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오셨어요?”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서연은 평상시보다 일찍 귀가한 아버지께 인사를 했다.
“음, 그래.”
늘 그렇듯 아버지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태영그룹의 총수인 아버지와 국내 의류업계에서 주목받는 송아어페럴의 사장인 어머니는 사업 때문에 늘 바빴다. 막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하던 어머니는 요즘 출장이 잦았다. 어머니의 출장이 잦아지면서 서연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부모님의 싸움도 잦아졌다. 두 분 모두 사업 때문에 커다란 집에는 늘 서연과 남동생 서찬, 그리고 일하는 아줌마만이 지키고 있을 때가 많았다.
오늘도 파리 패션쇼 때문에 어머니는 출장 중이었다. 어머니가 출장 중일 때는 아버지 또한 일찍 귀가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오랜만에 일찍 귀가했다. 일찍이라고 해봐야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평상시에 비하면 이른 귀가였다.
“서연이 안녕? 오랜만이네.”
아버지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따라 비서실장인 윤혜영이 들어서며 서연에게 인사를 했다.
서연은 그런 윤 실장에게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서연은 윤 실장이 싫다. 짙은 화장에 화려한 옷차림이 어린 서연이가 보기에도 비서실장의 옷차림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한 번은 서연이 아버지 회사에 심부름 차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가슴이 깊게 패여 상체를 숙이면 가슴이 보일 것 같은 아슬아슬한 옷을 입은 윤 실장의 모습을 본 뒤로는 그녀가 더욱 싫어졌다.
“네 엄마한테서는 전화 왔었니?”
“아니요, 아직…….”
“집구석하고는……. 쯧쯧쯧.”
아버지는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혀를 찼다. 서연은 윤 실장이 있는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아버지가 싫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저녁은?”
“아줌마가 챙겨줘서 먹었어요.”
“그럼 올라가서 자거라. 내일 학교 가야지.”
“네.”
“윤 실장과 밤새 일할 거니까 방해하지 말고.”
서연은 아버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2층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인 서찬은 어머니의 극성에 여러 학원을 전전하느라 피곤한 탓에 벌써 꿈나라로 간 지 오래다. 서연은 자신의 방에서 내일 수업을 위해 예습을 두 시간 정도 하고 난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몇 시인지도 모를 새벽녘, 서연은 심한 갈증에 잠이 깨었다. 아마도 늦은 저녁 식사를 배고픔에 허겁지겁 먹은 탓이리라. 서연은 잠자리를 빠져나와 테이블 위에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끼를 찾았지만 없었다. 아줌마가 또 잊은 모양이다. 할 수 없이 서연은 1층에 있는 주방으로 내려갔다. 아줌마의 건망증이 심각하다는 생각을 하며 주방에서 물을 마신 서연은 다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기 위해 2층으로 향했다.
그때, 서연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꼭 고양이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누군가 아픔에 신음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한 번 소리가 났을 때, 멈칫하던 서연은 잠시 후 다시 같은 소리가 들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섭기도 했지만 소리의 원인이 궁금한 서연은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소리는 서재에서 들리는 듯했다. 방해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엄명이 있기는 했지만, 아버지와 윤 실장이 일하고 있을 서재에서 왜 그런 이상한 소리가 나는지 궁금한 서연은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서재로 다가갔다.
서재 문은 채 닫히지 않은 듯 조금 열려 있었다. 조심스레 살짝 안을 들여다보던 서연은 순간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아버지와 윤 실장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적나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윤 실장이 아버지의 커다란 책상 위에서 가슴을 훤히 드러낸 채 야릇한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고, 아버지는 윤 실장의 다리 사이에서 연신 몸을 움직이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회장님, 아…….”
아버지의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윤 실장의 신음 소리는 높아갔다. 서연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놀란 심장은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서연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그 커다란 손이 윤 실장의 하얀 젖가슴을 움켜쥐는 모습을 본 후에야 서연은 온 힘을 다해 겨우 그들의 모습을 자신의 시야에서 떨쳐냈다.
“잠깐만.”
서연의 움직임을 들은 듯 갑자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윤 실장의 신음 소리도 멎었다. 서연은 혹시라도 아버지가 서재 밖으로 나올까 싶어 숨소리조차 죽이며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그녀의 온몸을 울리는 심장 소리가 아버지에게 들릴 것 같은 두려움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 아버지가 서재 밖으로 나오기라도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왜요?”
“금방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데?”
“소리는 무슨 소리에요. 아무 소리도 안 났는데. 어서 빨리 하던 일이나 끝내자고요. 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제발…….”
“그래, 오늘은 어디 나한테 죽어봐.”
여우 같은 윤 실장의 말에 아버지도 잘못 들은 것으로 판단했는지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며 자신들만의 정사에 빠져들었다.
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한 채, 윤 실장의 신음 소리를 뒤로하고 조심스럽지만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서연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신이 본 광경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발버둥쳤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서연은 삼일 동안 앓아 누웠다. 사춘기로 막 접어든 감수성 예민한 서연은 그렇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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