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의 스무스 재즈, 그 방향을 제시하다<br>데이브 코즈 "Saxophonic"
--- 2003.10.9. 재즈 칼럼니스트 김충남
Prologue
1999년 TV와 라디오를 통해 유독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가요가 있었다. 비록 1997년 임재범의 "비상" 앨범에 수록된 곡이었지만 뒤늦게 CF에 삽입되면서 '사랑보다 깊은 상처'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라디오를 통해서 비슷한 멜로디의 연주곡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아니 분명 같은 곡이었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의 색소폰 연주. 'Deeper Than Love'라는 DJ의 소개와 함께 데이브 코즈의 이름이 들렸다. 아시아팬들을 위해 특별히 보너스 트랙으로 추가된 곡이었다. 2002년 2월, 데이브 코즈의 내한공연은 물론 뮤직 비디오 촬영, 국내 가수의 콘서트와 앨범 제작에 참여 등 다양한 프로모선이 이루어졌다. 90년에 "Dave Koz"란 데뷔작을 발표한 후 정확히 10년 만에 그의 이름이 한국팬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New and Best
데이브 코즈! 따뜻하고 열정적인 연주 그리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90년대 이래 미국 컨템포러리 재즈계를 대표하는 색소포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뮤지션이다. 특히 아시아 보너스로 'Deeper Than Love'가 수록되었던 "The Dance" 앨범 그리고 2001년 그의 친구들과 함께 발표한 캐롤 앨범 "A Smooth Jazz Christmas"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케니 G, 데이빗 샌본과는 또 다른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보여주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지금 새 앨범을 들고나와 더욱 진일보한 음악을 들려주려 하고 있다. 주저 없이 데이브 코즈 최고의 작품이라 확신하고 싶은 놀라운 앨범, 색소폰과 그가 혼연일체가 되어 탄생한 "Saxophonic"은 기존의 음악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그리고 색소폰이 원하는 사운드를 담은 역작이라 할 수 있다.
The Change of the Smooth Jazz
"Saxophonic"을 얘기하기에 앞서 현 미국 컨템포러리 재즈계의 상황에 대해 짧게나마 언급해볼까 한다. 스무스 재즈라고도 종종 사용되는 미국에서 대중화된 퓨전 재즈는 80년대 확실히 자리를 잡고 9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보이는 듯싶었다. 하지만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음반 시장의 불황 속에서 점차 변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음악팬들의 취향 변화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거의 20년간 스무스 재즈는 식상할 정도로 대동소이한 음악을 들려주었던 게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 이제는 지겨울 정도이다. 현재 이 장르에서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워너 재즈나 GRP 레이블의 상당한 작품들이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음악팬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이 곳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올 초에 발표된 밥 제임스의 신보 "Morning, Noon & Night"에는 현란한 스크래치와 피아노의 듀엣 연주가 오프닝을 장식하였으며 데이빗 샌본, 크루세이더스, BWB는 70년대의 올드 스쿨 펑크로 돌아갔다. 이들은 더 이상 멜로디에 국한되어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미국 대중음악의 가장 중요한 코드가 되고 있는 힙합 혹은 일렉트로니카를 자신들의 음악에 접목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는 데이브 코즈에게도 마찬가지이다.
Inside of the Saxophonic
수록곡 리스트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세 개의 ACT를 통해 네 곡씩 분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각 ACT는 위에서 언급된 스무스 재즈의 변화, 그리고 이번 앨범에서 데이브 코즈가 시도한 새로운 변화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데이브 코즈가 보여줘 왔던 그의 친숙한 음악들이 ACT에 구별 없이 한두곡씩 수록되어 있는데('Love Changes Everything' 'Undeniable' 'Definition Of Beautiful' 'One Last Thing') 그렇게 보면 이번 앨범은 변화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그의 모든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정말로 그의 색소폰이 가는대로 음악을 담은 색소포닉한 작품인 것이다.
우선 ACT 1은 최근 미국 스무스 재즈계의 가장 주된 흐름이자 할 수 있는 펑크에 대한 탐구로 'Honey-dipped'가 시작되는 순간 색소폰의 단일 멜로디 위주로 전개되던 기존의 스무스 재즈와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80, 90년대에도 펑키한 연주는 종종 있어왔지만 요즘은 다양한 브라스 앙상블을 통한 그루비한 사운드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데이브 코즈는 이번 앨범에서 알토, 소프라노, 테너 그리고 바리톤 색소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으며 이를 오버더빙 그리고 트럼본, 트럼펫의 참여를 통해 브라스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ACT 2에서는 현란한 디제잉이나 랩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리듬과 비트에 대한 관심을 나름대로 반영하고 있다. 우선 'Let It Free'는 스무스 재즈계에서도 종종 시도되었던 형태로 중간 중간에 샘플링된 리듬을 삽입하여 정형적인 음악에 변화를 가하고 있다. 그런 반면 데이브 코즈가 가장 만족했다는 'Saxophonic'은 본작에서 가장 하드한 작품으로 펑키란 연주와 일렉트로 힙합을 가미하여 최근의 팝음악을 확연하게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만족하는 부분은 ACT 3로 "Saxophonic" 앨범의 여러 시도들이 정리되고 있는 부분이다. 먼저 크리스 보티가 트럼펫터로 참여한 'Sound Of The Underground'은 귀에 익은 멜로디가 들리는데 바로 리 모건의 명곡 'Sidewinder'을 샘플링으로 사용하고 있다. 'Saxophonic'과 함께 가장 실험적인 작품으로 데이브 코즈의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관심 그리고 앞으로 그의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런 반면 'Only Tomorrow Know'는 외형적으로는 새로운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데이브 코즈의 기존 음악과 일렉트로니카가 적절하게 가미된 친숙하면서도 매력적인 작품이다. 미디엄 템포의 발라드에 일렉트릭 퍼커션과 로봇 소리를 연상시키는 보코더를 사용한 이 작품은 앞으로 스무스 재즈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Epilogue
데이브 코즈의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깨달은 사실 두 가지가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 그리고 "음악은 살아있다" 최근의 스무스 재즈를 들으며 경험했던 불만 그리고 가끔 발견했던 가능성이 데이브 코즈의 "Saxophonic"을 통해 희망으로 바뀔 수 있었다. 물론 국내에 소개되는 스무스 재즈 앨범들이 대부분 80, 90년대 사운드를 지향하는 작품들이지만 이 세계가 결코 고여 있지만은 않다. 특히 재즈의 다양한 장르 속에서도 가장 대중성에 기댄 음악인만큼 스무스 재즈는 대중음악과 끊임없이 호흡할 것이며 조만간 새천년에 어울리는 스무스 재즈의 모습이 탄생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 분명히 많은 이들은 틀림없이 데이브 코즈의 "Saxophonic"를 기억할 것이다. "Saxophonic"은 새 천년 스무스 재즈의 이정표를 제시한 선구자적인 작품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