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간에 부쳐 1
존재의 큼과 전일성
성찬경 (시인, 예술원 회원)
구상 선생(이하 존칭 생략)은 ‘인간 구상’, ‘사상가·신앙가로서의 구상’, ‘예술가로서의 구상’, 이 셋이 이음매 없는 하나로 조화?융합되어 있다. 나는 전에 이런 특색을 ‘실존적 전일성全一性’이란 말로 표현한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싶을 정도다. 그리하여 구상의 생애와 존재는 문자 그대로 일세一世의 사표師表라 해도 조금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구상은 크고 따뜻한 이웃 사랑을 끝까지 실천하였다. 구상의 신앙은 물론 천주교가 주축이지만 불교와 그 밖의 종교적 상념도 폭넓게 수용하였다.
그러나 구상은 예술가로서도 드물게 보는 섬세한 감성과 동시에 우주적 포용력을 지녔고, 그의 이러한 예술적 재능은 문학 분야에서 전개되었다.
구상의 문학적 활동도 시, 비평, 희곡, 시나리오, 수필, 시사적 평문, 전통적 문화의 뿌리에 관한 연구, 서간문 등 거의 전방위적全方位的이다. 이러한 구상 문학 가운데서 시가 핵심 분야임은 여러 설명이 필요 없다.
시인으로서의 구상의 경우에도 여느 시인과는 확연히 다른 특색이 있으니, 그것이 곧 ‘언험일치言驗一致’라 함직한 그런 생각이다. 이것은 시의 언어 뒤에는 반드시 그 언어와 일치하는 경험적 진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며, 구상 외에 이러한 생각을 뚜렷이 표명한 시인을 나는 달리 알지 못한다. 이런 생각은 곧 시인의 윤리성을 강조하는 것이 되며, 이런 점에서도 구상은 심미가(예술가)와 실천을 전제로 하는 사상가를 겸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사상가로서의 구상의 존재가 워낙 크기 때문에 여기서 그의 시적 업적의 평가에 다소의 불이익이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허나 적확하고 선명한 표현, 과장 없는 진실의 표출, 동시에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메시지의 표명, 이런 점만 보더라도 구상은 시로써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에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상의 예술(시)과 인간은 서로 상호보완적이어서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그의 인간상人間像은 그의 시를 조명하고, 또한 그의 시는 그의 인간상을 부각시킨다.
삶이 문학을 조명하며 문학이 삶을 부각시키는 구상의 경우야말로 남긴 글의 집대성이 어느 누구보다도 절실히 요청된다 하겠다. 홍성사에서 그동안 꾸준히 발간해 온 〈구상문학총서〉가 이번에 완간된다고 하니,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전집이 독자 여러분에게는 삶과 예술의 큰 자양이 될 것이며, 동시에 문화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완간에 부쳐 2
믿음과 삶과 시의 합일체
김봉군 (문학평론가,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이번 홍성사의 〈구상문학총서〉(10권) 출간은 국내외 문학계뿐 아니라 사상계와 정치·경제계 등 사회 전반에 큰 화두를 던지는 희소식이다. 구상 시인은 어느 한 시대의 사조나 유파에 편승하지 않고, 동서양의 철학형이상학을 융화시켜 독보적인 시 세계를 확립한 문인·사상가·논객이며, 통섭과 융합의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구상 시인은 20세기 우리 현대사의 거센 파란 속에서도 자아 분열의 배리背理에 휘둘리지 않고 믿음과 삶과 시의 합일을 본보인 지성인의 귀감이다. 그는 자신의 시적 자아를 끊임없이 태질하여 참회의 시를 썼고, 존재의 본질 탐구에 정진한 구도자적 시인이다. 정치·사회의 부조리 앞에서는 정론正論·직필直筆로 맞섬으로써 북한은 물론 남쪽에 와서도 필화筆禍를 입고 옥고까지 치렀다. 특히 해방 직후 북한에서 박해받은 〈여명도〉 같은 시들은 그의 ‘깨어 있는 역사의식과 예언자적 지성’의 발로로서, 우리 문학사?지성사에 길이 기억되어야 할 문제작이다.
홍성사의 이 총서에는 시 538편, 극문학 작품(희곡·TV드라마·시나리오) 6편, 동화 1편과 에세이 271편, 평론?논문 30편과 논설류 144편이 실렸다. 시의 경우, 단시 538편에 연작시 156편이며, 구상 시인은 연작시 중심으로 그의 시를 줄기차게 개작하였다. 이는 존재와 사회와 역사에 대한 그의 현실 체험적, 형이상학적 사유思惟가 범상치 않았음을 입증한다. 그는 희곡 〈황진이〉, 시나리오 〈단군〉과 향가를 비롯한 우리 고전 문학론을 쓰고, 국내외의 대학에서 이를 강의하였다. 또한 가브리엘 마르셀, 프랑수아 모리악 등의 서양 철학과 문학 사상에도 심취하였으며, 가톨릭적 보편성으로 선불교를 수용하리만큼, 국량이 큰 문인이요 사상가임이 이 총서 전반에서 읽힌다.
구상 시인은 존재 일체를 영원의 투영으로 보며, 기교시를 멀리하고 주제와 표상에 등가량의 진실을 함축한 ‘유정란有精卵의 시’를 써서 독자들의 생명을 부화시키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현대시 창작 입문》과 그의 시는 그러기에 독보적이다. 《캹주 고발》을 비롯한 그의 사회 평론 역시 이 땅의 문학계와 국내외 독자 일반에 널리 읽힐 명문들이다.
그의 시가 영국·프랑스·스웨덴·독일·이탈리아 등 외국 여러 나라에서 번역·출간되고, 세계 주요 시인으로 뽑혀 노벨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을 만큼, 구상 시인은 세계적인 문인·사상가였다.
홍성사의 〈구상문학총서〉가 시인뿐 아니라 독서 애호가 모두에게 감수성 수련을 넘어 삶과 역사의 길잡이요 영혼의 양식이 될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