업리게 된다. 노인은 젊음, 유혹, 생기, 노동과 같은 근대성의 주된 가치에 상반하는 존재가 된다. 젊음을 예찬하고 노화와 죽음을 상징화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노화가 가지는 이미지는 끔찍하다.
--- pp. 167~168
몸에 관련된 표상과 지식들은 사회적 지위와 세계관에 예속되어 있다. 특히 세계관에 있어서는 구체적으로 인간을 정의하는 방식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몸은 상징적 구조물이지 그 자체로서의 실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몸은 사회마다 야릇하고, 괴상하고, 모순된 특징과 의미가 부여되는 무수한 표상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몸을 당연히 우리 눈에 비치는 단순한 실체로 생각한다. 하지만 몸보다 더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대상은 없다. 몸에 관련된 담론들은 사회문화적 특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 몸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을이루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가장 중요한 인식론적 기반은 해부생리학, 즉 생의학적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론을 근거로 하여 서구적으로 독특한 인간 개념이 성립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통상적으로 소유의 형태로서 '내 몸'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 특징을 엿볼 수 있다.
--- pp. 17~18
인간의 몸에 대한 현대성이 지향하는 목표는 외관상 서로 다른 두 갈래의 길로 표출된다. 하나는 부족한 정보와 육체의 취약성에 근거하여 몸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일이다. 이러한 인식 경향은 그노시스파가 설파한 신비철학적인 사고방식과 일맥상통한다. 즉 몸은 인간 조건의 저주받은 몫이며, 인간을 거추장스러운 육신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과학 기술을 통하여 성형이 필요한 부분에 불과하다.
또 다른 하나는, 이와는 정반대가 되는 길로서, 감정을 고양시켜 몸을 통해 구원받고, 외모를 가꾸어 가능한 최대의 매력을 발산하려 하며, 젊게 보이기 위해 세심한 관리를 하고, 몸매에 집착하는 등 이른바 일신의 건간과 복지를 추구하고자 하는 길이 있다. 최근 현대 사회에 접어들어 자본시장은 몸을 특권 대상으로 삼으면서 번창하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는 특히 유행을 창조하는 있는 화장품 업계와 비만 관리 및 몸매 유지를 도맡고 있는 체육관이나 각종 에스테티크 그리고 현대인의 지친 심신에 활력을 주는 아로마테라피와 같은 자연요법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 두 경우 모두에 있어서 몸은 인간과 분리되어, 실존철학에서 일컫는 즉자로서 간주된다. 몸은 인간에게 생명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확실한 정체성의 근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 몸과 인간은 일종의 존재론적인 균열로 대립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몸매에 호소하는 광고 속의 이미지들이 종종 몸의 통일성을 조작내고 있다. 주체의 분열이라는 사회적 현상과 일치되는 이러한 몸의 분할은 현대 사회가 과거와 어떻게 단절되고 있는가를 날카롭게 보여 준다. 또한 인간 존재의 저주받은 몫이든 세속화된 사회에서 영혼을 대신하는 구원의 길이든, 인간은 자기 몸과 묘한 소외 상태에 놓여 있다. 이처럼 이원론의 현대적 해석은 인간을 자신의 몸과 대립시킬 뿐만 아니라, 영혼이나 마음으로부터 몸을 대립시키고 있다.
--- pp. 267~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