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트 나이프로 터치하는 사각의 작은 점들은 점멸하는 물, 생명의 입자들이다. 물에 광선이 비칠 때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작은 분자들, 사라지는 빛의 순간, 안 보이는 것, 자꾸 변하는 것, 그걸 그리는 것이다. 그걸 색채와 질감으로 배열하는 것이다.
그 촘촘한 입자들 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낮, 광대한 바다, 내리쬐는 태양, 그 침묵의 무한 공간에서 그 많은 시간 가졌던 끝없는 명상과 대화가 수많은 겹이 되어 켜켜이 숨어 있다. 그게 작가의 영원한 재산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그림이 내게 온다, p15
1969년 어느 날 휠체어를 탄 노인이 재커리 월러 갤러리에 나타났다. 그 는 갤러리를 둘러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내 ‘우산’ 그림을 가리키며 저걸 사겠노라고 했다. 가격도 물어보지 않았고, 내일 아침 집으로 배달해달라는 이야 기만 남겼다고 했다. 갤러리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유명한 컬렉터였던 것이다. 자기가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았지만 화랑 사람들이 벌써 알아보고 아주 큰 영광이라고 했다. -유명 컬렉터의 소장품으로, p125
나는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 게 아니었다. 작은 낚싯배에 나를 띄우고 망망대해 속 한 점이 되곤 했다. 물과 하늘과 공기 사이에 파묻혀 복잡한 마음을 지우려 했다. 물고기는 잡지 않고 바다를 보고 파도를 보고 하늘을 보는 게 일이었다. 물고기가 떼 지어 가는 것도 수없이 지켜보았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색깔들, 내가 좋아하는 자연의 컬러들이 수없이 펼쳐져 있었다. 햇빛이 부서지고 물에 반사되면서 순간마다 오색영롱하게 반짝 이는 색들이 겹겹이 퍼져나갔다. 그저 푸른색인 것 같은 하늘과 바다 안에 너무 많은 색들이 있었다. 출렁이는 파도와 점멸하며 계속 변화하는 색들이 훗날 ‘물’ 시리즈가 되어 화폭에 담기게 되리라고는 그때 암울한 마음으로는 꿈 도 꾸지 못했다. -바다낚시로의 도피,p135
아무것도 내 존재 깊은 곳에서 아우성치는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주지 않았다. 해답이 없는 것이다. 그저 살아있으므로 살아야 하는 것이란 지점에 다다랐을 때 나는 자신과 타협했다. 안영일은 그림을 그릴 때 우주의 질서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리지 않은 때가 있었나? 나의 기억이 닿는 가장 어린 시절에도 내 손에는 연필이나 크레용이 들려 있었다. 내게 산다는 것은 곧 그리는 것이었다. 살기 위해선 그려야 했고, 그리기 위해선 살아야 했다. -다 버리다,p148
나는 매일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믿는다. 어제보다 오늘 더 좋고, 오늘보다 내일 더 좋은 그림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평생 그렸는데 아직도 만족이 없고, 매일 그림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요즘 부쩍 더 캔버스 앞을 떠나지 못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몸이 아프지만 않다면, 온몸을 찌르는 통증만 없다면, 발이 산처럼 부어오르지만 않는다면 나는 쉬지 않고 그릴 것이다. 이제 노쇠하고 고단한 이 육체와 영혼에는 그리고 싶다는 열망 외에 남은 것이 거의 없다. -육체의 고난,p164
그날 이후 삶의 의지를 찾은 나의 화가 인생은 크게 달라졌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다. 마치 잠잠했던 지난 몇 십 년의 시간을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나타나 전시를 하자고 하고, 작품을 사겠다고 하고, 화집을 내자고 하고, 아트페어에 나가자고 하고… 이루 다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많은 사건이 지난 2년 동안 일어났다. -다가오는 빛,p167
안영일의 ‘물’ 시리즈에서 가장 경탄스러운 것은 세밀한 기하학적 테크닉과 장엄한 물의 흐름 사이에서 느껴지는 역동적 긴장감이다. 물은 방대하고 풍성하며 신비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 그 자체를 나타낸다. 작품마다 물에 대한 그의 해석이 모두 다르고 강렬한 것은 그것이 그의 깊은 경험의 원천,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토양과 감정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스티븐 리틀 《LACMA 한국미술부 부장 겸 큐레이터》
안영일의 작품은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의 서양미술-추상과 모노크롬 언어에서 진화된 것이지만 그의 감성은 남가주의 풍경과 해변, 그리고 1960년대 미국 현대미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빛의 화가 제임스 터렐과 마찬가지로 그가 추구하는 것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다. -크리스틴 Y. 김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