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앨리스는 강둑에 언니와 함께 앉아 있는 것도, 아무 할 일이 없는 것도 못 견디게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언니가 읽고 있던 책을 한두 번 훔쳐보기도 했지만, 책에는 그림도 대화도 나오지 않았다. 앨리스는 생각했다. ‘아니, 책에 그림도 없고 대화도 안 나오면 무슨 소용이람?’ 그래서 앨리스는 귀찮더라도 일어나서 데이지 꽃을 따다가 꽃목걸이를 만들면 재미가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날씨가 무척이나 더워서 졸리고 멍한 기분이었기 때문에 그럴 법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분홍색 눈을 한 하얀 토끼가 앨리스 쪽으로 뛰어왔다. 아주 특별히 이상할 건 없었다. 앨리스는 토끼가 “아, 세상에! 세상에! 이러다 늦겠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렇게 특별히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1장 토끼 굴속으로」중에서
“저, 잠시만요, 선생님…….”
이 소리에 토끼는 화들짝 놀라더니, 하얀 장갑과 부채를 떨어뜨렸고, 그러고 나서는 온 힘을 다해 어둠 속으로 잽싸게 뛰어갔다. 앨리스는 부채와 장갑을 집어 들었다. 복도 안이 무척이나 더웠기 때문에 앨리스는 계속 부채질을 하면서 말했다. “어머나, 정말, 오늘은 모든 게 다 이상하네! 어제는 모든 일이 평범했는데 말이야. 밤사이에 내가 변한 게 아닐까?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난 어제랑 똑같았던 걸까? 뭔가 약간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내가 만약 어제와 같지 않다면, 다음 질문은 ‘도대체 난 누구지?’라는 거겠지. 아, 이건 정말 엄청난 수수께끼야.” ---「2장 눈물 연못」중에서
“체셔 고양이님.”
앨리스는 조금 주저하면서 말을 걸었다. 이름을 부르는 걸 좋아하는지 아닌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양이는 조금 더 크게 미소만 지어 보일 따름이었다. ‘지금까지는 기분이 좋아 보여.’ 앨리스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그건 네가 어디에 가고 싶은 건지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고양이가 말했다.
“어디든지 저는 별로 상관없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그러면 어느 길을 가든 문제없어.” 고양이가 말했다. ---「6장 돼지와 후추」중에서
가짜 거북이는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지느러미 뒷부분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가짜 거북이는 앨리스에게 말을 꺼내려 애를 썼지만 계속 흐느끼는 바람에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목에 가시 걸렸을 때랑 똑같네.” 그리핀이 말했다. 그리핀은 가짜 거북이의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가짜 거북이는 목소리를 되찾고 다시 말을 이었다. 뺨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넌 바닷속에서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을 거야.” (“네, 없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그리고 또 바닷가재한테 인사한 적도 없겠지.” (앨리스는 “전 먹어본…….”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절대 없죠”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바닷가재 카드리유가 얼마나 재밌는 건지 넌 정말 모를 거야.”, “맞아요, 몰라요. 그게 무슨 춤인데요?” ---「10장 바닷가재 카드리유」중에서
왕이 탁자에 놓인 타르트를 가리키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저것보다 더 명확한 건 없다. 그럼 계속해 보지. ‘그녀가 화를 내기 전에’, 여보, 당신이 화를 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소?” 그가 여왕에게 말했다.
“있을 리가요!” 여왕이 화난 목소리로 말하면서 잉크병을 도마뱀에게 던졌다. (불쌍한 빌은 손가락으로 석판에 글씨를 써보다가 아무것도 써지지 않자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얼굴에 조금씩 흘러내리는 잉크를 찍어서 그것이 없어질 때까지 부랴부랴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화내다’라는 단어는 당신하고 잘 안 어울리는구려.” 왕이 미소를 머금고 법정 안을 빙 둘러보았다. 장내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말장난한 거야!” 왕이 성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제야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12장 앨리스의 증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