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
- 머리기술은 검도 수련의 기본이다
- 효과적인 기술 조합이 긍정적 결과를 얻는다
검도에 입문한지 17년, 빠르게 흘러간 세월을 뒤돌아보면 어려서부터 꼭 한 번은 배워야 할 것 같은 사명감처럼 필연으로 시작하였다. 지속적인 교검交劍을 통해 짙은 땀과 희열의 교감 속에서 따뜻한 인간의 정을 나누던 절친한 검우들은 가슴속 깊이 평생검도를 지향하고 있다. 이제 검도는 인생철학을 일깨우고 거친 세상을 지혜롭게 헤쳐 가는 삶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었다.
검도에 입문하여 기초를 배우면서 사범과 선임자들이 한결같이‘머리타격이 검도기술의 아름다운 꽃이다. 머리치기만 잘하면 다른 타격 기술은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지도를 받았다. 동문들과 함께 검도수련 초기부터 머리공격 기술에 충실했으며, 특히 선(先)의선(先)으로 나오는 머리타격을 꾸준히 연마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양한 경기에서 과감하게 머리기술을 시도하여 많은 상대선수를 제압하였다.
1995년 처음으로 부산시장기 검도경기에 출전했을 때 대회장의 주변 환경은 나를 압도하여 정신적 공항상태로 빠져들게 하였다. 넓은 경기장, 수많은 선수들, 경기선수들의 우렁찬 기합소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심판들, 단상에 진열된 트로피들, 실내 경기장을 흔들며 울리는 마이크의 안내말 등 모든 것들이 나의 머리를 텅 비게 하였다. 어떻게 첫 시합을 시작하였고 패배로 끝났는지 그 과정은 전혀 기억조차 없다. 가슴 두근거리는 초조와 긴장 속에서 단순히 내 경기순서가 되어 나갔고, 경기 시작과 동시에 과잉의 흥분과 마음의 혼란을 안고 거리, 타이밍, 기회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머리공격만 연속적으로 시도하였다. 경직된 신체와 극도로 좁혀진 시야는 그동안 연마한 검도의 숙달된 기술이 아니라 거의 본능적인 동작으로 대응하였다. 부드러운 리듬에서 다양한 기술의 수행과 상대선수의 모든 움직임을 섬세하게 파악하여 빈틈을 날카롭게 공격할 수 있는 넓은 안목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강약의 적절한 흐름을 타지 못하고 단순히 체력을 바탕으로 격한 경기를 진행하였다. 격투기 경기하듯 오직 강한 신체의 움직임과 부딪침에서 얼마나 거친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던가! 경기 시작 1분도 채 견디지 못하고 심판의 지시에 따라 ‘꽂아칼’ 하며 첫 시합의 2:0 패배를 경험하였던 쓰라림은 아직도 가슴속에 생생히 꿈틀거린다.
그 후 여러 해가 흘렸다. 첫 패배의 아픔을 온전히 간직한 채 다른 기술보다는 오직 머리기술을 충실하게 연마하였다. 스포츠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재능은 타고난 소질보다는 성실한 노력이라 확신하며 기술과 함께 정신력을 충실히 단련한 결과 기량이 한 곳에 정체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1999년 2번째 출전한 부산시회장기검도대회에서 그동안 철저하게 수련하고 연마한 머리기술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경기마다 다른 타격부위보다는 강력하고 위협적인 머리기술을 구사하여 머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하였다. 상대선수의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하여 유효거리와 미세한 기회를 포착한 순간 반복적 훈련으로 자동화된 신체는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뛰어들어 일순간에 머리를 타격하였다.
준결승전을 맞이하였다. 상대선수는 내가 평소에 잘 알고 있는 지도자의 소속이었다. 신장이 거의 180cm로 나보다 큰 신장에 체격도 튼튼하여 매우 공격적인 기세를 느꼈다. 주심의 ‘시작’ 신호와 동시에 장신의 신체와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과감하게 공격을 시도하였다. 머리 공격 후 거세게 부딪치는 몸받음에서 강한 힘이 전달되었다. 그러나 약 1분간의 격한 교전 시간이 지난 후 냉정한 판단으로 2가지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상대선수에게 강한 체력은 있으나 검력의 깊이가 짧아 전체 경기흐름을 파악하는 시각이 넓이 못하므로 심리적 동요를 억제하고 침착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삼살법三殺法(기세, 기술, 칼)의 검도이론을 현장에 적용하였다. 상대의 왕성한 기세를 눌리지 않으면 그의 날카로운 공격과 스피드를 잡기가 어려울 것이다. 상대선수의 강한 칼의 부딪침과 짧고 빠른 신체의 움직임에 심리적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기세를 꺾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빈틈없는 정중선을 유지하면서 일족 일족을 조여 거리를 좁혀 들어갔다. 긴장된 거리싸움에게 2~3보를 물러난 상대선수는 심리적으로 죄어진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머리를 치고 급히 몸받음으로 들어왔다. 그의 동작을 예측한 나는 뒤발과 단전에 힘을 주면서 무심코 들어오는 상대선수의 가슴부위를 강하게 밀면서 격한 몸받음으로 되받았다. 의외로 허를 찔린 그는 거의 뒤로 넘어지듯 상체가 뒤로 젖혀진 채 옆으로 밀리면서 장외 반칙을 하였다. 이후 상대선수의 움직임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거칠고 날카로운 기세가 완만하였고 나를 경계하는 신체는 경직되어 기술을 충분히 펼칠 수가 없었다.
팽팽한 경기는 4분 동안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연장으로 넘어갔다. 이제 먼저 1판을 따는 선수가 승리와 동시에 결승전에 진출하는 행운을 얻는다. 긴박한 경기흐름 속에서 상대선수의 경기운영이 노련하지 못함을 파악한 나는 철저히 역습을 대비하면서 거리를 좁혀갔다. 거의 코너까지 밀려간 상대선수는 나의 강한 몸받음으로 또 1번의 장외반칙을 염려하면서 온 신경을 한 곳에 쏟고 있었다. 장외반측 2번이면 1판, 즉 연장전에서는 한판으로 경기가 마무리 되는 것이다. 나의 빠른 일족의 전진에 상대선수의 몸은 움찔함과 동시에 칼은 정중선을 벗어났다. 나는 빈틈을 파악하는 순간 강렬한 기백을 몸에 담아 머리로 뛰어들었다.‘팍~’ 강한 울림과 함께 결승전 진출이 확정되었다.
드디어 결승전까지 진출하였다.
결승전에서 대적한 상대선수는 나의 경기를 은밀히 관전하면서 대부분 머리공격을 성공하여 연속적으로 승리하였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역습에 대한 전략을 철저히 세웠다. 그리고 그 역시 손목 기술을 특기로 경기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결승전 경기를 위하여 개시선에 마주선 상대선수의 겨룸세에 정중선의 흩트러짐이 없었다. 양선수는 주심의 ‘시작’ 신호와 함께 왕성한 기세로 칼끝을 교차하면서 적절한 기회를 포착하기 위하여 민첩하고 짧은 보폭으로 날카로운 이동을 하였다. 양선수의 칼끝이 선혁을 거의 넘어서면서 긴박한 유효거리로 대치되었을 때 나는 상대선수의 손목공격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나의 미세한 움직임에 대한 적절한 타이밍을 감지하는 순간 빠르고 짧은 손목 공격을 위해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이미 대비한 나는 손목 공격을 되받는 찰나 강한 손목 힘을 이용하여 후의선 머리를 타격하였다. ‘따, 딱~’ 두 선수의 기술이 너무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에 노련한 심판들조차 판단에서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하였다. 세 명의 심판 중 두 명은 손목, 한 명은 머리를 인정하였다. 결국 주심은 2:1로 상대선수에게 손목의 한판승을 선언했다. 이 후 몇 번의 위협적인 머리공격을 시도하였지만 결정적인 한판승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역전승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결승전 경기는 1:0으로 상대선수가 영광의 우승을 안았다.
첫 우승이 좌절되었다. 너무나 아쉬운 판결이었다. 그러나 선수는 심판의 판결에 승복하는 것이 검도의 길道이 아닌가. 비록 결승전에서 상대에게 손목을 내주고 준우승의 결과를 얻었지만 전체 경기내용에서 호쾌한 머리 타격의 득점은 여전히 만족스러운 대회로 기억에 오래 오래 남는다.
검도에서 머리공격은 가장 기본이면서 중요한 기술이다. 평소 상호수련에서 가장 많이 연마하고 있으며, 더불어 방어감각도 매우 뛰어났다. 결국 상대도 동일한 조건이므로 긴박한 경기에서 머리공격의 성공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이다.
머리공격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나 선수에 따라서 적절하게 시도한다. 나는 신장이 크기 때문에 머리공격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면서도 손목과 허리 공격의 역습에 가장 취약성을 가진다. 공방일치攻防一致의 안전한 머리 공격을 수행하기 위하여 상대선수의 정중선을 무너뜨린 후 겨눔의 검선에 빈틈이 열렸을 때 즉시 머리공격을 시도한다. 그러므로 상대선수와 긴장되는 겨눔의 상태에서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와 춤을 추듯 집중력을 가지고 거리를 충실히 유지한다. 어느 순간 상대의 집중력이 분산되어 불필요한 동작이 생겨 빈틈이 노출되거나 강한 공격적 기세로 깊게 일족 전진할 때 4병四病의 놀람驚이나 당황惑으로 중단의 검선이 정중선을 벗어나는 순간에 온 몸을 던지듯 강한 머리 공격을 시도한다. 특히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절박한 긴장감을 통제한 후 기회를 포착하는 즉시 예리하게 머리공격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은 머리공격에 성공률을 높일 뿐 아니라 취약한 손목과 허리의 역습을 예방할 수 있다.
초조하고 불안한 검도경기를 수행하면서 각성이 고조되면 심신이 경직되어 유연한 동작과 판단이 어렵다. 그러므로 항상 경기를 수행하면서 적당한 각성을 유지하면 순발력있는 동작과 정확한 판단을 얻어 효과적인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민감한 시합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리 머릿속으로 어떠한 기술을 구사해야겠다고 의식을 한곳에 고착화시키는 경우 오히려 몸이 경직되어 역동적 상황에 적응하는 신체의 유연성을 상실한다. 그리고 상대에게 나의 의중을 간파 당하여 결정적인 실패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모름지기 시합의 운용은 평상시 훈련을 통해서 충분한 체력과 감각을 익히고 시합에서는 자동화된 감각에 의존해 순간적인 상황에 맞추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경기 방법이다.
* key point: 적절한 각성, 편중된 주의집중 금지, 집중력, 인내심, 경기흐름은 강약 리듬, 정중선을 흩트린 후 과감한 공격, 삼살법 적용, 자동화된 경기감각 활용
* 스포츠 심리 분석:
경기를 맞이하여 부정적인 스포츠심리(불안, 긴장, 초조, 부정적인 예측 등)는 교감신경을 강하게 자극하여 신체적, 행동적 불안한 증상을 유발하고 각성을 고조시킨다. 이러한 증상은 섬세한 검도경기에서는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경기력을 저하시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는데 방해가 된다. 각성이 상승되면 선수는 주의집중의 폭이 좁아져 마음을 한곳에 뺏기게 된다. 그리고 우선 상대선수의 경기운영과 전체 경기흐름을 올바르게 파악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역동적으로 수행되는 경기에서 의식의 폭이 좁아지고 사고력이 경직되어 다양하고 유연한 경기운영의 판단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경기에서 각성이 적절하면 순간적인 시합 전술의 암시를 얻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
경기를 수행하면서 왕성한 기백을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것보다는 적절한 상황 속에서 이용한다면 상대선수에게 심리적인 압박감과 위기감을 고조시켜 경기심리를 위축시키고 충실한 기술이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주의집중의 폭을 좁게 만들어 유연한 판단을 방해할 수 있다.
삼살법의 검도이론은 실전에서 효과적으로 적용시키면 상대선수의 기량을 저하시키고 자신의 실력을 극대화시키는데 훌륭한 전술이 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