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만세, 대한민국만세….”
순간 성재는 느닷없이 연거푸 몇 번을 소리쳤다. 목이 터져라하고 부르짖었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반사적으로 악을 쓰며 부르짖은 것이다.
“야 임마, 네 애비처럼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를 것이지 대한민국만센 왜 불러, 이 자식이 죽고 싶어 환장했나 너도 죽여줄까?”
총구를 성재머리에 겨누었다.
“성재야 제발 정신 좀 차려, 애비 생각하면 네가 정신 차려야지 왜 애비마음을 몰라 이놈아.”
아버지는 아예 애원조였다.
“다시 불러라, 김일성 장군 만세라고.”
이번에는 아버지를 닦달한다.
“아닙니다. 절대 아니라니까요.”
“빨리 불러 보란 말이여, 네 아들 시키지 말고, 애비나 새끼나 누구를 바보 멍충이로 알아.”
아버지가 또다시 애원했다.
“저는 죽어도 대한민국에 충성한 대한민국의 면장입니다. 여기 있는 두 분도 나라 일에 헌신적으로 일한 이장들입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아까는 정말 살고 싶어 실수한 것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늘을 가린 큰 소나무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소나기라도 퍼부었으면 어쩔가 싶었으나 무심한 하늘은 아는지 모르는지 맑은 하늘에는 뭉게구름만 떠있다.
잠시 주춤하던 군복들은 뚱보의 손짓에 잠시 무언가 의논하는 듯 수군거렸다. 처음에는 의견일치를 못 보았는지 다투는 듯싶더니 다시 묶은 줄을 끌고 개울을 건너 산길을 오르다 멈춰 선다.
“엄마 아무래도 용서하나 봐요.”
신음도 못 내던 어머니가 숨을 몰아시며 하늘을 향하여 기도를 드렸다.
“제발 하느님, 제발 우리 아기아빨 살려 주셔요, 살아가면서 나쁜 짓 한번 안 하고 양심적으로 산 사람입니다.”
애원에 찬 모습으로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성재도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을 불렀다.
“하느님요, 제발 저의 아버지 살려주셔요, 제발요.”
성재는 고향에 교회도 없지만 교회를 가본 일도 또 기도를 드린 일도 없었다. 어디 하소연 할 곳이 없으니 반사적으로 하느님을 찾은 것이다.
“당신들은 도저히 살려 둘 수 없는 악질빨갱이니….”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어서 세 사람은 개울 아래로 거꾸러졌다.
‘탕’ 하는 총 소리에 개울을 사이에 두고 기도를 드리던 성재와 어머니는 귀를 막았다.
아버지가 쓰러지자 성재는 아버지를 부르며 소리를 질렀다. 다른 군복이 대창으로 마구 찔렀다. 총알이 없으니 아마 확인사살인 모양이었다. 혹시 자기들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질까봐 아예 단초를 없애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성재아버지를 부르다 힘이 다했는지 목안으로 숙어드는 목소리가 간간히 산골짜기에 울렸다. 그들의 귀에도 어머니의 통곡소리가 들렸을 테인데 들은 척도, 엄포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길로 들어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에서 아버지가, 남편이 총탄에 쓰러졌는데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멍하니 바보가 되어 그들이 사라져간 산길만 바라보며 흐느껴 울 뿐이었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억울하고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죽기보다 어려운 시련을 겪어야하는지를 성재는 알 수가 없었다. 애시당초 성재는 아버지가 면장을 하는데 피난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면장을 하면서 어느 누구를 괴롭히거나 모함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정해진 법에 의하여 세금을 징수하고 산림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주민들도 다 이해하고 있었다.
일제 말 이차대전이 막바지에 들어서자 일제의 수탈은 절정에 이르렀다. 면직 원들은 집집마다 수색하면서 놋그릇을 공출供出하게 하였고 뒤주를 더듬어 곡식을 거둬들이면서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면 직원이던 아버지는 현물을 보고도 못 본 척 출장 복명서復命書를 내어 면장으로부터 질책을 당했던 사실을 어른들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던 성재다.
해방이 되면서 친일親日을 했던 지역 유지들이나 면 직원들이 줄줄이 건준建準사무실에 끌려 다니면서 고초를 당했지만 아버지는 단 한 차례도 끌려가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기 때문에 어머니도 어린 아들도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서고 있다는 후회에 더 괴로워하셨을 것이다. 차라리 혼자 떠날 것을, 수도 없이 후회를 곱씹어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니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아내와 자식이 무탈하기만을 간절하게 기원하면서 숨을 거두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흐느끼고 성재는 멀리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훔쳤다.
마지막 아버지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게 맴돌았다.
“성재야, 울지 말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네가 알아야하지 않니.”
성재로서는 엄두도 안 나는 일이 벌어졌다.
우선 억울한 주검들을 두고 그냥 그 자리를 떠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귀를 울렸다. 마치 오늘의 이 비참한 일이 일어 날 것을 미리 알고 하신 말 같았다.
“성재야 어떤 일이 닥쳐와도 침착해야 살아 날 수 있다. 전쟁은 으레 그런 거란다. 아버지가 없으면 네가 가장이 되어 어머니랑 동생들을 돌보아야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셔야하고….”
아버지의 마지막 말에 무어라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우선 어머니를 부축해야했다. 그러나 성재는 다리가 떨려 걸을 수가 없었다. 허공에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어머니는 일어서지도 못하니… 정신을 차려야했다.
어머니는 금방 허벅지가 퉁퉁 부어올랐다. 어깨뼈가 부러졌는지 오른팔은 꿈적도 못하셨다. 다행인지 피는 나지 않았다. 같이 죽어야 한다면서 몸부림치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한참동안 어깨와 허벅지에 찬물로 수건찜질을 하였다. 그래도 걸을 수가 없는지 다시 주저앉으셨다.
아버지 옆에서 죽겠다고 몸부림치며 뿌리치는 어머니를 사정사정하며 말렸다. 어머니 옆에서 한참동안 얼떨떨 서 있던 성재는 문득 정신을 차려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사방을 돌아보아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지, 아버지가 마지막 나에게 부탁하신 말씀을 벌써 잊어서는 안 되지….’ 성재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어머니, 이제는 어머니와 둘밖에 읍유, 아버지를 저렇게 버려둘 꺼 유, 제발 정신 좀 차리시유.”
어머니를 붙잡고 또 울음을 터트렸다. 한참이나 울던 성재는 정신을 가다듬고 어머니를 업어보려고 어머니 앞에 등을 대고 두 손을 끌어 잡았다.
간신이 성재 등에 업힌 어머니를 업고 일어서려 하였으나 허리도 펴지 못한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성재야, 안되겠어, 내가 일어나봐야 하것다.”
성재는 어머니의 양쪽 겨드랑에 손을 넣고는 힘껏 들어 올렸다. 넘어질 듯 하던 어머니가 간신히 일어섰다. 성재는 어머니 손에 막대를 쥐어주고는 허리를 부축이며 걸었다. 겨우겨우 한발씩 옮겨놓던 어머니가 밭둑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나 한손으로 막대를 집고 한손으로는 허벅지를 짚으면서 마을로 향하였다. 그렇게 가다 쉬다를 번복하면서 2백 미터쯤 되는 마을 입구까지 반시간이 넘어 걸린 것 같다. 어머니가 다친 것이 걱정이 아니었다. 당장 그 억울하고 불쌍한 주검을 묻어야 하나 그들의 힘으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마을에는 띄엄띄엄 5-6채의 초가집이 있고, 산위에서 울린 총소리에 놀랐는지 노인 두 분이 뒷짐을 지고 불안한 눈으로 성재가 내려오는 산 쪽을 바라보고 있다.
“아저씨 저를 좀 도와줘요. 저희 남편이 억울하게 죽었시유. 증말루 억울하게유”
더듬더듬 떨면서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노인들은 어머니가 몇 차례 사정을 해도 괜히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봐서인지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자 그래도 안됐는지 두 할아버지가 무슨 말인지 한참을 수군거렸다.
“야, 강 가야.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 일인데 어떡헌다냐.”
작달막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덩치가 큰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물었다.
“글쎄, 그냥 둘 수도 없는 일이구, 이거 정말 난감헌디”
강 노인이라는 할아버지도 걱정이었다.
“그려 증말루 안됐는디, 어쩌다 그렇게 된겨?”
찾아온 이유를 잘 알 텐데 딴 소리였다. 이번에는 성재가 애원조로 사정하였다.
“할아버지, 엄마가 많이 다쳤시유, 꼼짝 할 수가 읍시유, 그러니 지가 어떻게 혼자 아버지를 묻는데유 ? 제발 좀 도와주유.”
성재는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너무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인데 주검조차 묻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서글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디 우리 늙은이들이 어떻게 헐 수 있남.”
그때 어머니가 무엇이 생각났는지 꼬깃꼬깃 접어 속주머니에 감춰두었던 백 환짜리 몇 장을 내밀었다.
“아저씨 제발 사람을 구해서유 산역山役 일을 해줘유.”
“이 돈으로야 사람 살 수 있나, 그렇다고 우리 마을에 그냥 둘 수도 없는 거 아녀, 우덜밖에 일할 사람도 없으니….”
“할아버지, 지가 그냥 말것슈, 충분하게 사례 할 테니께 걱정말구 사람 좀 구해주유.”
엄마 말을 믿어서인지 두 사람을 더 불러 삽과 곡괭이를 들고 사건 현장으로 올라갔다.
성재는 엄마를 다시 업었다. 가까스로 한 발씩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업다 걷다를 하면서 처참한 현장으로 다시 올라갔다.
마을 사람들도 처참한 광경에 혀를 찬다.
“세상에, 말세라더니 생사람을 죽여, 그것도 경찰관이… 나쁜 놈들 같으니라구….”
우선 시신들을 개울에서 끌어 올렸다. 그리고 잔솔밭 사이 좀 널직한 자리를 파기 시작했다.
무더운 삼복염천이니 구슬 같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비교적 넓적하게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는 세 구의 주검을 나란히 묻었다. 봉분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들도 슬쩍 그러 덮는 것으로 일을 마쳤다. 참으로 허무한 죽음이었고 초라한 장례였다.
성재는 납작하고 길죽한 돌 세 개를 주워 무덤 앞에 세워놓았다. 좌측으로부터 큰 돌을 순서대로, 그것이 비석이다. 무덤을 잊지 않으려는 엄마의 생각에서였다.
세 구의 시신을 장례했어도 술 한 잔 있을 리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산등성이를 타고 넘었다. 이제 성재는 울음도 눈물도 말랐다.
“성재야 네, 아버지 알 수 있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