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환은 길 위에서 과거와 현재를 만나고, 세상을 느끼기 위해 늘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다.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하고 잡지사와 신문사를 거치는 동안 여행기자로 일했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이 어렵고 재미없어하는 이 땅의 역사와 문화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글 쓰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 답사여행 100배 즐기기 조선 500년 풍류지를 찾아서 조선왕조 상식여행 내 마음속 꼭꼭 숨겨둔 여행지 문화유산 상식여행 대한민국 최고 인기 여행지 100 등이 있다.
고난은 우리에게 고통과 좌절만 안겨주는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사람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해인사를 보면 문화와 예술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고려는 몽고군의 침략으로 무참히 짓밟혔고, 유수한 문화유산이 화마에 사라지는 시련을 겪었다.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우리 민족은 불력으로 고난을 극복하고자 팔만여 장에 달하는 경판을 제작했다. 민족의 암흑기에 불세출의 명작인 고려대장경판(일명 ‘팔만대장경)’과 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장경판전을 탄생시킨 것이다. - 22p 해인사 장경판전 중에서
토함산 자락 깊숙한 곳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들어선 석굴암은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품으로 손꼽힌다. 둥근 법당 가운데 당당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본존불은 돌을 깎아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명감이 넘친다. 깊은 명상에 잠긴 듯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표정은 신라 불상 중에서, 아니 전 세계의 모든 불상들 가운데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만큼 뛰어나다. 이뿐만이 아니다. 석굴암의 건축 구조와 각 불상의 위치는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신라의 독창적인 기술과 사상이 담겨 있다. -69p 석굴암·불국사 중에서
비원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붙여졌다. 일제가 후원을 비밀스럽고 음흉한 곳이라고 깎아내리기 위해 지었다. 심지어 창덕궁 자체를 비원이라 해서 격하했다. 아직까지 후원을 비원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이들의 수가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는 데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도움이 되고 있다. -101p 창덕궁 중에서
수원에 신도시를 건설하려는 왕의 계획이 발표되자 중앙 대신들 사이에 반대가 없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그런 반대는 표면화되지 못했다. 왕권이 신권에 비해 월등히 강해서가 아니다. 아버지의 무덤을 좋은 자리로 이장하려는, 즉 ‘효의 실천’이라는 명분에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국가이념인 유교는 무엇보다도 효를 중시했다. 나라에 대한 충보다 앞서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라고 생각하는 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