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의 첫사랑에게, 세상에서 태어나서 제일 슬펐던 적이 언제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과 헤어졌을 때가 제일 슬펐다고 대답했다. 그가 얼마나 슬펐는지 그와 헤어진 이후에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고통도 있었다. 누군가와 막 이별한 사람을 보면 얼마나 괴로울까 심히 안타깝다. 이별의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루하루 시간을 묵묵히 견뎌낼 수 있을 뿐.
‘이별’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풍경이 하나 있다. 어느 해 여름, 한낮에 걷고 또 걸었던 강릉 시내의 풍경이다. 그때 나는 누군가와 헤어졌고, 친구들과 함께 강릉으로 여행을 갔다. 마음을 달래려고 떠난 여행은 우울했다. 바다도, 음식도, 대화들도 모두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지친 우리는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문득 실내가 숨 막힐 듯 답답해서 나는 무작정 시내로 나와 걸었다. 한여름의 폭염은 무자비하고, 강릉 거리는 낯설기만 했다. 극도로 피로했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를 극한의 상황 속에 몰아넣고 있었다. 쓰러질 때까지 걷고 나면 이별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될 거라고,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를 떠난 그에게, 낯선 도시를 걷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토록 슬픈 나를, 그토록 떠도는 나를, 그토록 서성이는 나를. 그가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그 순간만큼은 나를 지켜봐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떠난 사람이 나를 지켜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직 이별한 것이 아니다. 이별이란 누군가와 완벽하게 단절된 이후에 찾아오는, 막막한 미로를 걷는 시간이다. 이별한 직후, 한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감정은 요동을 친다. 친구에게 하소연하기도 하고, 소리쳐 울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이런 격렬한 순간들이 지나면 새벽 바다처럼 고요한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이별의 다음 단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때가 되면 우리는 기이하리만치 담담하게 시간을 헤쳐 나간다. 이별을 단번에 극복하게 해주는 드라마틱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루하루 변함없이 펼쳐지는 일상을 살아가며, 타고난 성향으로 이별을 견디어 나간다. 그것은 지극히 섬세하고 감성적인 이별의 시간이다. 우리는 계절이 들려주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도 한다. 출근길에서 남몰래 깊은 숨을 쉬거나, 책에 밑줄을 그으며 슬픔을 달래기도 한다. 그때 나 자신과 비슷한 감성과 대화의 방식을 지닌 친구가 곁에 있다면 이별을 견디기가 조금은 수월해질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이별을 감성적으로 견디어나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보낸, 다른 이에게 일일이 털어놓을 수 없던 사적이고, 섬세한 이별의 시간들을 담아 보았다. 그녀는 담담해 보이지만 열정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계절의 속삭임과 어린 날의 추억, 책의 한 구절까지, 인생이 주는 크고 작은 메시지에 쉼 없이 반응하고 있으니까. 그런 그녀 곁에는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가 하나 서 있다. 인생이 보내주는 선물과 같은 사람.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위로한다기보다, 흘러가는 마음의 결을 가만히 어루만져준다. 그리고 그녀는 서서히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이는 떠났지만 인생은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별 후,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한두 명 쯤 있었던 것 같다. 지극히 섬세하고 감성적인 마음의 촉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 ‘지극히 사적인 이별의 순간들’에 대해 들려주었다. 가령 그해 여름, 강릉 시내를 혼자 걷다가 내게 일어난 그 미묘한 감정 변화 같은 것을. 터벅터벅 시내의 외곽까지 걸어간 후 맞닥뜨린 작은 철교에 대해.
다리 위에서 흘린 눈물에 대해.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돌아서서 친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갈 수 있었는지.
고요하게 이별을 견디는 당신을 위해.
그런 당신의 곁에 머물러 있는 누군가를 위해.
이 순간도 당신을 변함없이 기억하고 있는 인생을 위해.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