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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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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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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년 03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74g | 153*225*30mm
ISBN13 9788958792994
ISBN10 895879299X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손육래
전라남도 寶城 보성에서 태어났다. 보성은 우리나라 남서부 지방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섬진강의 발원지요, 보성강과 남사르 습지가 있으며, 바다와 접해있다. 산과 강,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비옥한 토양,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무릉도원과도 같다. 세계인이 감탄하는 아름다운 녹차 밭과 세계적인 명품 녹차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2002년 수필가로 문단 데뷔
공무원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문예운동』지 공동발행인

저서
『진정한 행복』
『길따라 바람따라』
『눈길가고 발길 머무는 곳』
『행복으로 가는 테마기행』
『靑松 외길 사십 성상』
『육조거리와 정부청사 이야기』
『함께하는 계절여행』
『청송이 걸어온 길 Ⅰ』
『청송이 걸어온 길 Ⅱ』
『자연과 역사를 찾아 걷는 여행』
『신비로운 길 걷기 여행』

사단법인 KAVAS·평생교육원 교수
주식회사 볕터건축 상근 고문
사단법인 호남미래포럼 자문위원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찾아서
이번 미주지역 여행의 첫 도착지는 동부 내륙지방에 있는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 있는 오헤어 공항이었다. 우리 일행이 오헤어 공항을 빠져 나오는 시간은 정오쯤이었다. 우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와 만나 한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시카고 시내 구경 길에 나섰다.
오랜 비행시간 동안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아 정신이 몽롱한 상태라서 구경보다는 우선 숙소에 들어가 여장을 풀고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정에 따라 1871년 시카고 시의 큰 화재로 인하여 시카고 시내 일원이 대부분 불타 버리고 난 후 시카고 시를 새롭게 건설 했다는 시내 일원을 돌아보았다. 시카고 시내에서 제일 높다는 스카이 빌딩의 전망대에 올라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들이 자웅을 겨루고 있는 각양각색의 건물들과 드넓은 시카고 시내 일대를 내려다보니 역시 역동적인 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다시 구시가지와 골목에 있는 오래 된 건축물, 그리고 시청 광장 주변에 있는 피카소의 조각 작품들, 샤갈의 걸작 품인 모자이크로 만들어 놓은 그림 등을 감상하며 시카고의 거리를 돌아보았다. 16세기 폴란드의 천문학자요,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서있는 애들러 천문대 근처 호숫가에서 현대 건축의 총아요, 신건축 문화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시카고의 거대한 마천루와 끝없이 넓은 호수가 어우러진 모습을 바라보며 여행 첫날의 오후 시간을 보냈다.
둘째 날 오전에는 오늘 날의 시카고가 있기까지 파란 만장했던 지난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카고 역사박물관을 관람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생가를 방문하러 가는 길에 시카고에 왔으니, 미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오리지널 시카고 피자를 먹어봐야 한다면서 제법 먼 거리에 있는 시카고 피자 원조집을 찾아갔다.
우리 일행은 조그마한 가게에 자리를 잡았다. 피자는 아주 두툼한 빵 위에 치즈를 듬뿍 얹었으며, 치즈 위에는 빨간 토마토케첩을 충분히 올려놓았다. 한참 만에 나온 피자는 먹음직스럽게 보였으며, 질 좋은 치즈를 얼마나 많이 올렸는지 한 사람이 치즈를 늘어 뜨려보았는데, 그의 키만큼이나 늘어나기도 했다.
처음 테이블위에 올려 졌을 때는 맛있게 보였으나, 그렇게 유명하다는 시카고 피자는 우리 입맛에는 별로였다. 그래서 대부분 한 조각이요, 어떤 이는 두 조각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입맛은 각각 다르겠지만, 나는 여행 중에 먹었던 피자로는 역시 세계적으로 이름난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것이 제일 맛있었던 것 같았다.
오후에는 세계 1차 대전 참전 용사요, 종군기자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전쟁터를 두루 섭렵하기도 했으며, 세계적인 대문호로 명성을 떨쳤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태어나 유아기를 보냈던 시카고의 오츠 파크 생가를 방문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의사였던 아버지와 예술을 극히 사랑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1899년 시카고의 오츠 파크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까지 이곳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는 세계적인 대문호로서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그러나 결혼을 네 번이나 할 만큼 복잡한 여성관계로 가정생활은 결코 평탄치 못했다. 결국 여러 차례의 사고와 특히, 말년의 비행기 사고로 인한 후유증과 정신 착란증 등으로 몹시 시달려 왔다고 한다. 결국 쿠바 혁명 후 그가 생활하던 쿠바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1961년 자신이 늘 사용했던 사냥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수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우리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유아기를 살았던 시카고의 생가에 도착 했을 때에는 오월의 파란 하늘아래 뜨거운 태양이 조용한 주택가를 말없이 내리 쬐고 있었다. 생가는 자동차 길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는 그가 유아기를 살았던 이층 단독주택이 있었으며, 길 건너편 왼쪽에는 그의 일대기를 돌아 볼 수 있는 멋스러운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미국의 아이다호 주의 케첨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미국의 땅 끝 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플로리다 주의 키웨스트 해변 마을에서 세 번째 부인과 십여 년 동안 살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다. 한편, 프랑스에서 신혼 초에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스페인의 중세 도시요, 아름다운 누에보 다리가 있는 마을에서 집필을 했는가 하면, 석양 노을이 특히 멋스러운 키웨스트에서 불가 백 사십여 킬로미터 밖에 안 떨어져 마치 이웃 같기도 한 쿠바의 핑카비히아 등지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가 파란 만장했던 생의 마지막을 자살로 마감했던 곳은 그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다호의 케첨에서 머리에 총알이 박힌 시체로 발견 되었다고 한다.
그가 출생하고 유아기를 보냈던 주택은 주변에 있는 주택과 크게 다를 바 없었으며, 단독 주택이라고 하여 대지가 넓거나 건물 규모도 크지 않고 유달리 뛰어나게 화려하지도 않았다. 이 곳 생가를 방문하기 전에는 세계적인 대문호가 유아기에 살았던 집이요, 의사인 아버지와 예술을 극히 좋아했던 어머니가 살았던 집이니 만큼 크고 화려한 저택이라 생각 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평범한 사람들의 집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주변의 주택가와 같이 건물입구 계단까지 양쪽으로 파란 잔디밭이 있었고, 잔디밭에는 큰 가로수가 드문드문 서 있었다. 길가 가로수 앞에 ‘399’라는 큰 숫자는 번지수요, 그가 태어났던 때인 1899.7.21.이라고 써놓은 키 작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한편, 지하층 부분을 높이 올려 회랑을 아름다운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다. 주택은 삼층 높이로 일층 난간과 처마 부분이 타원형으로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다. 외벽 일층은 옅은 핑크색이요, 이. 삼층 부분은 연한 회색 타일과 페인트로 마감되어 있었다. 한편, 지붕 모양은 왼쪽은 원뿔 모양이요, 오른쪽은 삼각형 모양으로 서로 다르면서도 조화롭게 멋을 부려 놓았다. 이층과 삼층 부분을 서로 다른 형태로 처리하면서도 마감과 색상을 같은 톤으로 조화를 이루게 함으로서 마치 동화속의 집처럼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제법 멋을 부려 놓은 예술적인 주택이었다.
우리는 그의 생가를 방문하기 전 연락을 해 두었으므로 생가를 찾아 온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있는 나이가 든 아주머니는 우리를 친절히 맞이해 주었다. 물론 봉사자도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찾아온 문학인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더욱 친절하고 열정적이었는지 모른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만면에 웃음을 띠고 맞이하며 인사를 나눈 다음,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한 설명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성의를 다하여 열심히 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영어로 말한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비록 형편없는 영어실력이라 할지라도 설명하는 말끝마디마다 강조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라는 이름은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가 부모님과 유아시절을 살았다는 생가의 일층 넓은 응접실에는 책들이 가득 찬 진열장, 지금도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오래 된 피아노와 그 위에 놓인 악보, 젊은 시절 어머니의 사진과 어린 자녀들의 사진이 걸린 거실, 사냥으로 잡았다는 동물들을 박제하여 진열해 놓은 것들이 벽을 비롯하여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층마다 각기 다른 침실을 비롯한 식당과 주방 등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생활용품들도 그대로 진열되어 있었다. 심지어 욕실과 화장실 까지도 그때 그 모습대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까지 사용했던 시설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화장실의 변기 일부와 천정 부분에 매달려 있는 변기 물탱크는 특별하게 나무로 만들어진 특이한 것이었다. 이렇게 나무로 만들어 사용한 고급스러운 변기와 물탱크는 처음 본 것 들이었다. 우리는 1970년대부터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기제품의 양변기와 물탱크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었다. 그러니까 그 시대에 사용했던 최고급 제품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이층 북쪽에 있는 한 침실을 돌아보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얗고 이빨까지 하나도 빈틈없이 그대로 박혀 있는 해골이 탁자위에 놓여 있었고, 또 다른 신체 부위의 길고 짧으며, 크고 작은 유골들이 등나무로 만든 대바구니 같은 곳에 담겨 있었다. 놀란 나머지 정신을 차리고 해골과 뼈들이 사람의 것이냐고 물어 보았다.
우리를 안내해준 봉사자는 아무 거리낌도 없이 오리지널 사람의 해골과 뼈라고 대답했다. 왜, 주택 침실에 누구의 해골과 뼈들이 무엇 때문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의사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아버지가 인체를 연구하기 위하여 해골과 유골 등을 갖다 놓았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일층과 이층 각 실을 빠짐없이 한 바퀴 안내해 주면서 끝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다시 일층으로 내려온 우리는 몇 사람이 질문도 하고 그녀와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우리는 길 건너편에 있는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물관 건물 역시 큰 규모이거나 화려한 건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건물 정면 부분은 네 개의 하얀 대리석 원형 기둥으로 멋을 낸 이오니아식 양식으로 단순하면서도 예쁘게 만들어진 박물관이었다. 특히, 처마도리 부분을 그리스 버전보다는 좀 더 화려하면서 간결하게 즉, 처마 부분을 고사리가 둥글게 말린 모양으로 멋을 낸 건물로 이오니아식 건축양식이며, 기둥 윗부분은 삼각형 모양으로 간결하면서도 한눈에 박물관임을 알 수 있도록 고풍스럽게 장식해 놓았다.
네 개의 흰 대리석 둥근 기둥 가운데에는 꽃미남이요, 정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커다란 사진이 걸려있었다. 이 주인공이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요, 1918년 적십자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호사루타 지역의 전쟁터에 엠블런스 기사로 근무 할 때의 모습이라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으로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질 듯 꽃미남이요, 어깨가 떡 벌어진 거구의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으니, 얼마나 멋진 모습이었는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 그러나 이 멋진 청년도 세계 1차 대전 때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줄 곳 터부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집필에만 전념했던 흔히 보던 그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으니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예쁜 모습 때문이었을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여장을 시켰다고 한다. 심지어 여장을 시킨 상태로 지인들을 만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머니와는 평생 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를 평생 존경하고 따랐으며,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여성 참정권이 없던 시절에도 항상 당당하고 진취적이었기 때문에 초라한 아버지와는 대조적으로 더욱 부각 되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죽었을 때에는 곧바로 달려갔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자, 난 글을 마저 써야 한다. 돈을 부치면 가족들이 알아서 할 거다, 라고 어머니의 죽음을 무시해 버리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반발 심리가 그의 문학을 탄생시킨 셈이었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이곳 박물관 지하 전시실에는 그가 생을 마감 할 때까지 평생 동안 활동 하면서 사용했던 모든 것들을 전시해 놓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가 활동했던 다른 지역의 박물관에도 또 다른 것들이 전시 되어 있다고 한다.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했을 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을 비롯하여 그가 입었던 옷과 종군기자로 참전하여 활동했던 기록물과 사용했던 물건들이 전시 되어있었다. 또한 세계 여러나라의 전쟁터에 참가했던 기록물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가 작품 활동에 전념하면서도 때때로 즐겼던 낚싯배와 사냥을 할 때 사용했던 총과 사냥에서 포획한 꿩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짐승들의 박제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한곳에는 그를 상징하는 여러 가지 기념품도 전시 되어 있었다. 세계적인 대문호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태어나 유아기 시절을 보냈던 생가와 그가 일생 동안 활동했던 흔적들을 한데모아 전시해 놓은 박물관 등을 돌아보고 그에 대한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되었으며, 그의 여러 가지 활동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는 1923년 문단에 데뷔하여 1953년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1954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크너와 함께 미국의 근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미국 국민이 자부심을 갖고 자랑하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 한 이래 미국 내의 여러 곳과 스페인, 쿠바 등지에서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특히, 1939년부터 쿠바에 정착하여 1960년 쿠바혁명 후 절친한 친구에게 정든 별장을 넘겨주고, 쿠바의 핑카비히아를 떠날 때까지 정열적인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는 쿠바의 핑카비히아에 있는 저택은 가보지 못 했으나 언제가 꼭 한번 가볼 생각이다.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요, 오랫동안 머물면서 쿠바인들을 극히 사랑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쿠바인들은 지금도 파파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의 작품 문체는 잡다한 수식어가 없는 아주 간결한 문체지만 제3자의 시각으로 보면, 사실만 무덤덤하게 나열한 것 같다는 평을 듣는다. 즉, 감정 묘사는 거의 하지 않고 행동과 복장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자 생활을 통하여 간결하고 정확한 문체에 익숙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읽기 쉬운 글은 가장 쓰기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여섯 단어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했다고 한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즉, 아기 신발 팝니다. 사용하지 않은 제품입니다. 이런 문장이 그의 스타일 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등의 명 작품과 ≪젊은이의 모험≫, ≪소유와 무소유≫,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의 대지≫, ≪살인자들≫, ≪오후의 죽음≫ 등이 있으며, 대부분의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 되어 우리에게 더욱 친근감이 있다. 이들 작품 중 스페인을 배경으로 썼던,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는 작품은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었다고 한다.
미국 근현대사에 있어 대문호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태어나서 유아기를 보냈던 시카고의 오츠 파크 생가를 방문하고 나서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다. 2014년 스페인을 방문 했을 때 그가 작품 활동을 했던 중세도시 론다를 우연히 찾았던 적도 있다. 앞으로 기회를 만들어 그가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플로리다 주 키웨스트, 쿠바의 핑카비히아,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고향이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다호 주에서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발견 되었다는 케첨 등지도 찾아 볼 것이다.
시카고를 뒤로하고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 기념박물관과 묘소, 그리고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참배하기 위해 일리노이 주의 스프링필드로 향했다. 일리노이 주에 있는 작은 도시지만 주의 수도라고 한다. 특히, 에이 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잠들어 있는 곳이요, 워싱턴에 있는 웰링턴 국립묘지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오크파크 공동묘지가 있어 링컨 도시라고 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여덟시 경이었다. 넓은 잔디밭과 아름드리나무들이 잘 가꾸어진 묘지 입구를 지나 우선적으로 링컨 대통령 묘소가 있는 곳으로 바로 들어갔다. 우선 묘소 건물 정면에 도착하자 마자 곧 바로 성호경을 긋고 기도부터 했다.
링컨 대통령의 묘소의 건물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규모가 크고 탑 높이가 아주 높았다. 아래쪽은 둥근 원형으로 만들어 졌으며, 윗부분은 수십 미터의 사각형 높은 기둥으로 먼 곳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묘소는 물론 높은기둥 전체를 화강석으로 마감하여 부드러운 감을 주기 보다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강력한 위용의 메시지를 주는 듯 했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야 링컨 대통령에 대한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관람 시간이 지나 내부에는 들어가 볼 수가 없어 섭섭했지만, 건물 밖으로만 한 바퀴 돌아 보았다. 이곳에는 그의 아내를 비롯한 세 명의 자녀가 함께 잠들어 있다고 한다.
건물 앞에는 링컨 대통령의 얼굴 동상이 있는데, 그의 큰 코를 만져주는 사람들에게 행운을 준다고 하여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운을 빌었는지 코가 반질반질하고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미국 제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라함 링컨은 남?북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고 연방제를 고수하였으며, 노예제도를 끝내게 함으로서 미국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인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세계인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1809년 캔터기 주에서 태어나 대통령이 된 그는 워싱턴 D.C에서 1865. 4.15일 암살 되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24년여 동안 이곳에 살면서 변호사로서 활동했던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스프링필드에는 그가 살았던 집, 일했던 사무실, 박물관 등이 있어 이곳을 LAND OF LINCOLN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관람 시간이 지났다며 빨리 나가라고 한다. 그러나 수억 말리 여기까지 찾아 왔는데 조금만 더 보고 가겠다고 하면서도 행동은 서둘러 나와야 했다. 결국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 기념박물관과 집은 물론 오크파크 세미터리에 있다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 참배도 하고 싶었으나, 결국 그곳까지는 가 볼 수가 없었으니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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