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깡이마을은 부산의 굳은살이다.” --- p.7
“‘깡깡이마을’이란 이름은, 선박이 본격적인 수리에 들어가기 전에 배 외관에 붙어있는 조개껍데기나 녹슨 부분을 벗겨내기 위해 작은 망치로 때리던 소리가 ‘깡깡’ 한다고 해서 유래했다. 그렇게 해야만 새로 페인트칠을 하고 선박을 새로 단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28
“깡깡이 일은 대부분 아주머니들이 했다. 전국 팔도에서 피난이나 생활고 때문에 대평동으로 흘러온 여인들이었다. 전쟁 통에 남편을 잃거나 다양한 사정으로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여자 혼자 자식들을 길러야 하는 상황에서 깡깡이 일은 고되지만 거의 유일하게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였다. 그녀들은 작은 깡깡이망치 하나를 들고 매일 새벽마다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 위에 올라 쇠를 때려서 아이들을 키웠다. 그녀들에게 깡깡이망치는 척박하고 거친 삶을 일구는 거의 유일한 무기였던 셈이다. 아시바에서 떨어져 누워있을 때도, 매일매일 귀를 때리는 깡깡 소리에 청력을 잃어도, 망치질 할 때마다 튀는 녹과 페인트 부스러기에 얼굴 피부가 상해도 그만둘 수 없는 일이었다.” --- p.31
“한때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으로 가야 한다던 얘기가 있었다. 가볍고 화려한 것을 좇는 시대정신이 담긴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바람 부는 날, 깡깡이마을로 간다. 좁은 골목길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는 드럼통과 고물 등속은 그대로 우리 삶을 보여주는 하나의 오브제다.” --- p.43
“굳이 의미심장하게 해석해보자면 육지가 감당할 수 없었던, 시대가 채 보살피지 못했던 사람들을 품어 안은 곳 또한 이곳 대평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중앙의 손이 닿지 않아 보호받을 수도 없었던 고립된 공간.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시대가 감당하지 못했던, 육지가 감당할 수 없었던 역사의 압력을 대신 품어 안은 역설의 마을. 깡깡이마을은 그렇게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왔기에 육지의 문법과 논리로는 해석 불가능한 새롭고 낯선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 p.68
“남항동 대평초등학교 교정에는 ‘한국 근대 조선 발상 유적지’ 라는 기념비가 있다. 조선업계의 실업인 단체 반류회가 1989년 11월에 세운 것이다. 영도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한국 조선업의 요람이며 해운입국의 모태이다. 그중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 바로 1887년 10월, 지금의 대평초등학교 자리에 세워졌던 다나카 조선소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이기 때문이다.” --- p.85
“꼭 그 말처럼 대평동은 부산뿐 아니라 전국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풍부하고 의미 있는 근대문화유산으로 가득한 보고이다. 부산항과 원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경관 자원뿐 아니라 인근에 천마산, 남부민새벽시장, 자갈치시장, 용두산, 남포동, 롯데타운, 영도대교, 절영산책로, 흰여울 문화마을, 삼진어묵 등 최근 들어 한창 주목받고 있는 관광지들과 인접해있다. 여기에 적산가옥, 이북동네, 부산 최초의 주공복합아파트인 대동대교맨션, 영도 최초의 유치원인 대평유치원 등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p.140
“깡깡이예술마을사업은 해양과 재생, 커뮤니티라는 세 가지 핵심비전을 축으로 진행된다. 우선 영도의 관문지역으로서의 대평동이 가진 풍부한 해양생활문화와 근대 산업유산을 바탕으로 항구도시 부산의 원형을 재생하려 한다. 감천문화마을로 상징되는 산복도로 재생에 이어 해양문화 수도인 부산만의 특색을 바탕으로 하는 도시재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또, 기존의 개발형 북항 모델과 달리 근대문화 산업유산을 보존하고 문화예술의 상상력을 불어넣는 재생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하며 끝으로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교감하는 문화예술 커뮤니티 형성을 통해 부산의 원도심과 영도를 연결하는 관문지역으로서의 재창조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때 변방으로 밀려났던 사람들의 이야기, 고단한 삶을 이겨내기 위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재발견하는 일이며 마을이 가진 의미와 가치, 대평동만의 독특한 문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켜켜이 쌓인 이 마을의 모든 것이 사실은 문화이고 예술이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삶이 그렇다.”
--- p. 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