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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불편하고 심심한 나라

느리고 불편하고 심심한 나라

: [한겨레] 권태호 기자의 따뜻하고 따끔한 세상 이야기

리뷰 총점7.5 리뷰 4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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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5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466g | 140*210*30mm
ISBN13 9791186256732
ISBN10 118625673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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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권태호
1993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했다. 사회부?경제부 사건 현장에서 컸다. 사회부 사건팀장(2002~2003)으로 일할 때, 당시 팀원 중 현장취재 기자로 [한겨레]에 들어와 종로경찰서 출입기자를 맡았던 소설가 김훈이 있었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정치부에서 한나라당반장-청와대출입기자(이명박정부)-정치팀장을 거쳐, 정치부장까지 맡았다. 이 과정에서 두 번의 대선을 치렀는데 이명박, 박근혜가 당선됐다. 2016년 국제에디터로 보직이 바뀌자 이번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 이번 대선에서 취재 현장에서 한 발 비켜나 있게 된 것을 ‘역사적 다행’이라 여긴다.워싱턴특파원(2009~2012)을 지냈고, 2017년 4월부터 논설위원으로 있다.
1966년 대구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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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배는 저와 대여섯 살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다른 경찰팀 후배 기자들은 마치 아들, 딸 대하듯 편하게 대하면서도 캡인 저에게만은 깎듯하게 존대말을 쓰고, 의도적으로(제가 보기에는) 어려워했습니다. [한국일보]에 있을 때 김 선배의 후배였던 기자가 [한겨레]에서 부장을 맡고 있기도 한데 말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처사가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조직과 계통을 중히 여기려는 김 선배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됐습니다.
김 선배는 아침에 종로경찰서에 나가 아침보고를 마치고 나면 취재를 나가거나 종로서 앞 참여연대 느티나무카페 또는 인근 커피숍에서 원고지에 기사를 씁니다. 연필로. (김 선배는 필통을 가지고 다니는데, 직접 칼로 연필을 깎아서 썼습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한 뒤, 왼손으로는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움켜쥐듯 머리를 받칩니다. 왼손 둘째와 셋째 손가락 사이에 끼인 담배에서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고, 오른 손으로 기사를 씁니다. 끈 달린 뿔테 안경을 쓰고서. 이 모습을 매일 바라보는 중년의 커피숍 아주머니가 그 모습에 반했다든가 어쨌던가 하는 이야기도 전해오긴 합니다.
--- p.59~60

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한겨레] 기사의 문패가 ‘잊지 않겠습니다’이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잊으려도 잊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들은 의지로 잊지 않아야 하는 게 사람 세상이어야 할 것이다.
어쩌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사자가 달려들면 정신없이 도망가다 가장 자그마한 새끼 노루 한 마리가 사자의 거친 앞발에 픽 쓰러지며 죽어나가고 나면, 더 이상 사자떼가 자신들을 덮치지 않으면, 그저 아무 일 없었던 듯 까만 눈동자를 천연히 하고선 다시 태연히 풀을 뜯는 노루떼들이, 짐승이지만 ‘어찌 저럴까’라는 생각이 가끔 들곤 했다. 사람 세상은 ‘동물의 왕국’과는 다른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거듭 든다.
이듬해 삼풍 사고라는 더 엄청난 참사를 겪기도 했지만, 엄청난 참사 앞에서 무감각했던, 철부지로 그날들을 살았던 ‘나’가 20년 지난 오늘 부메랑으로 돌아와 나를 찌른다.
--- p.86

기사가 소설과 다른 점은 픽션이냐, 논픽션이냐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수필과 다른 점은 객관과 주관의 차이입니다. 객관을 밑바탕에 깔기 위해선 사실(fact)에 대한 접근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사람과의 접촉은 없이, 그저 맨눈으로 휘휘 둘러보면서 자신이 느낀 감상이나 떠오른 생각들만으로 기사를 채우면 그 글이 아무리 유려하더라도 기사로서의 가치는 없습니다.
그 다음, 취재한 걸 다 쓰면 안 됩니다. 10을 취재하고 4~5를 쓰면 훌륭한 기사가 되지만, 10을 취재해서 10을 다 쓰면 중구난방, 중언부언이 되고, 5를 취재해서 5를 쓰면 헐거운 기사가 됩니다. 인터뷰한 사람을 다 적어 넣으면 곤란하고, 멘트는 각각이 나름의 개별적 의미를 지닌 경우에 한해서만 기사에 실어야 합니다. 따라서 똑같은 인터뷰를 여기저기 계속 따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그래도 ‘내가 고생한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인터뷰 내역은 기사가 아닌, 함께 제출하는 취재일지에 적어 넣으면 됩니다.
--- p.95

그리고 박상옥은 얼마 뒤 대법관이 되었습니다. 아마 박상옥은 억울했을 겁니다. 당시 그는 2년차였고, 자기 위의 선배들은 줄줄이 잘 나갔는데, 자기만 ‘불이익’을 당한다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나라 엘리트들의 공통된 특징은 절대로 ‘불이익’을 용납지 않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박상옥 입장에서 보자면, 억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 ‘박종철’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30년 뒤 억울해야 합니다. 왜 억울함은 ‘박종철’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어야 합니까? 박상옥은 억울하려 하지 않은 죄이고, 그 죄는 평생 단 한 번도 억울하지 않은 박상옥은 씻을 수 없을 것입니다.
--- p.117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의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독일 정부가 나치 잔당들을 수십 년이 지나도 지구 끝까지 쫓아가 법정에 세우는 것은 독일인들이 일본인들에 비해 유달리 양심이 고와서가 아니라 과거 세력과 단절됐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가 청산되지 않은 채 세워진 일본은 지금도 과거의 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이승만의 ‘국부 어쩌고’ 하는 움직임에 결코 동의할 수가 없다. 이승만은 자신의 정적 김구를 억누르기 위해 친일파와 손을 잡고, 이 땅에 ‘친일파의 나라’를 세웠다. 그리하여 이 땅은 독립군을 육성했던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아닌, 독립군 쫓는 일본군인을 배출했던 만주군관학교 출신이 대통령이 됐다. 70년 전, 히로히토에게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해 사쿠라처럼 죽겠다”고 충성을 맹세하던 이의 딸이 지금 한국 대통령이고, 같은 시각 히로히토를 받들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가 지금 일본 총리이다.
[암살]에서 주인공 안옥윤은 “16년 전 (김구 선생이 내린) 임무 지금 실행합니다”라며 친일파 염석진을 처단한다. 영화다. ‘70년 전 임무’, 우린 언제나 실행할 것인가?
--- p.119~120

최근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가습기 살균제, 그 이전 세월호 등은 ‘자본의 탐욕’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그보다 앞서 자본세력이 ‘돈’을 위해 ‘소비자의 위험’을 감수하려는(risk-taking) 것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정부, 국가의 부재가 근본 원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도 ‘자본의 자비’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책임’을 묻는 쪽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 우린 이 사고 이후에도 어쩔 수 없이 그래도 ‘사적 기업’보단 ‘공적 정부’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10년대와 어울리지 않는 1970년대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유령처럼 이 정부 주변을 부유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일어났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영국 회사다. 영국이나 미국은 가습기 자체를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일 그렇더라도 미국 환경청(EPA) 등의 까다로운 심사가 걸러냈을 것이다. 가습기에 살균제까지 쓰려는 경제와 문화 수준을 갖춘 나라라면 그에 걸맞은, 2010년대에 걸맞은, 정부기관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국가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면, 기꺼이 느리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다.
--- p.126~127

마을에서 이미자 ‘동백 아가씨’ 하나만 멋들어지게 불러도 ‘우리 동네 명가수’라는 자자한 칭송을 받던 이들이, 텔레비전 생겨나니 김추자, 펄시스터즈처럼 춤도 춰보라 소리 듣더니, 어느 순간 완벽에 가까운 군무와 노래로 무장한 소녀시대 수준을 넘어 이젠 세계화라며 비욘세 수준에 맞추라 한다. 불가능한 수준을 제시하고 이를 ‘경쟁력’이라 불러 모두에게 열패감을 안긴다. 돈을 많이 안 받는 것도 경쟁력이다. 영·미 노동자는 중국 노동자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
--- p.147

다음, 보수진영의 성매매특별법 옹호는 삐뚤어진 우리 사회 보수층의 천박성과 빈약한 도덕적 바탕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양심에 불도장 맞은 듯, 그 밑바닥을 맨몸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수라면, 제대로 된 보수라면, 벌써 오래 전에 우리나라의 성매매 상황에 대해 개탄하고, 이를 방치하는 정부를 비판하고 도덕재무장 운동이라도 펼쳤어야 마땅합니다. 미국의 보수파가 낙태, ‘게이메리지(동성결혼)’를 반대하듯 우리나라의 보수파는 성매매를 반대했어야 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보수파가 성매매 반대를 반대한단 말입니까?
이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무관치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집창촌은 일제시대부터 생겨나 친일파와 무관하지 않고, 그들 친일파들은 해방 이후에도 보수 지배계층을 형성했고, 산업화 시대에는 기생관광 등이라며 보수 정권에 의해 은연중 성매매는 조장되어 온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결국 오랜 시기를 거치면서 성매매 문제와 안팎으로 결합돼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게 돼버린 것이 오늘날 한국의 (일부) 보수계층입니다. 성매매 문제 하나를 통해 우리나라 보수 진영의 한 일면을, 이땅에 진정한 보수가 없는 상황을 보게 되는 우울함입니다.
--- p.151

보수할 게 없다는 것, 이게 대한민국 보수의 비극이다. 왕정, 헌정질서, 전통문화, 도덕. 외국의 보수들이 진보세력에 맞서 지켜왔던 것을 우린 자칭 ‘보수’들이 다 깨뜨려왔다. 외국에선 진보가 찬성하고, 보수가 반대하는 성매매가 우린 보수가 지지한다. 한국 보수의 독특함이다. 남은 건 ‘반공’ ‘친미’요, 그 뒤엔 ‘기득권’이 어른거린다. 홍세화는 이를 두고 “보수란 ‘가족·전통·자유’ 등을 보수하려는 정치세력이어야 하는데, 우린 분단 상황에서 ‘수구’가 보수를 참칭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강준만은 “한국 상류층의 애국심이나 윤리적 수준이 한국 평균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 p.169

정치권 논쟁은 늘 수단과 목적이 바뀐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은 ‘목적’이 아니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모두 아이들의 복지 향상, 여성의 사회참여 지원 등의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세계 각국에서 복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처럼 여야가 각자의 영토 하나씩을 지키겠다며 이런 논쟁을 벌이는 곳은 없을 것 같다. “내 공약은 이것이고, 그건 내 것 아니고”라는 식으로 말하는 대통령이나 총리도 없을 것 같다.
--- p.182

그 ‘댓글녀’가 보수 이념을 가졌거나, 극우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했고, 국정원에 취직할 때까지 그는 열심히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정원에서 팀의 일원으로 지시에 충실히 따랐을 것입니다. 좋은 점수, 학점 올리느라 노력했듯이 직장인 국정원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해 애썼을 것입니다.
‘무죄’입니까? 저는 ‘유죄’라 생각합니다. 사유하지 않은 죄, 판단하지 않은 죄.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군에 처음 들어가면 듣게 되는 말이 “판단하지 마”입니다. 이는 그저 ‘시키는 로 해’라는 뜻입니다. 김재규가 10·26을 일으킬 때, 부하직원들 중에는 상황을 전혀 모르고 그날 지시를 받고 그저 따른 정보부 요원 4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상관의 지시에 그저 따른 죄’ 밖에 없었다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사형됐습니다. 우리의 교육이 ‘무엇이 옳은 일인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지금처럼 ‘무엇이 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인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모습을 봐야 합니다.
--- p.191

박 대통령은 롤모델로 ‘엘리자베스 1세’를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불행히 돌아가셨고, 왕이 되기 전 오랜 고초를 겪었고, “잉글랜드와 결혼했다”며 독신으로 살았던 점 등에 감정이입 됐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사촌이자 스코틀랜드 여왕이었던 메리 스튜어트에 더 가까워 보인다. 메리는 아버지 제임스 5세가 세상을 떠나 1542년 생후 7일만에 왕이 됐다. 어린 시절을 프랑스에서 지내 영어도 못 했고, 음악과 가면극을 좋아했다. 정치는 ‘비선 실세’들 몫이었다. ‘정치’는 싫었지만, ‘여왕’은 좋아했다. 지저분한 범죄로 왕좌에서 밀려나 감옥에 갇힌 뒤에도, 본인은 복귀할 줄로 알았다. 계속 음모를 꾸미다 점점 수렁에 빠져들었다. 결국 엘리자베스 암살을 꾸미다 들통 났다. 1587년 2월8일, 참수됐다.
--- p.198

이 칼럼을 쓰기 직전, 예편 뒤 워싱턴에서 연구원으로 연수중이던 전직 장군을 만나 함께 저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이 칼럼을 썼습니다. 그 분은 미국과 한국에서 군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다르다는 것을 얘기하면서, 그 원인도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빨간 해병대 모자와 오랜 군복을 입고 시청 앞으로 나오는 ‘늙은 군인들’을 볼 때, 솔직히 저들이 해병대를 나온 건 맞나 하는 생각이 맴돌곤 합니다. 일당 몇 만원에 군복을 입고 거리로 나온다면,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군과 군복에 대한 모독입니다.
--- p.215

무엇보다 미국에선 학군이나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은 찾아보기 힘들고, 세금 탈루, 표절 등은 치명적인 범죄다. 이런 인사는 장관직은 꿈도 꾸지 않는다. 쪽방 투기는 합법 절차만 거쳤다면 미국에선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그 또한 미국에선 공직자가 그런 짓을 한다는 걸 상상하긴 어렵다.
--- p.222~223

종합하면, 미 경제시스템은 자국민 노동에는 최대한의 가치를, 외국 노동에는 최소한의 가치를 두는 구조다. 그래서 ‘소비자 천국’과 ‘서비스 지옥’이 공존한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기술만 있다면 먹고사는 데 큰 지장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졸자 실업문제도 마이스터고교 100개 만드는 게 해법이 아니라, 고교 졸업자에게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고통을 내가 받아야 해결이 가능하다.
--- p.227~228

결론을 말하자면 ‘따뜻한 기부’보다 ‘차가운 세금’이 먼저다. 말고 싶으면 말고, 내면 박수 받는 ‘기부’가 아닌, 내기 싫어도 억지로 내야 하는 ‘세금’이 사회를 지탱한다. 재단 만들고, 자기 아들·손자 대대손손 이사장 시키는 사회환원 대신, ‘세금 더 내겠다’고 주장하는 한국 부자들이 나와 이젠 국격을 좀 높여줬으면 한다. 자신의 세금을 올리라고 주장한 버핏은 자신의 재산 99%도 사회에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 p.230

과거 ‘분노’란 약자가 강자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자, 저항의 동력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분노’가 강자(또는 다수)가 약자에게 시위를 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를 많이 본다. 진보는 어느 사회에서나 대개 마이너리티다. 진보적 입장의 버락 오바마가 집권하고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보수주의 토대가 강한 남부 애리조나주에서 진보정치인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건, 그래서 더 비겁하고 위험해 보인다. ‘분노’는 마이너리티가 갖는 게 합당한 것 같다.
--- p.240

정부는 투자·소비를 통해 양극화를 해결하려 한다. 보자. 삼성전자가 투자를 늘린다, 고용이 는다, 임금이 오른다, 소비가 는다, 수요창출로 투자가 또 늘어난다. 선순환 구조다. 그러나 이때 늘어나는 고용·임금·소비는 주로 대기업 직원의 것이다. 그들의 수요도 삼성 같은 대기업 제품에 집중된다. 선순환은 ‘윗물’에서만 이뤄진다. 그러니 ‘잘사는 사람이 써줘야, 못사는 사람도 먹고 산다’(트리클다운)는 말도 점점 공허해진다. ‘윗물’과 ‘아랫물’을 터주는 작업이 병행하지 않으면 1분위 상황은 달라질 게 없다. 1분위 월평균 가구소득은 82만원이다. 연봉기준 1천만원도 안 된다. 우리네 이웃 5명 중 1명이 이렇게 산다. ‘꿈’이 더 떠나기 전에 붙잡아야 한다. 세금 한푼 더 낼까봐 득달같이 달려들면, ‘작은 꿈’이 둥지 틀 곳은 없다.
--- p.264

얼마 전 온 나라가 ‘삼순이’ 증후군에 푹 빠져 있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하나 있었다. “평범한 여자들에게 용기를 심어줬다”, “뚱뚱하고, 못생기고, 바로 내 이야기다.” 비록 김선아가 서른 줄이고, 일부러 살을 찌웠다고 하나, 자기랑 비슷하다니…. 제 정신인가? 나는 아내를 포함해 ‘삼순이’보다 더 예쁜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내 주변만 유독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거대한 집단최면이요, 어마어마하게 올라간 눈높이다. ‘삼순이’ 정도 되지 않으면 ‘평범’ 축에도 못 끼는 이상한 세상이다.
--- p.266

공론화 과정에서 스스로를 ‘서민’이라 말하는 사람은 무대 위에 나서도, ‘부자’라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서민’인 그들도 할 수만 있었다면, ‘투기’를 했을 것이고, ‘가진 자’들에 대한 원망에는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이’들에 대한 질시도 물론 섞여 있을 것이다. ‘서민’이란 단어는 어느새 무기가 되었고, ‘부자’는 ‘죄인’과 동의어가 되어가고 있다. 이 비정상적 상황을 타개하는 길은 ‘서민의 의식변화’가 아닌 ‘1.6%의 행동변화’에 있지 않겠는가?
굳이 ‘사방 100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는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부디,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내어달라. 당신들이 낸 돈은 내 아이 학교 운동장 한쪽에 나무 그늘 하나 더 만들어 줄 것이고, 내 아내가 빗물 울컥 토해내는 보도블록에 치마 버리는 일도 없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정으로 종부세를 낼 ‘가진 자’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종부세, 나도 미치도록 내고 싶다.
--- p.274

“동안이세요”라는 말은 이 시대 최고의 찬사다. 지식인들마저 자신의 글을 기고할 때 싣는 사진을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심지어 20년 전 것을 싣는다. 동안 신드롬은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넘는다. 롤리타 콤플렉스의 파생상품인가, 얼짱·몸짱 못 되는 이들의 틈새 마케팅인가?
동안은 ‘젊음’을 찬미하고, ‘늙음’을 차별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아이’는 귀해지고, ‘노인’은 늘어나니, 노인은 얼마나 더 뒷방으로 물러나야 하려나? 광속의 시대에 주름살은 인생의 훈장이 아니다. 경험과 지혜의 원천도 아니다. 스팀 청소기 사용법을 며느리에게 물어야 하는 시어미에게, 엑셀 사용법을 후배에게 배우는 선배에게 ‘늙음의 권위’는 없다. 연륜이 낡음으로 치부되는 곳, 오로지 새것과 젊음만이 추앙받는 사회에서 동안 신드롬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칼날 아래 나이 들어 보이는 건 결함이 될 수 있다. 이제 누구나 5살 정도는 어려 보인다. 그러니 예전처럼 얼굴이 제 나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정상인’이 비정상으로 뒤처진다.
동안은 경제력과도 비례한다. 신자유주의와 양극화가 동안 신드롬에까지 끼어들었다. 그 다음은 상업주의다. 잔주름과 칙칙함이라곤 현미경으로 봐도 찾기 힘든 이영애가 화장품 광고에서 “30대 여성 65%가 잔주름과 칙칙한 피부를 동시에 고민한다”고 약 올리듯 말한다. 안 살 수가 없다.
--- p.292~293

‘조직’이란 ‘개인’을 위해 ‘개인’들이 만든 것인데, 어느 순간 ‘조직’은 그 스스로 우상이 되고, ‘개인’은 ‘조직’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존재로 주체와 객체가 바뀌는 상황을 많이 보게 되고, 또 이를 당연시하게 됐다. 어느새 우리 사회가 거대한 조직폭력배 집단이 된 것처럼….
‘개인’이 ‘조직’보다 ‘개인’을 앞세울 때, 우린 그를 이기주의자로 여긴다. 그렇다면, ‘조직’은 ‘조직’보다 ‘개인’을 먼저 위해야 하고, ‘개인’도 ‘조직’보다 자신을 포함한 ‘개인’을 먼저 위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데, 여전히 ‘개인’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선 자신도 주춤하게 되고, 남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러하다.
70~80년대를 지낸 사람들이 처음에는 남이 만들어줬고, 나중에는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희미한 탈출구를 생각하자면, ‘개인’보다 ‘조직’을 앞세우는 것에 여전히 맘이 편하다면 본인의 선택은 그렇게 하고, 남에 대해서는 ‘조직’보다 ‘개인’을 앞세우는 선택에 좀 더 관대해지고, 그렇게 하도록 용납하고 배려해 주는 것이 답이 될 것 같다.
--- p.346~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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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세상을 직접 만지고 들여다 보면서 남의 기쁨과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은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말하고, 이 감수성이 작동되지 않는 사람은 쉬운 얘기를 어렵게 말한다.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질병은 창세기 이래로 인류의 오랜 유전병인데, 전염성이 강하고 약이 없다.
권태호의 글은 쉽게 읽힌다. 그의 글은 미리 설정된 이념의 좌표를 따라가지 않고 일상적 삶의 구체성을 통과해 나오면서 논리의 구조를 이룬다.
나는 언론의 자유란, 사실에 엄격하게 구속되는 부자유를 수용해서 그 부자유 위에 자유를 건설하는 전달자의 지성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권태호의 글은 사실의 바탕 위에서 의견을 구축한다. 그는 소리질러서 몰아붙이지 않고, 낙인찍지 않고, 웅성거리지 않고, 깃발을 흔들지 않는다. 그의 글은 여론형성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거칠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읽는 사람의 마음에 스민다. 이 스밈의 힘은 삶과의 밀착에서 나온다. 그래서 그의 글은 때때로 생활의 파편처럼 보이는데, 이 파편들을 들쑤시고 헤집어서 거기에 매몰된 억눌림, 희망, 분노, 결핍을 찾아낼 때, 그의 글은 가장 좋은 대목에 이른다.
나는 오래전에 권태호 캡의 휘하에서 현장기자노릇을 한 적이 있는데 오늘 그의 글에 나의 글을 덧붙이게 되니, 기쁘다.
- 김훈 (소설가)

‘현대 저널리즘의 아버지’로 불리는 월터 리프먼이 1974년에 사망했을 때 [뉴욕타임스]는 “리프먼은 찰나적인 것을 통해 영원을 보도록 했다”는 찬사를 바쳤다. 이 찬사는 칼럼을 쓰는 모든 언론인들이 꿈꾸는 궁극적인 이상이다. 하루 또는 며칠간의 수명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칼럼이 먼 훗날까지 거론되고 인용될 정도로 긴 수명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와 통찰력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권태호의 칼럼을 애독할 때마다 리프먼을 떠올리곤 했다. 그의 칼럼이 “찰나적인 것을 통해 영원을 보도록 했다”고까지 말할 순 없을망정, 칼럼을 쓰는 시점의 지배적인 사회적·조직적 분위기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는 뭔가 묘한 게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어느 언론학자는 한국 저널리즘을 ‘선악의 이분법에 기반을 두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정파적 저널리즘’이라고 규정했는데, 권태호는 이 점에선 예외적 존재다. 그의 칼럼은 공간적으론 깊이를 추구하고, 시간적으론 미래를 내다보며, 시공간을 아우르는 기본 자세에선 독자를 카타르시스 제공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이해와 통찰을 위한 소통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의 칼럼이 시간이 꽤 흐른 후에도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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