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일리아스』와 트로이 전쟁에 대해 대체 뭘 알고 있지?”
“뭐, 물론 인터넷에서 트로이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신화는 알고 있어요. 오디세우스와 그의 전우들이 10년 동안 강력한 트로이를 포위하고 있다가 결국 계략을 써서 무너뜨리죠. 이건 거의 누구나 알고 있어요, 적어도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우스로 출연한 볼프강 페테르젠 감독의 영화 「트로이」가 나온 이후로는요!”
“트로이의 비밀을 알고 싶으면 세 가지 여행을 해야 하네. 우선 『일리아스』의 도움을 받아 영웅들의 시대를 탐구해야 하고, 둘째로 고대 이래로 모험을 통해 숱하게 이루어진 트로이의 재발견을 알아야 하고, 셋째로 트로아스(트로이아가 있는 터키 아나톨리아 북서부, 다르다넬스 해협 남동쪽에 위치한 지역의 고대 이름 - 옮긴이) 연구를 아주 정확히 살펴봐야 하네.”
--- p.16 『끝나지 않는 트로이 전쟁』중에서
“슐리만도 영웅이었나요?”
“슐리만은 영웅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사기꾼이었어요! ……그는 영웅이 되고 싶어 했고, 자기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려고 했지요…….”
사학자가 열을 냈다.
“19세기 교양 시민 계층에게는 영웅이었습니다.”
철학자가 대꾸했다.
“부자가 되었고 그 돈으로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했으니까요.”
“트로이를 발견하는 꿈이요?”
“아니, 유명해지겠다는 거요! 트로이는 다른 사람이 발견했어요.”
“히사를리크 언덕이 트로이라면 말이죠!”
--- pp.91~92 『슐리만의 흔적을 따라가는 산책』중에서
이로써 트로이 전쟁을 둘러싼 영웅담들의 전체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질되었다.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용감하지만 자부심이 강하고 복수심에 불타기도 한다. 그들이 승리를 거둘 때마다 신들은 호된 대가를 요구한다. 반면에 폰 펠데케의 영웅 에네아스는 뼛속까지 착한 사람이고 해피엔드를 맞이한다. 또한 전체 이야기가 중세의 첨가물, 즉 봉신과 기사와 거대한 성채로 장식된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중세에 점점 많은 유럽 통치자들과 그 일가가 스스로를 트로이인의 진짜 후손이라고 선언했다. 트로이 전문가이자 사학자인 유스투스 코베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트로이 전설은 중세에 유명했다. 프랑크족은 프리아모스의 아들인 프랑키오라는 자의 후손이고, 브리튼족의 경우에는 시조 브루투스가 에네아스의 손자다. 노르만족과 벨기에족도 트로이 혈통이라고 이야기된다.” (중략)
프랑크족과 마찬가지로 중세에는 갈수록 많은 귀족 가문이 스스로 트로이인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모두 트로이인 아닌가?
--- pp.122~123 『모험과 방랑의 시대』중에서
슐리만은 프랭크 캘버트의 충고를 전부 무시하고 지나친 열의를 발휘해 불행을 초래했다. 프리아모스의 궁전이 본래 층의 밑바닥에 있다고 추측했기 때문에 히사를리크 언덕에 거대한 구덩이(오늘날 슐리만 참호라고 불린다.)를 팠고 ‘모든 인공적 부분’, 즉 후속 문화의 자취를 모두 부주의하게 옆으로 치워 버렸다. 여기서 미리 밝혀 버리자면, ‘모든 인공적 부분’은 사실상 언덕 전체다. 언덕이 대부분 인간의 손으로 쌓아 올린 층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점토 벽돌을 이용한 건축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늘 앞서 있던 도시를 깎아 평지로 만들어 그 위에 새 도시를 세웠다. 수천 년에 걸쳐 존재한 취락들의 잔해로 최고 20미터 높이의 언덕 봉우리가 형성되었고, 지난 수 세기 동안 현지인들이 히사를리크 언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호메로스의 문학적 트로이와 구별할 수 있도록 이 책에서는 발굴지를 트로이아/히사를리크 또는 트로이아/일리온이라고 부른다. 당시에 에른스트 쿠르티우스도 몇몇 동료 학자와 트로아스를 여행했다. 그들은 슐리만의 작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피나르바시가 진짜 트로이가 있던 장소라고 여겼다.
슐리만도 의심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그는 깊은 구역에서 나온 출토품을 전부 『일리아스』와 관련시켰다. 초라한 성 하나를 발견했을 뿐인데도 ‘프리아모스의 궁전’이라고 말했다.
--- pp.141~142 『모험과 방랑의 시대』중에서
코르프만은 트로이아에서 국제 학술단의 발굴 및 복원 작업을 지휘하는 동시에 터키 당국과 정치가들에게 경관 보호를 호소한다. 그에게는 이 일이 동전의 양면이다. 귀중하고 유일무이한 동전. 코르프만은 이렇게 지적한다. ‘사람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관점입니다.’ 그런 관점을 국립공원 프로젝트가 줄 수 있을 것이다. 트로아스 전체가 자연 문화 공원이 되어야 한다. 독일 브레멘 주만 한 이 지역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근대까지 보호할 가치가 있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가 80개소 이상 있기 때문이다. 트로아스는 인구 밀도가 희박하다. 지금까지 농업에 이용되던 땅을 휴경시키면 자연 식생이 되살아날 수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하계 발굴에서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은 현지인들을 기념물 보존과 경관 보호 임무에 투입해야 할 것이다. 방문자들도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동구권 몰락 이후 트로아스는 전략적 중요성을 상실했다. 다르다넬스 해협의 이 부분을 국립공원화 하는 것이 상책이다. 염원하던 유럽과 아시아 간 평화를 이보다 더 잘 상징하는 지역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프레트 코르프만은 지나친 착각은 하지 않는다. ‘문화는 항상 맨 마지막이다!’라는 게 그의 슬로건이다.
--- pp.162~163 『오스만 베이라고 불리던 남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