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제주섬 한바퀴를 돌다 보면 검은 밭담의 경계에서 꿈틀대는 검은 땅의 내면이 보인다. 그 속 땅, 검거나 붉은 흙이 배태한, 팍팍한 화산회토의 운명을 산 사람들의 지극한 슬픔을 느낀다. 파내고 파내도 도지는 상처처럼, 돌밭을 떠날 수 없었던 앞서간 생과 현재의 생에서 삶의 비의가 느껴진다. 맑은 날, 동과 서로 이어진 오름 능선을 따라 중산간을 한바퀴 돌다 보면 황홀한 아름다움보다 시린 통증을 느낀다. 삶과 죽음의 분리가 없는 땅, 자연과 삶의 색깔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땅, 고통스러울 만큼 황홀한 몸을 가진 이 땅에 생을 기대는 나는 누구인가.
북서풍이 휘몰아치는 날, 깊어서 더 갈기 사나운 파도가 해벽에 갇혀 절망하듯 몸을 뒤튼다. 그 파도가 하늘과 대립하며 거칠게 속울음 내는 날을 나는 사랑한다. 생이란 때때로 휘몰아치는 바람과 같다. 섬의 바람과 한몸이 된다. 제주 바람은 바람에 패이고, 긁힌 삶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도 한다.
암청빛 한라산과 그것을 둘러싼 잿빛 능선에 휩싸인, 작은 뿌리인 나는 이 땅에 태어난 운명을 사랑한다. 너울너울 살아서 움직이는, 화산재로 뒤덮인, 오름과 오름의 구릉을 나는 사랑한다. 그 등골을 타고 내려온 뜨거운 용암의 땅, 흐르고 흘러서 그 안으로 더 단단해진 이 섬은 아주 특이한 존재다.
마음 둘 곳 없는 날, 섬 한바퀴를 돌다 보면 기억의 바람을 안고 사는 할머니의 삶을 만난다. 대찬 바람처럼 사는 그들의 용기 있는 삶을 나는 사랑한다. 화산의 눈물로 질퍽한 이 섬, 현무암보다 깊은 어둠을 살면서도 생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팽나무와 닮은 그들의 삶을 사랑한다. 작열하는 동쪽의 거친 밭돌담과 저무는 서쪽 바다의 비린내를 나는 사랑한다.
돌아서 오는 길, 나는 생각한다. 이 땅에서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그때의 사람들이 응시한 것은 무엇일까. 이 길은. 이 바다는. 슬픔과 아름다움, 부드러움과 강인함, 혹독한 바람과 야생의 햇볕, 수용과 저항, 고통과 치유의 섬, 제주도는 왜 이리도 모순된 땅인가.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마음의 뿌리는 변하지 않는다. 개혁과 변화가 미덕이라는 부박한 세상이지만, 이 땅은 ‘참 삶’의 기억만 남기고 길 위에 또 다른 길을 내고 있다. 대체 지워지는 길처럼 이 땅을 훑고 지나는 문명의 흉터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파도는 끝없이 뒤집히며 생성과 소멸, 밀물과 썰물의 상처를 도모해낸다. 바다 절벽에 둘러싸인 내게 있어 늘 대치하며, 요동치며, 그 파도가 끌어올리는 것은 끝없는 상처였다. 이 섬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삶이란 결국 상처와 맞부비며,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아닌가. 또 그것을 달래는 길까지 바다는 알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 봐라. 그것은 끈질기게 따라온다. 경험한 만큼의 삶의 기억과 상처가 내는 길을 나는 따라간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은 고통을 치열하게 끌어안고 견뎌내야 할 수밖에, 달리 길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한라산 기슭의 오래된 숲, 곶자왈을 다니며 나는 그 속에서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됐다. 그곳에서 비로소 죽은 줄 알았던 내 안의 낯선 희망을 발견하곤 했다. 붓순나무는 깎아지른 각으로 선 절벽에 실핏줄처럼 갈라터진 뿌리를 위태롭게 뻗고도 침묵하고 있었다. 악다물고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때죽나무는 다래덩굴에 휘감기고도 의연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그 투박한 외피를 두른 몸에서 태어난 때죽나무 꽃은 참으로 맑았다. 얼굴을 땅으로만 내리깔더니 그는 제 몸이 얼마나 향기로운 존재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어디에도 매이지 않아 자유로워진 얼마 전, 나를 위로해 준 것은 그 때죽나무였다. 배시시 꽃잎 떨구고 있는 숲을 찾았을 때였다. 저녁 해가 섬광처럼 숲을 투과할 때였다. 그것은 어쩌면 사월 제주의 상징이었다. 이 섬의 떼죽음을 경건하게 떠올리게 했다. 희디흰 꽃잎이 통으로 뚝뚝 떨어져 있는 때죽나무 꽃무더기. 그 꽃그늘 아래는 한 시대 사람들의 손길을 떠올리게 하는 돌담의 경계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참혹한 아름다움이었다.
숲의 나무는 참을 줄 모르는 인간들을 향해 비겁하지 않은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자연의 얼굴과 순수로 씻어낸 그 정신은 어떤 것인지를 깨우쳐주고 있었다. 그것들은 더디지만 오래가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과욕이지만 그 순수의 향기와 정신이 내 몸속에 다소 스며들기를 진정 희망했다. 절벽 암석과 거대한 뿌리가 완전히 결합한 것을 보면서.
그럴진대, 무릇 자연은 말없이 행동하는데, 사람은 행동과 말의 일치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더냐. 자연처럼 내공을 쌓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더냐. 나는 이제 돌이 나무가 되고, 나무가 돌이 되어 하나의 몸을 이룬 상생을 본다. 그리고 흙의 몸을 잠시 빌려본다. 한라산 조릿대 연초록 새순이 새록새록 올라오고 있다. 청미래 덩굴이 새순을 올리며 하늘로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암녹색의 오름 위로 안으로 기를 모은 청핏줄의 억새가 올라오고 있다. 모든 씨앗을 품은 흙의 기운이 끓어 넘치고 있다.
가파른 한라산 기슭 금봉곡 석굴암 가는 길, 층층나무 층층꽃 이파리 쌀알처럼 어지러이 흩어진 협곡에서 그것의 낱알들을 쓸어모으듯 내 생각들을 모은다. 바로 얼마 전, 나는 지역 일간지에서 기자로 살았던 22년의 한 삶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참으로 오래도록 그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것들을 하게 됐다.
게으르게 갯메꽃 넌출 사이 거북등 위에 쪼그려 앉아 저무는 바다를 깊게 들여다보게 됐다. 바다 달팽이의 삶도 느리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제 몸보다 큰 집을 지고 더듬더듬 암팡지게 기어가는 더듬이의 삶을. 연한 애기달맞이가 이윽고 눈감아 버리는 찰나를 본 지 얼마만인가.
한자리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라산, 바다, 오름, 중산간 어디든 이토록 집중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연에 누인 삶이 어디 있을까. 또한 어디서 만날 것인가.
제주도는 완벽한 자연이다. 비애와 황홀의 땅이다. 정직한 땅, 기억의 땅이다. 내게 있어 이 땅은 고통과 치유의 스승이다. 나는 이 땅처럼 통하는 인간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이 책의 산문들은 내가 현역에서 이름자 달고 나갔던 문화 칼럼에서 추려낸 것들이다. 이 글을 내는 시점에서 볼 때, 이것들은 제주도라는 한 섬에서 이미 기억의 저편으로 벌써 물러서 버린 시간들일 것이다.
지난 글들을 읽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나 꿰매기로 했다. 이 땅이 내게 길어올린 생각들이므로. 그랬다. 그때그때 시대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살아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섬의 열린 지평을 통해서, 나는 꽤 심각하게 세상을 향해 발언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 또한 얼마나 부질없는 나의 허욕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