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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 무시무시한 주술

책, 그 무시무시한 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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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7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499g | 153*224*20mm
ISBN13 9788970652542
ISBN10 89706525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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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심 교수는 아직도 이렇게 책들을 들고 다녀야 하나? 어깨에 멘 가방만 해도 보통 무게가 아닐 텐데. 하나는 내가 들고 가지.”
답십리 집에 들르기 전 어느 출판사에서 도록이며 고전 주석서들을 구입했는데, 그것들을 묶은 비닐 끈이 손가락을 잘라낼 듯 살을 파고들었다. 손수건을 꺼내 십자 매듭 부분을 감싼 뒤 책 꾸러미를 오른손으로 옮겨 들고, 부친의 익숙한 걸음을 뒤따르던 참이었다.
부친은 내 오른손에 들려 있던 책 꾸러미를 빼앗다시피 하셨다. 먹을 것 많은 고모 집에 가겠다고 조르는 어린 나를 데리고, 새벽녘 광장시장으로 떠나는 변두리 승합차 정거장으로 향하시던 그때의 그 묵묵한 발걸음을 옮기시면서.
“아직도 이렇게 많은 책을 봐야 하는 거냐? 피로하지 않게 자주 눈을 감고 쉬어라. 작은 차라도 하나 구입하지 그러느냐?”
훌쩍 돌아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기묘한 음색을 이루며 8월의 늦은 오후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북경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고 2주 동안 중국 여기저기를 여행하고 돌아와 부모님을 뵈러갔던 날, 맥주라도 한잔 하자고 하시는 부친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굳이 향했다.
부친이 들어다주신 책 꾸러미를 받아들고 빈자리를 찾느라 허둥대어, 평소와 달리 부친께 고개를 숙여 보이지 못했다. 가까스로 자리에 앉은 다음, 골목길을 터벅터벅 올라가시는 부친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그것이 부친의 마지막 뒷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일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불길한 언어는 배꼽 아래쪽에서부터 가슴팍으로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그날 밤 새벽 두 시, 친정에 다니러 와 있던 누이동생으로부터 부친이 급서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거짓이라고, 꿈이라고 생각하면서 대학병원 영안실 침대에 누우신 부친의 주름진 손을 움켜쥐고 뜻 모를 기도를 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것이야말로 책이 내린 무시무시한 주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004년 8월 여름, 부친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부친의 마지막 뒷모습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은 주쯔칭(朱自淸)의 단편 《아버지의 뒷모습》이 나의 뇌리 속에 잔상을 남기고 그 잔상이 어느 샌가 나의 뇌리 속에 똬리 틀고 나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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