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과 재물을 조상에게서 상속받진 못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슬기롭고 현숙한 아내인 당신을 내게 그리고 우리 가정에 천사요 복덩어리로 보내주셨습니다. 여보,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 남편 조정용 목사의 헌사
신앙인이 조심해야 할 것들 중 하나가 간증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내 삶을 이끌어 오신 은혜에 감사한다고 하지만, 자칫 하나님의 경륜에 앞선 내 열심과 생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내기까지 고민이 길었다. 글을 쓸 때 나는 한 가지 기준을 세웠다. 있었던 사실을 더하지도 말고, 초라한 사실을 덧칠하지도 말자는 마음의 중심이다. 이 글의 목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귀 기울이심이지, 내가 잘 해서 뭔가를 이루었다는 자랑이 아니다. 다만 이 책의 어느 한 대목 한 구절에서든, 단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와 감사 그리고 여정의 자극이 될 수만 있다면, 이 책은 사명을 다 한 것이다. -머리글에서
시간은 참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다. 물론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저절로 무엇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간을 값지게 채색하려고 씨름하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변화를 주는 게 또 시간이다. 교회 하나를 개척해 이만큼 이루려면, 생사를 넘나드는 시련과 연단의 연속이 있다. 성도의 삶이 그러해야 하듯, 생명이 자라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원리와도 같다.
나에게 있어 교회사역은 정말이지 죽음을 통과해야만 세워지는 ‘구별된’ 성업, 거룩한 직분이었다. 나는 목회자의 아내로 48이란 세월을 살았다. 목회는 퇴근이 따로 없다. 예수님 한 분을 구세주로 믿고 함께 가는 길이지만, 사역자가 몸과 마음과 시간을 다 내놓지 않으면 하루도 지탱이 어려운 공동체가 바로 교회 살림살이였다.
남편은 자신에게는 냉혹했지만 성도와 교회에 어떤 불편이라도 끼칠까 봐 늘 조심하고 배려만 했다. 하다못해 당연히 치리해야 하는 것도 누구 하나 상처를 받을까 봐 혼자 감내했다. 남편은 뼛속 깊이 목회자다. 한 가정에서는 세 딸의 아버지요, 교회 개척의 힘겨움을 정면으로 겪으면서도 오로지 한 방향만 바라보았다. 바로 교회와 성도들이다. ‘바보 사모’인 내가 교회에서 가끔 입바른 소리를 내며 ‘못된 사모’가 되어야 했던 것은, 남편이 마냥 ‘좋은 목사’였던 이유에서다.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주시는 가장 완전한 복은 산상수훈의 복이다. 물론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기에, 매일 매일의 삶에서 벌어지는 죄의 고백과 필요를 따라 드리는 간구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바라고 사모하며 감격하고 소망하는 복은 오직 예수그리스도가 구세주로 믿어지는 복인 것이다. 내게 좋아 보이는 것이 진짜 내게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기에, 나와 남편은 주어진 그 날을 하나님이 주신 날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남편에게 풍요로운 목회의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다. (중략) 우리를 초청한 교회는 우리에게 더 없이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고액의 사례비는 물론 아이들 교육 일체를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남편과 딸들의 유학비용을 둘러싸고 성도들로부터 억측과 억울한 소리를 들었던 시기였다. 남편이 학위를 받은 후 마음이 지치고 짐짓 상심해 있던 나는 남편에게 ‘한 번 진지하게 고려해보자’고 졸랐다. 하지만 남편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 “어려운 시절 함께해온 성도들을 외면하고 우리 가족들 편히 지내자고 이 교회를 뜨자는 말이오? 나는 절대로 그런 ‘삯꾼 목자’가 되고 싶진 않소. 이 성도들과 함께 목회를 마칠 테니, 그 얘긴 두 번 다시 꺼내지 맙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며 기뻐할 수 있는 복 외에 굳이 복 하나를 더 꼽으라면, 노년의 복을 꼽겠다. 내가 손자들을 사랑하면서 가진 생각의 기준은, 세대 간 대화단절이 없는 노년이 되자는 것이었다. 아무리 지나온 세월이 힘겨웠고, 그 일이 옳았어도 내 삶의 방식을 손자들 세대에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 하나님 한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말씀 교육 외에는 손자들에게 무엇도 설교하려 하지 않는다.
눈앞에 펼쳐진 일에 치여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 휴식도 없이 허리가 휘도록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인생. 그리고 목회일선에서 은퇴하여 쉼표를 찍으며 살아가던 어느 날, 운명처럼 찾아온 글쓰기는 나의 노년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가뭄 뒤의 단비였고, 무더운 여름날 이마의 땀을 씻어주는 시원한 바람이었다. 아니 잠자던 기억세포들과 내 안의 눌려있던 감정들을 일제히 깨워준 회춘의 통로가 되어주었다.
요즘 시대는 세상뿐만 아니라, 기독교 내에도 유혹과 타락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세상에서 누군가는 사회적 부모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일의 일부를 우리 부부에게 맡겨주신 거라면, 더 없이 감사한 은총이다. 맡겨주신 주님께서 이 일도 이끌어 가실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