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국내 처음으로 '스와힐리어 연구'라는 제목으로 문법서를 낸지 꼭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때는 귀국한 지 얼마 안 되는 시기였기에 유학시절의 열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공유할 수 없는 기이한 흥분의 감정이 그 책 안에 있었다. 하지만 문법 기술에서 요구되는 정연한 논리와 분석의 깔끔함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어설프고 엉성한 구석들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회화나 강독 구문까지 포함시켜 실용적인 측면이 있기는 했으나 문법 기술이라는 고매한 이상이 상당히 흐려졌던 것이다. 17년이 지난 2003년 초 '스와힐리어 문법 구조'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문법서가 출간되었을 때 나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학 출판부에서 보다 세련된 모습으로 책이 나왔다는 것도 있었겠으나 이전 책에서 나타난 흠들이 많이 보완되었기 때문이었다. 문법 기술의 정도를 조금 더 지켜 나가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세세 항목에서 그간 생각했던 아이디어와 분석 결과들이 반영되었다. 서구 학자들에 의해 개발되고 발전된 언어 이론들이 스와힐리어 구조 분석에 십분 활용되는 가운데 나 자신의 생각이 어우러졌다. 독자들이 얼마나 그걸 감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걸 떠나 이 텍스트를 보는 나 자신에게는 뿌듯하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을 써 세상에 낼 때에는 남들이 하지 못한 그 어떤 흔적이 적어도 있어야 한다고 평소 생각했었다. 새로운 언어 연구 결과가 해가 바뀔 때 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나의 것은 진부하고 보잘 것 없기 그지없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다.
2003년 나온 초판의 텍스트를 보면 오류와 불명확함이 적지 않았다. 그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으로 내심 제자, 후학은 물론 독자들에게 송구스럽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8년이 지나 이제 다시 재판을 찍게 되었다. 동-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를 방문했을 때 현지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스와힐리어 학습을 위해 이 책을 쓴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실용적인 측면과 이상적인 측면은 항상 상충되었다. 이미 밝혔다시피 나는 보다 완벽하고 독창적인 스와힐리어 문법기술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많은 독자들은 실제적인 목적을 우선시 하고 있고, 그리고 나는 어느 정도 그것에 부응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런 모순된 양면들이 서로 뒤얽혀 있는 것이 이 책의 모습인지 모른다. 초판에 나타났던 오류와 불명확했던 부분들을 중심으로 수정과 보완 작업을 했다. 다시 한 번 스와힐리어와 인연이 닿아 이 책을 읽을 재야 독자들에게 미리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특별히 스와힐리어 문법 연구에 일생을 걸 미래 후학에게는 마음 속 깊은 격려의 말을 간곡히 전하고 싶다. --- 「2판 서문」중에서

1983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스와힐리어과가 창설됨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어를 연구하고 교습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에는 2000여 이상의 언어들이 있는데 이 중 세계 12대 언어이자, 흑아프리카 대륙을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언어가 스와힐리어이다. 이 언어가 우리나라에서도 연구 및 학습의 관심대상으로 부각되게 된 것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언어를 한국의 외국어문학 연구 일환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저자는 1978년 당시 서독 쾰른대학으로 유학을 한 바 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전 스와힐리어가 쓰이던 동-아프리카 탕가니카와 르완다, 부룬디를 식민 통치하는 과정에서 현지 언어인 스와힐리어 연구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독일의 반투어학자 칼 마인호프(Karl Meinhof)는 스와힐리 철자법 및 표준어를 정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선교사인 루드비히 크라프(Ludwig Krapf 1850)는 일찍이 몸바사에 진출하여 스와힐리 문법 연구에 초석을 심었다. 쾰른에서 저자는 탕가 출신의 아담 하산(Adam Hassan) 선생과 탕가니카 유명 정치인이기도 했던 카셀라 반투(Kasela Bantu) 선생에게 스와힐리어를 배웠고, 이 언어의 문법구조와 언어학적 기술에 대한 학술적 기초는 하이네(Bernd Heine) 교수와 묄리히(Wilhelm M?hlig) 교수에게 지도를 받았다. 1984년 콩고 민주공화국의 동부 샤바지방에서 쓰이던 샤바-스와힐리어에 대한 언어사회학적 배경과 그 언어-구조적 특징을 연구하여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귀국하여 스와힐리어 강의를 시작했다.
이후 스와힐리어과는 아프리카어과로 과-명칭을 바꾸고 스와힐리어 이외에 서-아프리카의 하우사어, 남-아프리카의 줄루어 및 아프리칸즈어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20여 년이 흐르면서 우리나라에서의 스와힐리어 연구 및 학습이 이루어져 몇 차례에 걸친 관련 논문들(예컨대 권명식 1989, 1993, 1995, 1996, 1997, 1998, 1999a,b)과 단행본들(사전, 회화, 작문, 문법 교재)이 나왔다. 그러나 보다 체계적으로 언어학적 전문 개념을 바탕으로 한 기술은 별로 주어지지 않아 일반 학생은 물론 일반 언어학, 특히 언어보편론이나 유형론을 하는 학자들이 참고할 만한 전문 저술은 부재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사실 이제까지 연구한 내용을 포괄적으로 정리하여 한 권의 문법책으로 꾸며 본 것이다. 기본적인 틀은 권명식(1986) '스와힐리어 연구'를 따랐으나 이론적 설명이나 내용을 개선코자 했다. 쾰른 대학 일반 언어학과에서 자일러(Hansjakob Seiler) 교수와 레만(Christian Lehmann) 교수의 지도 하에 일반언어학 이론을 공부하였고 이후 그들의 주 관심사였던 언어보편론과 유형론적 접근 방식이 스와힐리어 문법 분석의 주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오늘날 언어이론은 특히 문법화(grammaticalization) 이론과 인지 언어학 이론으로 발전되고 있는데 그 정신이 그 바닥에 깔려 있다. 그러나 가급적 이론적 내용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상세하게 기술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다른 기회를 이용하여 논문 형식으로 다루고자 한다. 일반 스와힐리어 학습을 위한 구체적인 사례들과 연습 예문 등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설명들을 상세하게 덧붙이다 보니 일반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이론적 기술이라는 측면에서는 일관성과 명료함이 상대적으로 크게 저하되는 부정적 결과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반대로 설명 도중 언어학적 이론을 소개하며 전문 용어 및 개념을 제시하다 보니, 단순히 스와힐리어를 학습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난해하고 현학적이기까지 한 인상을 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측면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심심한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독일의 크라프(L. Krapf), 영국의 스티어(E. Steere 1908) 주교, 프랑스의 사클레(Sacleaux 1909)로부터 시작된 스와힐리어 연구는 이후 런던대학의 에쉬톤(Ashton 1944), 페롯(Perrott 1951), 그리고 미국의 롱멘(Longman 1965)을 통하여 소위 전통 학교문법(School grammar) 형태로 기술되고 또 대학에서 교수되었다. 1960년대 구조주의 언어학이 널리 알려지면서 보다 전문적인 문법 기술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텍사스 대학의 폴로메(Polom? 1967)에 의해 이루어졌다. 변형생성문법의 등장과 함께 스와힐리 문장 구조를 설명한 스와힐리 통사론이 비탈레(A. Vitale 1981)에 의해 기술됨으로서 스와힐리어 연구에 보다 전문적인 접근이 이루어졌다. 구소련(Myachina 1981)이나, 독일(Brauner/Herms 1979, Shivutse 1971),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많은 개별적인 문법 기술서가 반투어 연구와 병행하여 이루어졌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저자는 스와힐리어 문법, 혹은 스와힐리어학 세미나 강의를 해 오면서 학생들과 많은 주제들을 토론하였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된 많은 새로운 사실들과 통찰을 이 책 속에 나타내고자 했다. 지면을 빌어 나의 학생들과 학과 교수들, 그리고 주변에서 소리 없이 격려와 도움을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끝으로 이 책을 출판해 준 한국외대 대학출판부에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