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05년에 썼던 ??문화부족의 사회??, 그리고 이 책과 함께 발간한 ??문화자본의 시대??와 함께 이른바 본격 신자유주의 시대로 진입한 한국의 문화현실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물론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지난 10년 동안 ??문화/과학??을 비롯해 다른 저널에 기고한 글들이 주를 이루지만, 모든 글들이 대안문화 형성과 관련해서 무리없이 묶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래 전부터 기획했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새로운 세기에 대안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역사적 계보를 그리고, 이론적 지형을 재구성하며, 예술운동, 생태주의, 세대문화, 문화권과 같은 토픽을 통해 그 실천적 구체성을 발견하려는 이 책의 내용들은 새로운 문화운동론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문화부족의 사회??에서는 새롭게 생성된 문화주체에 대한 분석을, ??문화자본의 시대??에서는 문화의 독점화에 대해 분석을 했다면, 이 책 ??대안문화의 형성??은 새로운 문화주체들이 문화자본의 독점에 저항해 대안문화의 다양한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탐색을 담고 있다. 나에게 ‘문화주체’, ‘문화자본’, ‘문화운동’은 2000년 이후 현장에 기반을 둔 문화연구를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토픽들이었을 뿐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대안문화의 형성에 대한 담론은 문화자본의 독점 조건들에 대한 탐색과 비판, 그리고 새로운 문화주체의 등장에 대한 현실분석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대안문화는 어떤 의미일까? 20대 문학연구자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에 경도되었을 때 ‘대안문화’에 대한 생각은 분명 당파적 이념에 대한 상상이 강했다. 그러나 문화이론과 문화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1990년대 중반 이후 나에게 대안문화는 이념이나 계급 중심의 상상을 넘어서려는 자율적이면서도 다원적인 어떤 것이었다. 청소년 하위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세대문화의 저항과 인디문화의 자율성에서 대안을 찾고자 했고, 「문화연대」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가로질러가는 문화행동과 신자유주의 문화에 저항하는 문화적 권리에서 문화운동의 대안을 발견하게 되었고, 한미FTA 국면에 이르러서는 ??문화/과학?? 편집위원회에서 오랫동안 논의했던 ‘생태적 문화사회론’에서 지속가능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2008년 촛불집회 사건 이후로는 문화적 다중들의 출현에 주목하면서 세대와 감수성을 급진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문화행동에서 대안을 찾고자 했던 것 같다. 당파적 현실주의에서 실제적인 대안보다는 이념적인 전망을 찾고자 했던 20대 시기를 제외하고는 시기와 사건별로 대안문화를 상상하는 초점은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생각했던 대안문화는 모두 문화의 독점을 넘어서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삶의 자유를 상상한 것이었다.
이 책은 문화의 독점 논리를 간파하고,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문화를 상상하는 새로운 문화운동론을 제안하고 있다. 책의 각 부분은 신자유주의 문화현실에 맞설 수 있는 문화운동론의 다양한 대안들을 제시한 것들이다. 1부에서는 문화운동의 역사적 궤적을 ‘문화사회론’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자 했고, 2부에서는 대안문화의 한 흐름으로 문화사회와 생태주의의 가능성과 한계들을 짚어보고자 했다. 3부에서는 세대문화가 야기한 다양한 사건들을 분석하면서 참여정치의 문화적 힘에 주목하고자 했고, 4부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같은 감수성의 정치와 개인들의 자발적인 문화연합들이 대안문화의 형성에서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다양한 문화운동의 관점들은 이론과 현장 사이를 가로질러갔던 지난 10여 년 간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다. 1999년 새로운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를 내걸고 출범한 「문화연대」에서 상근활동으로 시작해 줄곧 문화정책센터와 대안문화행동과 관련된 일들을 맡아 오면서 많은 현장경험들을 했고, ??문화/과학?? 편집위원회에서 논의했던 문화사회, 생태문화 네트워크와 같은 새로운 문화운동을 위한 이론 구성에 매진했는데, 문화연대에서의 현장경험과 ??문화/과학??에서의 이론적 실천이 이 책을 쓰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대안문화와 문화운동과 관련된 글들을 쓰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으면서 또 다른 대안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찾은 것 같아 홀가분한 마음이다.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하면서 문화가 갈수록 독점화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이 생산적인 대안문화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더 가중시키기는 하지만, 어려운 시절에도 불구하고 지난 3-4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발견되었던 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의 열정과 민주주의의 열망들은 더 나은 문화사회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대안문화의 형성은 그런 점에서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 책은 ??문화부족의 사회??와 ??문화자본의 시대??와 함께 기획된 것이어서 서로 참고하고 연관해서 읽으면 의미가 더 할 것이라고 본다. 또한 이 세 권의 책은 오랫동안 문화연구의 이론과 현장에 개입했던 개인적인 활동을 정리하는 의미도 곁들이고 있다. 앞으로 현실문화에 개입하는 터가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차례 숨을 돌리고 지난 연구활동과는 다른 새로운 지형과 토픽을 찾아서 나갈 생각이다. 문화운동을 장기적으로 구상할 수 있는 토대연구에 좀 더 집중할 생각이다. 이 책의 내용들은 사실 나 개인의 글쓰기만이 아닌 그동안 함께 활동했던 분들과 소중하게 나누었던 것들이다. 내 나름대로는 새로운 문화운동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함께 활동했던 분들과 이 책의 모든 부분들을 나누고 싶다. 참고로 이 책에 실린 글들의 출처를 밝히면 다음과 같다.
?‘역사적 문화운동’에서 배우기: 문화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인식적 지도그리기?(제3회 맑스코뮤날레 발표 글, 2007), ?예술운동의 죽음과 생성?(??문화/과학?? 53호, 2008년 봄), ?문화권의 사회적 실천과 문화운동의 미래?(제2회 맑스코뮤날레 발표 글, 2005), ?문화연대가 꿈꿔온 ‘문화사회’의 궤적들: ‘표현의 자유’에서 ‘광장의 정치’까지?(문화연대 10주년 기념토론회 발표 글, 2009), ?생태주의 대안운동의 가능성과 한계: 공정무역운동에서 생협운동까지?(??문화/과학?? 56호, 2008년 겨울), ?문화사회로의 전환과 생태문화코뮌 만들기?(??문화/과학?? 50호, 2007년 여름), ?치욕스런 새만금 록페스티벌의 교훈들?(??문화/과학?? 51호, 2007년 가을), ?세대문화의 힘과 참여정치의 전망?(??기억과 전망??, 2003년 봄호), ?청소년은 저항하는가?―청소년 주체형성의 다중성 읽기?(??오늘의 문예비평?? 72호, 2009), ?촛불집회와 스타일의 정치?(??문화/과학?? 55호, 2008년 가을), ?‘문화적 다중’의 출현과 대안문화행동?(??문화/과학?? 60호, 2009년 겨울), ?‘표현의 자유’를 다시 생각한다?(??문화/과학?? 57호, 2009년 봄), ?대중음악의 대안은 가능한가?―대중음악 지형을 읽는 세 가지 토픽들?(??비평?? 19호, 2008).
2010년 6월
_이동연
---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