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광장 바닥에 벌러덩 누운 꼬마를 보며 나 자신을 돌아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계절을 즐기지 못하는 자는 연애도 마음껏 즐기지 못한다고.
태양이 두렵지 않은 자는 사랑에도 용감했고,
추위를 즐길 줄 아는 자는 이별에도 씩씩했다.
과감하게 계절을 즐기지 못했던 나,
사랑에도 역시 그랬구나.
블라인드를 제친다. 햇살이 뜨겁다. 조금만 이러고 있자.
사랑에 용감해지도록.
---「분수대 아이」중에서
돌아오는 길, ‘결혼’도 쇼핑처럼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해도 될지 안 될지 판단이 애매할 때
‘둘러보고 올게요’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을 둘러보는 거지.
그러다 이만 한 사람이 없구나, 깨달으면 그때 결혼하는 거다.
그러면 후회 없이 평생, 그 사람에게 충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 아주 큰 주의점이 있다.
둘러보고 왔는데, 그 신발이 팔렸을 수도 있다는 것.
아니, 어쩌면 매장이 문을 닫아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쇼핑과 결혼」중에서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 856-37에는
‘왈츠와 닥터만’이라는 카페가 있다.
10년 전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카펜데
카페 정원 앞으로 북한강이 흐르고 건물 뒤로는 산이 감싸고 있으며
커피 맛은 짙고 풍부한 낭만적인 곳이다. (PPL 아닙니다.)
그곳에서 커피를 마실 때마다 나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이런 데서 원고 쓰면 정말 글이 술술 나올 텐데.”
나 지금, 거기서 원고 쓰고 있다.
정말 글이 술술 나오기는, 개뿔이다.
---「했다면」중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빠가, 괜찮다고,
나이 들면 다리에 힘이 빠져 그러는 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엄마 아빠를 약국 앞에 먼저 내려드리고 주차를 한 후
약국에 들어서려던 나는 멈칫 그 자리에 섰다.
아빠가 호호 불어가며 엄마 턱에 연고를 발라주고 계셨기 때문이다.
“조심 좀 하지.”
“아, 아, 아~.”
넘어진 71세 여자와 아내 턱에 연고를 발라주는 75세 남자.
젊은 날, 그들의 싸움이 치열했다 해도
노년에 이렇게 서로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줄 수 있다면
이 부부의 결혼은 성공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황혼부부」중에서
그동안 방충망을 방범창으로 착각했던 거냐고
비웃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정말로 방충망은 나에게 집을 지켜주는 세콤 같은 거였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사람을 대할 때도 이런 방충망을 치고 있었던 듯싶다.
마음을 활짝 열어 누구에게나 오픈 마인드인 사람처럼 행동해왔지만,
사실 내 마음에 얇은 망을 치고 살았던 게 아닐까.
그래서 상대가 내 마음에 들어오려고 할 때,
그가 망을 찢는 사이 도망쳐야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소개팅을 해도 처음 만난 날 가장 친했고,
만남이 거듭될수록 말수가 줄어들고, 덜 웃고, 끝내는 침묵했던 게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저는 마음에 울타리를 치는 성격이라 친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려요,
라고 솔직하게 말했다면 차라리 좋았을걸.
잘 보이지 않는 망을 친 채
마음을 열고 있는 척 행동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이제는 솔직해지자.
나는 그다지 마음을 개방해놓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그러니 당신이 누구시든 좀 천천히 다가와 달라고, 정중히 부탁해야지.
---「방충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