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어록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서민사회가 바탕이 된, ‘자주독립된 한국의 창건’ 그것이 본인의 소망의 전부다. - 『국가와 혁명과 나』 (1963.9.1)
나는 일하는 대통령이 될 것을 국민 앞에 약속한다. 도시 건설도 내가 직접 살필 것이며, 농촌의 경지(耕地) 정리도 내가 직접 나가서 할 것이다. 산간의 조림(造林)에도 내가 앞장설 것이며, 전천후 농토 조성에도 내 힘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어업전진기지나 공장 건설에도 더욱 부지런히 찾아다녀 그 진도를 격려할 것이며, 기공·준공식에도 쉬지 않고 참석할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자립’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착수하여 자립의 길을 단축시켜 나갈 것이다. - 제6대 대통령 선거 방송연설 (1967.4.15)
외국에서 들여오는 주의, 사상, 정치제도를 우리 체질과 체격에 맞추어서 우리에게 알맞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내가 주장하는 민주주의다. 우리는 서양 사람들이 입는 양복을 그대로 입을 수는 없다. 저고리 소매도 잘라 내고 품도 줄여야 입을 수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도 바로 이와 같이 우리 실정에 맞추어야 한다. - 제5대 대선 서울 유세(1963.9.28)
큰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작은 자유는 일시적으로 이를 희생할 줄도 알고 또는 절제할 줄도 아는 슬기를 가져야만 큰 자유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 국군의 날 유시(1974.10.1)
사회의 불의(不義)를 절차와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시민의 감정으로 시정해 보겠다는 조급성은 또 새로운 불의를 가져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제7대 국회의원 총선 처리 특별담화문(1967.6.16)
자유는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며, 평화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자의 것이다. - 아시아태평양 각료회의 치사(1966.6.14)
통일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우리는 공산식으로 통일은 못 하겠다. 통일이 된 연후에 북한 땅에다가 자유민주주의의 씨를 심을 수 있는 민주적인 통일을 하자는 것이다. - 제6대 대통령 선거 유세(1967.4.23)
북한 위정자들이 우리와 핏줄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술을 마실 때에도 상대방이 공산당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 남북적십자 본회담 시 지침(1972.8)
우리의 적은 빈곤과 부정부패와 공산주의다. 나는 이것을 우리의 3대 공적(公敵)으로 생각한다. - 제6대 대통령 취임사(1967.7.1)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과 언론의 무책임한 자유, 왜곡된 자유, 과잉된 자유를 방치한다는 것은 스스로 구분되어야 한다. - 시국수습에 관한 교서(1964.6.26)
우리가 진실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목전의 시련과 고난이 아니며, 시련과 고난 앞에 굴복하는 실의(失意)와 체념인 것이다. - 근로자의 날 메시지(1964.3.10)
어떤 사람은 자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큰 잔치를 베풀고 금시 국민을 호강시켜 줄 것같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다 하루 잘 먹고 아흐레는 굶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 중앙방송을 통한 정견발표(1963.9.23)
우리는 가난한 조국의 현실을 우리 조상의 잘못이라고 원망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의 조상을 원망하기에 앞서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 자신이 원망 듣는 조상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 해외공관장에게 보내는 친서(1967.12.12)
군단에서 지시가 내려가면 말단 부대의 소대장에게 전달된다. 그 후 사병들이 일을 하게 된다.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물어보면 소대장은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전화로 중대장에게 ‘예, 명령 하달했습니다. 잘되어 갑니다’라고 보고한다. 중대장은 다시 대대장에게, 대대장은 연대장에게, 연대장은 사단장에게, 사단장은 군단장에게 이런 식으로 보고한다. 이래 가지고는 일이 안 된다. 귀와 입으로 일하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다. 다리와 눈으로 일하라. 명령은 5%이고 확인과 감독이 95%다. - 3군단 포병단장 시절 부하 장교들에게 강조했던 말(오정석 예비역 육군 소장의 회고)
나는 물론 인간인 이상 나라를 다스리는 데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당대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일하지 않았고, 후세 사가(史家)들이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일해 왔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다른 나라 부럽지 않게 떳떳이 잘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난 일이 없다. - 기자와의 환담(1977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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