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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미의 구슬 세트

여미의 구슬 세트

[ 전2권 ]
정오찬 | 뮤즈 | 2017년 06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0 리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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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6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800쪽 | 140*210*60mm
ISBN13 9791104913129
ISBN10 110491312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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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 가문의 삼남 서신율이 식솔들을 이끌고 이탈산을 벗어나고 있었다. 감히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이탈산은 하늘을 뚫을 기세로 높이 솟아 보는 사람을 위협했다.
산세는 험준하고 그 대부분이 바위인지라 산을 오르는 인간들은 쉽게 미끄러져 크게 다치곤 했다. 하나 험준한 만큼 이탈산 곳곳엔 갖가지 진귀한 식물들이 자라난다.
이탈산에서 나는 약초와 식물은 인간의 약학으로 구현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 그 효과는 가히 도깨비구슬을 웃돈다고 하여 부적을 쓰는 이나 주술사들이 많이 찾았다. 누구든 이탈산에서 약초를 캐 오면 큰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인간들은 감히 우뚝 솟은 이탈산에 오를 생각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탈산에는 사람을 해치는, 무시무시한 이탈도깨비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헛된 치기로 이탈산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은 이탈도깨비들의 기괴한 외형과 그들의 으름장에 기가 질려 초입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간다.
하나 서신율은 달랐다. 그의 뒤로 도겸을 비롯한 서씨 가문 식솔들이 줄줄이 따랐다. 누군가 그들의 행렬을 보았다면 깜짝 놀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신율 일행은 이탈산에서 도망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탈산을 통과하고 있었다.
가솔들은 창과 검을 비롯한 무기를 팽팽하게 집어넣은 포대 자루를 등에 졌다. 모두들 지친 기색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이탈산을 관통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힘이 넘쳤다. 창을 짊어진 하인의 어깨에 힘줄이 불끈 솟았다.
그들을 이끄는 신율은 푸른색 도포를 입고 높은 신분을 상징하는 넓은 갓을 썼다. 갓 아래로 푸른 비단만큼이나 맑은 눈동자가 보였다. 콧날은 서늘하게 뻗었고, 그 아래 입술은 적당히 붉어, 보는 사람을 홀렸다. 도포 자락 아래로 드러난 손은 무사의 손치고는 놀랍도록 희고 가늘었다.
신율의 외모에서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그의 눈매였다. 신율은 노력하지 않아도 보는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다정한 눈매를 가졌다. 신율의 눈매를 본 이는 누구든 그를 믿고 의지하게 된다. 신율은 어렸을 때부터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서신율, 그는 환국 최고 도깨비 사냥꾼 가문인 서씨 가문의 삼남이었다. 그가 이탈산에 출현했다는 건 대단한 사건이었다. 서씨 가문의 적자들은 큰 사냥감이 아니면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서씨 가문의 적자 서신율이 움직였으니, 누구든 그가 이탈산에서 무슨 도깨비를 잡았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식솔들이 힘겹게 끌고 있는 거대한 수레에 사람 여덟 명이 한데 붙은 것만큼 길고 굵은 흰 뱀의 시체가 묶여 흔들렸다. 수레 끄는 걸 감독하고 있던 하인 도겸이 신율에게 물었다.
“이무기 도깨비는 어찌할까요?”
“구슬로 만들 것이다.”
신율은 산들바람처럼 상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겸은 방금 전 이무기 도깨비를 사냥할 때 그가 얼마나 광폭하게 날뛰었는지 기억했다. 도겸은 신율의 상쾌한 목소리가 선뜻 적응되지 않았다.
그를 모신 지 오래되었기에, 신율이 언제 어디서나 목화솜처럼 부드러운 얼굴을 한다는 걸 알지만 그가 언제든지 날 선 무인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도겸은 이무기를 향한 신율의 살기가 사라졌음을 느끼고 안심했다.
“마을의 주술사를 수배해 놓겠습니다.”
“확실히 내가 해체하는 것보다야 주술사를 고용하는 것이 훨씬 빠르겠지. 그런데 우리가 갈 마을에 주술사가 있더냐?”
주술사는 매우 귀한 인재로 큰 도시에나 몇 명 있을 뿐이었다.
산의 도깨비들이 종종 산 바깥으로 나오는 이탈산 주변엔 작은 마을들밖에 없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그 귀한 주술사가 있을지 걱정이었다. 도겸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탈산에 들어오기 전에 확인했습니다. 작은 마을이나 이탈산 가까이에 있어 도깨비가 수시로 출현하는 탓인지 주술사가 있더군요.”
“그래, 잘했다.”
도겸을 칭찬한 신율은 다시 한 번 이무기의 시체를 보기 위해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런데 말고삐를 잡아당기는 순간 손목에 따끔하고 작은 이물감을 느꼈다. 도포 소맷자락 안쪽이었다. 설마 이탈산에서 잡귀를 달고 온 것인가 싶었지만, 신율은 도깨비 사냥에서 절대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모두 멈춰라. 확인할 게 있다.”
신율은 신중하게 소매를 움켜쥐고 식솔들에게 명령했다. 잡귀 따위야 신율에겐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마을 사람들이나 그를 따르는 식솔들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 식솔들이 어리둥절해 멈춰 서는 동안 신율은 짙은 남색으로 마감된 도포 소맷자락을 걷었다.
손목을 따갑게 하던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신율은 조금 황당한 기분으로 ‘그것’을 떼어냈다. 옆에서 덩달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던 도겸이 말했다.
“도깨비…… 풀이로군요.”
이무기의 피에 젖은 소매 안쪽에 도깨비풀 하나가 꽉 매달려 있었다. 민들레 꽃씨 정도 되는 작은 크기에 갈색 지지대를 가지고 있고, 끝에는 발처럼 보이는 세 갈래 갈퀴가 보였다. 숨만 훅 불어도 날아갈 작은 갈퀴로 신율의 소매 안쪽에 달랑 붙었다.
“도깨비와 싸우는 중 도깨비풀이 붙다니, 재미난 우연이구나.”
신율은 이무기의 소굴로 들어가는 도중 도깨비바늘 꽃을 지나친 기억이 났다. 기괴한 식물들 틈에 노랗게 피어 있는 것이 어여뻐 잠시 시선을 주는 틈에 소매에 매달린 모양이었다. 분명 이무기와의 싸움으로 주변이 엉망이 될 만큼 격렬하게 움직였는데, 용케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탈산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무래도 불길하니 버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도겸이 신율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신율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여섯 살이 되던 해부터 도깨비 사냥만 이십 년을 해왔다. 이런 평범한 도깨비풀이 이탈도깨비일 리가 없다.”
이탈도깨비들은 기이한 외형을 가진 걸로 유명하다. 그들은 식물 도깨비에도, 동물 도깨비에도 속하지 않는 돌연변이 도깨비들이었다. 신율이 잡은 것처럼 이무기나 사악한 두억시니 등, 이탈산에는 괴수 형태의 도깨비가 살았다.
신율은 도깨비풀이 뭉그러지지 않도록 살짝 손에 올렸다. 도깨비풀을 만지자 따뜻하고 발랄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단풍잎 같은 작은 손으로 신율의 엄지를 잡고 꼬물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매우 작아 이대로 내버리기 불쌍하지 않느냐.”
도겸이 당황한 얼굴로 신율을 올려다보았다.
“자개 장식함을 가져와라.”
도겸이 은색 선학 무늬 사이로 오색 빛을 내뿜는 고아한 함을 가져왔다. 신율은 붉은 천으로 마감된 자개함 안에 도깨비풀을 넣으며 걱정스러워했다.
“물과 흙이 없어 본가에 가는 중 시드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는구나.”
“괜찮습니다. 이것은 꽃이나 잎이 아니라 씨앗이니 잘 버틸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신율이 웃었다. 깨끗하고 눈부신 미소였다. 도겸은 놀랐다. 십칠 년이 넘는 긴 세월 주인을 섬겨왔지만 신율이 무언가를 가엾이 여기는 것은 처음 보았다.
서씨 가문의 삼남이자 대륙 최고의 무사인 신율은 다정한 생김새와 달리 얼음처럼 차가운 속을 가진 사내였다. 아장아장 걷던 시절에도 결코 동물이나 식물, 하다못해 집 안 연못에서 키우는 잉어에도 관심을 준 적이 없었다. 그걸 알지 못하고 달려든 많은 여인들이 피눈물을 삼키며 아픔을 맛보았다.
이상한 끌림이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소매에 붙어 있는 게 전부인 작은 풀인데 신율은 알 수 없는 어여쁨과 가엾음을 느꼈다.
마치 도깨비풀이 살아 있는 소녀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신율은 스스로가 도깨비풀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 이상하다는 걸 자각했다. 그러나 큰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육 년 전에 약관이 지났고, 오히려 여태까지 애착 가는 대상이 없었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신율은 이무기 도깨비와의 혈전을 치르고 자신이 약간 감정적이 된 거라 생각했다.
“한낱 식물이지만 이것도 인연이니 내 너를 본가로 가져가 심어주겠다.”
신율은 이탈산 가까이에 있는 마을로 일행을 이끌었다. 마을이 매우 작았지만, 그럭저럭 신율의 식솔들이 머물 만큼은 되었다.
신율이 가져온 커다란 이무기 도깨비 시체를 본 마을 사람들이 경외감에 가득 차 그가 가는 길에 엎드려 절했다.
마을 주술사의 도움을 받아 이무기 시체를 구슬로 바꾸는 동안 신율은 마을에서 가장 큰 기와집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했다. 이무기 사냥으로 지친 식솔들이 하룻밤 쉬고 나면 내일 바로 수도에 있는 본가로 출발할 예정이다.
신율은 오랜만에 들떴다. 아무도 잡지 못했다는 이무기를 잡아서가 아니었다. 작은 자개함 속에 있는 도깨비풀을 본가 마당에 심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자개함은 다른 귀한 짐들과 함께 가장 안쪽 방에 두었다.
밤 사이 자개함이 떨어지기라도 할까 가장 안쪽에 밀어 넣고 세 번이나 확인한 후에야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감정이 이리도 뒤흔들릴 만큼 이무기 사냥이 큰일이었나.’
스스로도 이상하긴 이상하다 생각하며 신율은 잠을 청했다.

여미는 의식을 가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자신이 도깨비라는 걸 알았다.
도깨비는 모두 그렇다. 도깨비는 어디서든 태어난다. 나무, 바위, 풀, 동물, 심지어는 인간의 꿈이나 감정에서도 태어난다. 무엇이든 인간이 아닌 것에 의식이 깃들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의식이 성숙하면 그것은 도깨비로 다시 태어난다. 본체에 의식이 깃드는 순간 도깨비들은 자아를 깨닫고 완전한 형체를 얻어 도깨비로 태어나길 숨죽여 기다린다.
여미는 도깨비풀에 깃든 의식이었다. 몇백 년간 의식을 쌓아온 여미는 탄생을 코앞에 둔 상태였다. 여미는 서서히 밝아오는 시야를 인식하며 생각했다.
‘이제 나도 도깨비로 깨어날 때가 된 건가?’
그런데 사방이 좁았다.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여미는 몸을 이리저리 부딪쳐 보았다. 멋모르고 날뛰다가 머리를 박았다. 알 수 없는 푹신한 물체에 휩싸인 여미는 한참을 고생했다.
기와집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방, 선반 위, 자개함 속에서 여미는 몸을 웅크리고 끙끙 앓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도깨비 산 안쪽 안전한 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감옥 같이 작고 답답한 곳에 갇혀 있었다. 중간에 서늘하고 아늑한 비단에 탄 듯, 꿈결 같은 기분이 들어 정신을 놓고 있었더니 멋모르고 들짐승의 털에 붙어 이동한 모양이다.
탄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런 봉변을 당할 줄이야. 도깨비 수장의 기운을 받지 못한 도깨비의 탄생은 인간으로 치면 난산과 같다. 밀려오는 고통에 몸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여미는 고통을 참았다.
“아프다, 아프단 말이다!”
여미는 비명을 질렀다. 작은 도깨비풀의 비명은 상자 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여미는 몸의 뼈가 뒤틀리는 고통을 겪으며 신음을 내뱉었다. 사방에 산재한 부적과 인간의 기운이 여미의 탄생을 방해했다.
“이걸 부수어야 내가 살겠구나!”
여미는 자개함에 새겨진 인간의 문자를 부수었다. 그러자 조금 심신이 편안해졌다. 동시에 탄생이 급격히 진행됐다.
달보다 진한 황금색을 띠는 신비로운 눈이 뜨이고 아담하고 오똑한 코와 보드라운 뺨이 드러났다. 다리를 모으고 양팔로 어깨를 감싼 여미의 몸은 가녀리고 말랐지만 품위가 있었다.
마침내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까지 완성되었을 때, 여미는 도깨비로 각성했다. 여미는 답답한 상자를 박차고 나왔다.
“어지럽다. 여기는 대체 어디기에 균형을 잡기가 이리도 힘든가?”
상자를 나오자마자 여미는 갈지(之)자로 휘청거리며 방 안을 돌아다녔다. 중간에 한 번 넘어져 장식장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몇 분이 지나자 제법 균형을 잡으며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초식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일어서서 걷고 뛸 수 있다. 포식자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도깨비도 마찬가지였다. 도깨비에게 인간들은 포식자와 같다. 도깨비들이 인간들의 소굴에 들어가면 감각의 혼란을 겪으며 약해진다.
인간들의 소굴 한가운데서 태어난 여미는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모두 신체에 집중했다. 걷기에 집중하느라 도깨비가 부릴 수 있는 도술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했지만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라 어쩔 수 없었다.
여미가 박차고 나온 상자는 무참히 부서져 상자 안에 있던 붉은 천이 어지럽게 흩어졌고 조개 장식은 조각조각 나뒹굴었다. 여미는 미련 없이 상자를 치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설마 했지만 정말로 인간 소굴이로구나!”
여미가 있는 곳은 커다란 기와집의 가장 안쪽 방이었다. 조심스레 창호지를 바른 문턱을 흔들어 보니 문도 세 겹이다. 사방이 인간들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미는 두려워졌다. 인간과 도깨비는 서로 섞일 수 없다. 인간들은 집 안에 들어온 도깨비를 보면 분노해서 거칠게 쫓아낸다. 운이 나쁘면 이 집안사람들이 ‘도깨비 사냥꾼’을 부를 수도 있었다. 도깨비 사냥꾼이 온다면 여미는 틀림없이 죽은 목숨이다. 도깨비 사냥꾼은 갓 태어난 도깨비들에게도 거대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가야겠다, 어서 나가야겠어.”
여미는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하다가 문을 열고 바깥을 빼꼼 내다보았다. 밤인 모양인지 사위가 어둡고 아무도 없었다. 인간들은 밤에 잠을 잔다고 했다. ‘잠을 자느라 아무도 없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한 여미는 안심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해서 얼음처럼 굳었다.
“오늘 셋째 도련님의 활약이 어마어마하지 않았어?”
“말이라고 하니. 본가로 올라가면 첫째, 둘째 도련님은 물론 가주께서도 놀라실 거야.”
“셋째 도련님은 그리 강하시면서 다정하시기까지 하니, 내가 귀한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셋째 도련님께 시집갈 수도 있었을 텐데.”
“얘, 너 말고도 환국 여자들이 줄을 섰단다.”
이어서 꺄르륵거리는 인간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여자들의 웃음소리를 들은 여미는 온몸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제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떠들고 소란스럽게 웃는 것이 마치 제 존재를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여미는 그림자 속에 숨어서 한 걸음 한 걸음 이동했다. 겨우겨우 기와집을 벗어나자 너른 마당이 나왔다. 첩첩산중으로 마당에는 등을 밝히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남종들이 포진해 있었다. 오늘 기쁜 일이 있었는지 남종들은 마당 중앙에 모여 왁자하게 고기를 굽고 술을 즐겼다.
“이무기 도깨비의 구슬을 얻은 건 서씨 가문에서도 이번이 처음 아닌가?”
“그렇지, 역시 막내 도련님이야. 서씨 가문에서 최고의 무술 실력을 가지고 계시지.”
“이번 대 서씨 가문은 복이 참 많구먼. 첫째 도련님은 도깨비 수장도 때려잡을 수 있는 뛰어난 사냥꾼이시고, 둘째 도련님의 주술은 신묘하기가 환국 최고라 하고, 셋째 도련님의 무술은 따라올 자가 없으니 말이야.”
사냥꾼과 주술과 무술이라니! 세 가지 다 도깨비에겐 치명적인 것들이다. 여미는 여종들의 웃음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더한 공포에 사로잡혀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았다.
뒤를 돌아보니 뒷마당은 텅텅 비어 있었다. 여미는 재빨리 마루에서 뛰어내렸다. 밤이슬이 맺힌 풀이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여미는 끙끙거리며 돌담을 넘었다. 손이 까져 피가 조금 나왔지만 인간들 소굴에서 탈출한 대가라고 생각하니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여미는 뿌듯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인간들 소굴을 벗어났으니 이제 당당하게 도깨비 산으로 가면 된다. 그러나 담을 넘은 여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담 안쪽보다 훨씬 많은 인간들이었다.
세상에, 마을 전체가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환국의 변방인지 인구는 적었지만 모두 나와서 횃불을 밝히고 떠들썩하게 춤판을 벌이니 여미가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인간들은 연신 기쁨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거리거리 상점마다 불빛을 환하게 밝혀놓았다.
“떡 드시오! 오늘은 우리 마을을 괴롭히던 광증 걸린 용이 없어진 기념으로 떡이란 떡은 모조리 쪄냈소이다! 백설기, 무지개떡, 가래떡, 시루떡, 팥떡, 말만 하시오!”
불을 환하게 밝힌 상점 중에 갓 쪄낸 따끈따끈한 떡을 파는 좌판이 보였다. 여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새삼 부화하고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인간과 도깨비는 많은 것이 다르지만 먹지 않으면 힘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은 똑같았다. 여미는 눈을 반짝이며 좌판을 바라보았다. 저 떡이라는 것에선 어찌 이리 맛있는 냄새가 난단 말인가.
“특히나 꿀떡! 우리 가게의 자랑 아니요? 꿀떡 드실 분은 얼른 이리 오시오!”
상인이 좌판 가운데에서 참기름을 발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꿀떡을 들어 올렸다. 쑥을 넣은 녹색 꿀떡, 쌀가루 그대로 하얗게 쪄낸 하얀 꿀떡, 진달래 꽃잎을 갈아 넣어 예쁘게 만든 분홍색 꿀떡까지. 여미의 목구멍으로 침이 꿀떡꿀떡 넘어갔다.
“아니야, 안 된다. 인간의 수작에 넘어갈 뻔하다니, 도깨비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여미가 고개를 흔들고 양 뺨을 두드려 정신을 차렸다. 떡을 보니 더 배가 고파 힘이 빠졌지만 최선을 다해 꾸준히 걸음을 옮겼다. 인적이 드문 곳에 도달하자 여미는 담벼락 그림자에서 벗어나 냅다 뛰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 숲이 보였다. 도깨비 산과 연결된 숲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몸을 감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미가 마을을 벗어나기 직전, 무언가가 그녀의 발목을 잡아챘다. 작은 돌부리였다. 아직 걸음에 서툰 여미는 달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요란한 소리가 나며 여미가 땅 위로 넘어졌다. 떡 바구니를 지고 마을 쪽으로 가던 아낙네 하나가 여미를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저것이 웬 어린애인가?!”
여미는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추스르며 일어섰다. 아낙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낙네의 얼굴에 도깨비에 대한 적대감은 없었다. 여미는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여미의 몸은 인간들의 몸과 똑같았다.
도깨비는 여러 가지 형태로 태어난다. 이탈도깨비들은 기상천외한 모습을 하고 여와도깨비들은 식물의 모습을 한다. 치우도깨비들은 커다란 짐승의 모습을 취한다.
여미는 당연히 자신이 인간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낙네의 반응과, 제가 관찰한 것들로 미루어보건대 자신은 인간과 똑 닮은 모습으로 태어난 도깨비인 것 같았다.
“길을 잃은 것인가? 이거 참, 기쁜 축제날에 봉변을 당했구먼, 아가. 그런데 머리카락은 왜 새하얀 색인감?”
잘하면 아낙네 하나 정도는 속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여미는 겁먹지 않은 척하고 당당하게 아낙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아낙네가 들고 있던 떡 바구니를 떨어뜨렸다. 바구니에서 흰 송편이 와르르 굴러 나왔다. 여미가 아낙네에게 말했다.
“나는 숲으로 가려고 한다. 그러니 너도 상관 말고 갈 길을 가도록.”
아낙네는 비명을 질렀다.
“에그머니나! 숭해라! 이것이 뭔 일이야!”
여미는 어리둥절했다. 분명 자신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다.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들과 달리 머리카락이 하얀 게 걸리긴 했지만, 인간들 틈에서도 종종 특이한 색깔의 머리카락을 가진 이가 나오니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낙은 여미의 앞모습을 보고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여미는 아직 어리다. 태어난 지 세 시간도 지나지 않은 어린 도깨비이다. 도깨비풀 형상으로 떠돌아다녔다곤 해도 여미가 알 수 있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여미는 인간들의 가장 중요한 풍습을 알지 못했다.
“뉘 집 딸내미기에 그 꼴로 여태까지 돌아다닌 것이야?”
여미는 지금 알몸이었다. 여인의 말을 듣고도 문제점을 알아차리지 못한 여미는 그저 큰 소리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아낙네는 옷을 다 벗고 돌아다니는 불쌍한 여자아이를 도와야겠다는 일념을 불태우며 여미에게 다가왔다.
“오지 마라, 오지 마! 나는 숲에 간다니까!”
“아이고, 신발도 안 신었네! 그 상태로 숲에 가면 발바닥 다 까진다!”
두 사람이 벌이는 소동에 잔치를 즐기던 이들의 이목이 하나둘씩 집중되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 목소리는 떡집 부인 감씨 아닌가?”
“횃불을 붙여 봐!”
“기다리게! 우리 집에 있는 걸 가져갈 테니까.”
우락부락한 남자가 횃불을 들었다. 여미는 불을 보고 공포에 질렸다. 여미는 도깨비풀에서 유래한 도깨비다. 풀 도깨비들에게 불은 저항할 길 없이 몸을 태우는 재앙이었다. 횃불을 보고 본능적인 공포로 이성을 잃은 여미는 허겁지겁 인간들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망친다!”
“머리카락이 하얀색인데?”
“맨다리구만! 뛰게 뒀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옷이랑 짚신 좀 가져오게!”
마을 사람들은 여미에게 줄 옷과 신발을 줄줄이 챙겨 여미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은 순수한 걱정과 호의였지만 여미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여미에겐 인간이라는 시커멓고 커다란 괴물들이 떼가 되어 자신을 뒤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미는 정신없이 달렸다. 숲 초입에 도착했을 때 마을 남정네들이 횃불을 들이대는 바람에 비틀거리다 넘어졌다. 최고급 명주실처럼 가볍고 하얀 머리카락이 여미의 몸을 덮어 횃불로부터 그녀의 알몸을 가려주었다. 여미는 어린 초식동물처럼 다리를 떨며 일어났다.
“어린 여자애구만! 남자들은 다 물러가요!”
떡집 감씨 여인이 아낙네들을 이끌고 오며 소리쳤다. 아낙네들이 횃불을 받아 들고 남자들을 몰아냈다. 의도는 선했으나 횃불이 있는 한 여미는 괴로울 뿐이라는 걸 그들은 알지 못했다.
여미는 불꽃이 너무 밝아 눈을 감았다. 횃불이 아프게 눈 속을 파고들며 눈물을 짜냈다. 강한 빛으로 엉망이 된 시야 속에서 여미는 무조건 익숙한 방향으로 뛰었다. 신생아와 마찬가지라 세상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단 한 곳 희미하게 익숙한 기운이 풍기는 곳을 느꼈다. 여미는 생리적으로 흘러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그곳을 향해 뛰었다.
“에그, 저곳에 함부로 들어갔다간 경을 칠 텐데!”
여미의 몸이 커다란 문을 지났다. 아낙네들은 여미가 서씨 가문의 도련님이 묵고 있는 기와집의 문턱을 넘자 더 이상 쫓아오지 못했다.
서씨 가문의 위세는 대단하다. 아무리 불쌍한 아이를 돕기 위해서라고 해도 서씨 가문의 식솔들이 머무는 집에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 아낙네들은 대문을 두드려 서씨 가의 식솔들을 부른 후 사정을 설명했다.
그사이 여미는 인간의 기운이 가장 적은 곳으로 달렸다. 뒤뜰로 가니 횃불이 없어 점점 마음이 진정됐다.
계속 달렸더니 여러 겹 겹쳐 놓은 종이가 북 찢어지는 소리가 나며 인적 없는 곳에 도달했다. 여미는 눈물을 떨구고 숨을 헉헉 들이쉬며 눈을 떴다. 이상한 곳이었다. 인간들이 서식하는 깔린 맨들맨들한 바닥과 달리 발아래 거친 밀짚이 촘촘히 깔려 있다.
구조도 이상했다. 인간들은 추위를 많이 타서 사방을 닫아놓고 지낸다 했는데 이곳은 벽은커녕 폭 넓은 울타리뿐이 없고 좌우는 아예 뚫렸다. 여미가 찢고 들어온 노란색 종이가 바람에 흔들렸다. 노란 종이 위에 이상한 붉은색 글자가 보였다.
울타리 안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갈색 말들이 우물우물 건초를 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미는 이곳이 인간들의 ‘마구간’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저 인간이 아닌 동물이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배고프구나.”
여미는 밀짚 사이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밀짚이 따가워 무릎을 모으고 엉덩이만 땅에 붙였다. 신세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도깨비 산에서 수장의 기운을 받아 건강하고 영리한 도깨비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인간의 기운이 가득한 상자 안에서 부화한 탓에 반푼이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인간들 틈에 똑 떨어져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것이 맛있느냐?”
여미는 당근이 섞인 건초 더미를 씹는 말을 보며 물었다. 등에 흰색 점이 박힌 순한 말은 큰 눈으로 여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콧김을 뿜었다. 말의 콧김에 여미의 머리카락이 날렸다. 여미가 눈살을 찌푸렸다.
“멋대로 바람을 불지 마라! 그렇지 않아도 고생했는데 네 입김에 날아가기라도 하면 책임질 것이냐!”
본체가 도깨비풀이었던지라 여미는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날려 다니곤 했다. 하나 지금은 엄연한 성체라 날아갈 위험이 없다. 하지만 몇백 년 넘게 도깨비풀의 모습으로 떠돌아다닌 습성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여미는 말이 내뿜는 콧김에 날아가지 않도록 울타리를 꽉 쥐었다.
여미는 대담하게 울타리 안으로 손을 집어 갈색 말이 먹고 있는 당근을 하나 집었다. 당근을 뺏긴 말이 사납게 고개를 휘저었다. 여미는 말의 고갯짓에 튕겨 나가 밀짚 속을 뒹굴었다.
“감히 동물 주제에 도깨비를 해하느냐!”
여미가 화를 내며 건초를 쥔 주먹을 마구 흔들어댔다. 말은 푸릉, 하고 콧방귀를 끼고는 다시 건초에 집중했다. 여미는 괘씸한 마음에 저 갈색 짐승을 크게 혼내주기로 결심했다. 도술을 부려서 혼이 빠지게 만들어 버릴까? 아니다, 태어나서 바로 걷는 데 온 기운을 투자해 도술은 좀 모자라다. 둔갑술을 통해 무섭게 변한 다음 호통을 쳐야겠다. 여미는 말에게 다시 가까이 가려고 밀짚 속에서 일어섰다.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촘촘히 깔린 밀짚은 여미의 온몸에 엉켜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거기다 여미의 긴 머리카락까지 밀짚 사이에 얽혔다. 여미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바동댔다. 그 와중에도 말이 먹다 남긴 당근을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았다. 배고프니까.
여미가 한참 동안이나 씨름하고 있을 때 주변이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동네 사람들이 서씨네 식솔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서씨 일가의 식솔들까지 합세하여 여미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서씨 식솔들이 머무는 기와집이 불가사의한 소녀의 침입으로 들썩거리는 동안, 신율은 방 안 꼴을 보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방 안은 어린애가 어지른 것처럼 난장판이었고 도깨비풀을 담아둔 자개함은 조각나 바닥을 나뒹굴었다.
분명 도깨비풀을 이곳에 넣어두었는데, 도깨비풀에 발이라도 달린 것인가? 손가락 한 마디도 되지 않는 도깨비풀에 발이 달렸다 해도 조개 장식에 단단한 목으로 마감한 상자를 부수고 나올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도깨비 비애의 짓인가?’
업이 도깨비 사냥꾼이다 보니 원한을 품고 그를 따라다니며 해를 끼치는 도깨비들이 많았다. 신율은 혹여 그들 중 하나가 제 애착을 알아차리고 도깨비풀을 가져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심각한 표정이 된 신율은 부서진 상자 주변의 기운을 추적했다. 둘째 형님만큼 주술에 뛰어나진 않지만 그의 주술도 도깨비의 기운을 추적할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신율을 노리는 강력한 도깨비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잔향처럼 향긋한 숲 내음이 남아 있을 뿐.
한숨을 쉬었다. 놀랍게도 신율이 처음 느낀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이무기 도깨비와의 격렬한 싸움 속에서도 그의 옷소매에 꼭 달라붙어 있던 도깨비풀이다. 그 작은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하여 금세 어여삐 여겼다. 본가에 가서 방 앞에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쉽게 어딘가에 정을 붙이는 성격이 아닌데 소매에 붙어 있던 도깨비풀에게는 정을 붙였던 모양이다. 신율이 조각난 자개함의 일부를 들고 방 안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밖에서 하인들이 요란스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창호지 문 바깥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횃불이 보였다. 남종들은 무어라 소리치며 집 안 곳곳을 뒤졌고 여종들은 마을 사람들을 통제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 밤중에 소란인가. 신율은 밀랍을 바른 굵은 실로 가죽을 꿰어 만든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서씨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그의 신발을 보고 여종들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냐.”
도겸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그도 손에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 들었다.
도겸이 보기에 신율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아까 도깨비풀을 자개함에 넣을 때만 해도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밤중에 일어난 소란으로 잠이 깨어 심기가 불편하신가 보다고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의 제보가 있었습니다. 이 집으로 흰 머리카락을 한 기이한 소녀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가솔들을 풀어 찾고 있습니다.”
도겸은 고개를 조아리며 간결하게 보고했다.
“흰 머리카락의 소녀라?”
신율은 입가에 손을 대고 생각했다. 인간들 중에서도 색다른 색의 체모를 가진 이들이 종종 나오고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술의 부작용으로, 붉거나 푸를 뿐 흰색은 없었다. 서역인은 타고난 체모의 색이 특이하다 하지만, 이런 작은 마을에 서역인이 있을 리 없다.
“이탈산에서 온 도깨비인가?”
“그렇게 보기는 또 애매한 것이, 마을 주민들의 제보로는 아주 가늘고 어린 소녀였다 합니다. 게다가 갓 태어난 사슴처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도망치기까지 했답니다. 이탈산의 도깨비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데다가 모두 전설 속의 신수와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묘한 일이로구나.”
신율은 신중하게 대답했다. 그는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도깨비가 연관되면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온갖 기묘한 일들이 일어난다. 지금으로서는 소녀가 이탈산에서 온 것인지 아닌지, 인간인지 도깨비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신율은 마당을 살폈다. 마당 안이 횃불과 창 부딪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제법 큰 기와집이라 식솔들은 여자아이를 찾기 위해 부산히 움직였다. 그 와중 신율이 등장하자 가솔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신율은 천천히 마당으로 나아가며 위엄이 담긴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멈춰라.”
“도련님! 이상한 도깨비가 이 집에 숨어들어 왔다고 합니다.”
신율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남종이 들고 있던 횃불 쪽으로 손을 뻗었다. 신율의 사정거리 안에 있던 횃불들이 모두 꺼졌다. 남종은 저절로 불이 꺼져 쉭쉭거리는 소리를 내는 횃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신율은 손을 거두고 말했다.
“보고를 들어보건대 이 집에 침입한 자는 아주 겁이 많은 듯하다. 침입자가 도깨비든 사람이든 섣불리 겁을 주면 큰일이 날 수도 있어. 내 짐작 가는 곳이 있다. 너희들은 담의 경계를 강화해라. 내가 침입자를 찾아낼 때까지 그 누구도 이 집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해라.”
마당에 나온 순간부터 신율은 마구간 쪽에서 풍겨 나오는 청량한 기운을 느꼈다. 방 안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기운이다.
종들과 식솔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담의 경계를 강화하러 흩어졌다. 신율은 뒷짐 진 손을 꽉 쥐었다. 이곳에 침입한 자가 신율이 어여삐 보관하던 도깨비풀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침입자가 도깨비풀을 훔쳐간 것이라면 용서하지 않겠다.’
식솔들에겐 침착하라 했으면서 신율은 답지 않게 성급한 생각을 했다. 그는 마구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무거운 기운이 남았다.

여미는 미칠 지경이었다. 바깥이 한참 소란스럽고 무시무시한 횃불이 다시 피어오르나 싶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도련님, 이쪽은 저희가 수색하겠습니다.”
마침내 인간들이 마구간 앞에 도달했다. 여미는 팔다리를 휘저어 보았지만 밀짚과 머리카락은 포승줄처럼 점점 더 조여올 뿐이었다. 도술을 부릴 수 없는 여미는 너무 겁이 나 당근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수군수군, 소름끼치는 인간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눈물을 잔뜩 흘린 여미가 모든 걸 포기하고 축 늘어졌을 때, 다른 인간들과 확연히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어라, 내가 가보겠다.”
여미는 눈을 번쩍 떴다. 청명하다. 머리가 맑아지는 고운 목소리다. 태어난 이후 온통 무서운 것들뿐이었지만 벽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만큼은 여미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여미는 몸부림을 멈추고 목소리의 주인을 기다렸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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