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대지를 생활무대로 삼고 있다. 동시에 의식주에 필요한 제반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를 상대로 다양한 인간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활동에서 비롯된 ‘집합적 의미(collective sense)’가 곧 문화임을 전제할 때, 활동의 주무대인 대지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대지는 홀로의 상태에 있지 않고 공기-물과 더불어, 유기적 결합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주변을 둘러싼 총체조건이며, 인간생활을 전개하는 데 필요한 기반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자연환경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인간집단에게 이용당하는 객체(客體)이면서 지역적 차이를 드러내는 지표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이용주체의 처지에 있는 인간집단마저, 능력과 기술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며, 집단 나름대로 고유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여기에다 이용주체가 되는 인간집단은 자연에 ‘알맞게 적응(suitable adjustment)’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토지공간에 이상을 심기 위해서도 정성을 쏟아왔음으로, 총체적 누계로서 문화는 땅위에 주로 표출되어왔다.
그래서 문화는 다양성과 함께 복합형태를 이루면서, 시간변화와 더불어 우리주변에 켜켜이 쌓여온 것에서 특성을 찾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지역과 인간집단에 따라, 차별적 성격(distinctive individual)을 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공간적 차별성을 드러내는 요인에서, 자연이 1차적이고 창조주체가 되는 인구집단이 2차적인 것이 되고 있다. 이들 요인에 의해 성격이 달라지는 데서 문화형태는 특성을 발휘하는 이상, 주택-건물-도로-다리-광장-정원-묘지 등에서도 가시(可視)적 고유성을 드러낼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가시적인 경관(visible landscape)’에 역점을 두게 됨으로, 문화를 형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창조주체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동-이주하는 동적(動的)요소를 안는 까닭에, 문화는 장소의 제약을 받은 채로 ‘고정된 상태’에 있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집단이동은 활동결과로 누적된 문화까지 동반하는 것을 의미함으로, 이동루트를 통한 접촉과 교류에 관심이 모아질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원형(原形)을 갖는 것이 문화가 갖는 속성이더라도, 다른 한편으로 변형(變形)과정을 밟으며 원형과 달라지는데, 의미를 부여한 근거가 되기도 했다.
우리 한국도 공간적으로 지구표면(earth surface)의 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데다, 한민족도 세계인류를 구성하는 부분집단으로 존속하고 있다. 여기에다 5천년의 역사가 경과하는 사이에, 유형-무형의 문화는 전통요소와 함께 변형의 모습까지 ‘혼재된 상태’로 축적(蓄積)되고 있다. 형태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문화는 가시적 성격(visual character)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런 까닭에 눈에 비쳐지는 외양(外樣)과 구조에서, 각양각색으로 드러날 소지를 안고 있는 데다, 역사발전과정에서 루트가 다른 문화가 혼재할 가능성마저 안고 있다.
마치 혈통적 파생(派生)계보에 따라 신체상의 피부색-눈-코-입의 모습이 달리지는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문화도 ‘창안해온 방법(devised way)’과 주어진 여건에 따라, 각양각색(各樣各色)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뒤섞인 상태’로 문화가 혼재하게 됨으로, 이것을 ‘동중이(同中異) 또는 이중동(異中同)’의 글귀로 표현하고 있다. 전자가 ‘큰 흐름 속의 다른 부분’에 의미를 찾는다면, 후자는 ‘차별적인 것’ 가운데서 유사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둘의 공통점은 유사성(similarity)과 차별성(differentiation)에 있지만, 가시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지표(指標)를 동원할 경우, 원형과 변형의 모습까지도 대비(對比)하는 것이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이와 같은 논리를 따라 우리 주변에 산재한 문화전반에 대하여, 유형적 특성과 함께 원류(源流)를 파악하는 데 노력하는 한편, 변화를 가져온 시대적 배경과 요인을 해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세계적 흐름과 연계하고, 한국적인 것으로 창조-재구성해야 될 향후과제를 의식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과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다루며, 이 책에 종합하며 기술해보았다.
필자는 지리학자이며 자연-인문에 걸친 ‘복합적 지표현상’에 대해서, 지역차이에 초점을 맞추고 해명하는 데 기여해왔다. 따라서 ‘삶과 죽음의 공간양식’이란 책을 통해서, 문화형태의 발생과 변천과정을 다룬 바도 있다. 그렇지만 시계열상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음으로, 시대적 변화를 밝히는 데 주력한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지리학에서 중요시하는 ‘문화루트와 확산과정’에 대해서 다루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 집필하는 책은 이런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난마(?麻)처럼 얽혀있는 우리 주변의 가시적 문화형태에 대하여, 계통적이며 현상적 점검기회를 갖는데 최우선했다. 다음으로 고유한 전통문화와 외래적 요소를 구분하면서, 혼합의 과정을 시대적 배경과 연계하여 해명했다. 동시에 권장되거나 수정되어야 할 사항들이 어떤 것인지, 비판적 시각으로 검토하는 단계를 밟았다. 궁극적으로 글로벌시대를 맞이한 오늘의 여건에서, 문화적 혼혈아(混血兒)를 낳는 데로만 몰아가는 이른바, 무비판적 수용자세를 지양(止揚)하려는 경고의 메시지와 함께, 자세확립과 더불어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내다보며,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촉매역할을 하는 대로 초점을 모았다.
다시 말해서 민족문화의 독자성과 창의성을 내세우면서, 국제무대에 당당하게 제시할 수 있는 ‘우리고유의 유형문화’가 어떤 것인지, 개선되어야할 사항은 무엇인지를 점검하며 ‘재정립의 시대’를 열어가려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문헌연구에 최우선하는 한편, 주요문화권별로 현지답사를 병행한 ‘구체적 실태를 대비(對比)’하는데도 힘을 쏟음으로써, 실내연구와 함께 관련지역에 대한 현지조사(field work)를 병행했다.
조사범위는 세계주요문화권에 대한 표본선정에 그쳐버렸음으로, 인간의 능력한계와 더불어 아쉬움이 남고 있다. 그렇더라도, 한국의 현대문화에 직간접의 영향력을 미치는 곳에 주력하여 표본을 추출했음으로, 다양한 문화요소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가시적 자료’를 확보한 점에 대하여 자부하고 있다. 따라서 가급적 현지에서 촬영한 사진자료를 320매에 걸쳐 알맞게 선정게재함으로써,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적 효과를 돕는 한편, 평이한 문장구사로서 대중적 이해를 돕는데 주력했다.
독자들의 비판을 당부하는 동시에,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 향후의 보완도 다짐하는 바이다. 또한 양서(良書)출판을 위해서 항시 노력하시는 맹윤재 사장과 함께, 편집과 교열에 정성을 보여준 김보라직원에게도 감사하는 바이다.
---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