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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계단을 보라

남쪽 계단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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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7. 25, 2판1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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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7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29쪽 | 502g | 153*224*30mm
ISBN13 9788933801390
ISBN10 893380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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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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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내가 다시 그녀를 본 것은 불과 십 분 후다. 허겁지겁 집에 들렀다 나와 내가 다시 단풍나무 길로 들어섰을 때, 그녀는 아까처럼 전방 오십 미터 지점에서 하늘빛 옷자락을 흔들며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쪽 꼐단 위에 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걷고 있는 단풍나무의 길에서 말이다. 이를테면 십 분 전에 돌아간 영사기의 필름을 거꾸로 다시 돌리고 있을 때와 같은 형국이었다.그동안에 변한 것이라곤 손목시계의 분침이 열 개의 눈금을 지나친 것밖에는 없었다. 또한 이번에는 서류가방 안에 보고서가 제대로 들어 있다는 것 정도밖에는.
그녀는 남쪽 계단을 또 느릿한 걸음으로 올라가서는 잠시 멈춰서 이쪽을 스윽 돌아보더니 곧바로 전철역 안으로 사라졌다. 무엇에 씌인 듯 나는 부리나케 전철역으로 띄어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어디로 갓는지 그녀의 모습은 갑족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잠시 후 꽤애 하고 승강장으로 전철이 들어왔으므로 나는 머뭇거리다가 맨 뒤쪽 칸에 올라탔다.
회사까지 오는 동안 나는 완전히 멈춰져 있던 그 십 분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예기치 못했던 그 일로 하여 나는 돌연 중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잠을 못 잔 탓이려니 싶었지만, 그래서 허깨비를 본 모양이라고 치부해버리려고 했지만, 나는 피사의 사탑처럼 이미 중심 각도가 기울어져 잇는 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그때부터 나는 <세계>의 십 분 앞이거나 혹은 십 분 뒤인 곳에 있게 되었다고 하는 묘한 생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 p.64-65
그래, 그러나 다시 멋쩍은 타인으로 돌아가 서로 건너편에 서서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에 어른거리는 당신의 더운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불러도 서로 들리지 않는 멀찍한 거리에서 우리는 만난다. 가끔은 팽팽해지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하는 그 거리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가 타인이며 또한 이렇게 모두가 타인이 아니다. 그래, 나는 자주 부싯돌 같은 마음을 꿈꾼다. 겨우 환해졌다가는 이내 눈귀를 막고 단단한 어둠으로 스스로 돌아갈 줄 아는...
--- p.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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