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세기에 걸쳐 사서들은 알 수 없는 일들로 고통받아왔다. 사라지는 책들, 이상하게 쌓여만 가는 벌금, 미분류 도서, 낱장이 사라진 책들, 이상한 곳에 놓여 있는 책들, 가장자리에 뭐라고 적어놓은 책들……. 여러 경우 학생들이 누명을 쓰고 대출 자격을 정지당하거나 책을 반납, 교체, 세척, 재배열하기 전까지 졸업을 미루는 일을 겪어왔다. 다들 어찌나 뭘 모르는지! 얼마나 억울한 일이었는지! 생각하는 고양이들이 반납 트롤리에서 책을 끄집어내어 서고 밑으로 끌고 다녔으며, 무슨 영문인지 ‘제자리에 없는 책’들이 사실은 도서관의 가장 으슥하고 먼지 많은 타우저리에 모인, 익명의 생각하는 고양이들이 읽고 있는 책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부주의한 인간들은 당해도 싸지. 오늘 아침, 도서관 고양이는 안내 데스크 뒤를 살그머니 미끄러져 타우저리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2장 신입생」중에서
문득 개미들이 그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전혀 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떠올랐다. 대신 그들 사이에는 마술 같은 유대관계가 존재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것을 원했고 그것을 서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그 일을 계속하는 것뿐이었다. 의견이 다른 개미는 없는 걸까? 도서관 고양이가 생각해보았다. 욕심 많은 여왕개미를 먹여 살리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 행렬에서 빠져나오는 개미는 없는 걸까? 개성 강한 개미라든가? 젖은 포스터를 하나씩 밟으며 보도를 걸어가던 고양이는 인간 사회에서 유행하는 포스터 대량 인쇄로 인해 아마존의 비슷한 개미들의 집이 얼마나 부서지고 펄프가 되었을까 생각해보았다.
---「4장 정치」중에서
니체 꿈을 꾸려는데 계속 방해를 한다면, 솔직히 저 녀석은 잡아먹혀도 싸. 좋아. 어디 있지? 근처의 새야? 어디 있니, 근처의 새야? 생각해보니 친하게 지내는 게 좋겠다. 이제 나와 봐, 근처의 새야. 너한테 줄 벌레가 있어. 근처의 새야……? 하지만 도서관 고양이가 일어나자마자 근처의 새는 아내를 만나 근처의 아기 새들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조지 스퀘어 근처의 이미 짜증나는 새 소리를 증가시키기 위해 날아가버렸다. 마침내 평화로군! 도서관 고양이가 생각했다. 새도 없고, 인간도 없고. 행복해라! 니체여, 내게로 오시오. 고양이는 다시 낮잠을 청했다.
---「8장 근처의 새」중에서
도서관 고양이는 공포에 휩싸여 바라보았다. 몇 야드 떨어진 곳, 자갈을 깐 길을 당당히 걸어오는 것은 바로 프랑스에서 온 사촌 비블리오 샤였다. 사순절을 보내기 위해 프랑스를 떠나 에든버러로 왔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 비블리오 샤는 《생쥐와 생쥐 잡기: 까뮈적인 사냥의 현상학을 향하여》라는 제목의 책을 구하러 왔다. 도서관 고양이가 그 사촌에게 어떤 정도의 적개심을 있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비블리오 샤의 의기양양한 태도, 하늘거리는 목덜미 털,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지난밤에 읽었다는 《사르트르의 사색》, 위스커스 사료를 잘난 체 거부한 것, 모두가 도서관 고양이에게서 기묘한 분노를 자아내었고, 도서관 고양이 스스로도 그것을 이해할 수도, 참을 수도 없었다. 행동거지나 성격으로나, 비블리오 샤는 사프 랜든 톰의 정반대라고 볼 수 있었다.
---「10장 비블리오 샤의 등장」중에서
우리는 바빌론의 비밀을 알고 있어. 동양의 진실과 지구상의 모든 대륙이 지니는 아름다움과 문제를 속속들이 알고 있고. 우리는 《실낙원》의 신이되, 허세를 부리지 않고 침착한 신이지. 우리 생각하는 고양이들로 말할 것 같으면, 지식을 위해 살지.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야. 하지만 인간들은 명성과 돈, 섹스와 전쟁 등 개인적인 욕구 아래 지식을 깔고 뭉개지. 그들은 대학에 값을 매기고 그것을 사람 죽이는 기계로 만들며, 지식을 마치 금괴처럼 탐낸다고. 그들은 모두 《실낙원》의 사탄 같아. 언제나 여기저기서 움직이며, 시끄럽게 소란을 일으키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더러 거만하다고 하지! (……) 하지만 네 질문에 대답하자면, 인간들은 우리가 말을 못해서 침묵한다고 생각해. 사실, 우리는 말수가 적어서 침묵하는 것이지. 인간 철학자 데리다는 이것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인간들은 그의 말을 좀 더 주의 깊게 들어야 해.
---「11장 황혼」중에서
학생 아파트였다. 바로 앞방에는 인간 서너 명이 바닥에 앉아 작은 컵으로 맑은 액체를 마시고 있었 는데, 그것이 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우스운 모양이었다. 왼쪽 다른 방에서는 시커먼 구름이 복도로 흘러나오며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경보가 천장에서 울리기 시작했고 다른 또 하나의 인간은 세 발 의자에 겨우겨우 균형을 잡고 올라가 빗자루 끝으로 문제의 경보기를 내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은 문이 마구잡이로 열리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책상 스탠드 불빛이 비추는 노트북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고, “그르르릉”거리는 소리, “아아아아악” 하는 소리(그리고 더 지독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것이 다른 편의 삶이로구나. 도서관 고양이는 수염 난 인간과 맛있는 것을 따라 키득거리며 술 마시는 인간들이 모인 큰 방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얘들아, 새 룸메이트가 생겼다.”, “어머머머머머! 세상에 너무 귀엽다. 키워도 될까?” 물론 안 되지, 이 바보야. 도서관 고양이가 생각했다.
---「11장 행방불명」중에서
추천 도서: T. S. 엘리엇의 《캣츠》
섭취한 음식: 눈덩이 속에서 발견한 극저온 냉동 지렁이
기분: 사색적, 반성적
인간 관련 발견 사항: 그들은 현재를 살지 않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