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 10. 29. 서울 출생. 어릴 때 한학을 오래 공부함. 1920. 휘문의숙 졸업 후 문학동인지 [문우(文友)] 창간. 1921. [장미촌(薔薇村)] 동인으로 시 「오뇌(懊惱)의 청춘」 「우유빛 거리」 발표. 1922. 홍사용ㆍ이상화ㆍ나도향 등과 함께 [백조(白潮)] 창간. 1923. [백조]에 단편 「목매이는 여자」 발표. 1924. 첫 시집 『흑방비곡(黑房秘曲)』을 발간하며 주로 시인으로 활동함. 1935. [매일신보]에 장편 『금삼(錦衫)의 피』 연재. 1940. [매일신보]에 『다정불심(多情佛心)』 연재. 1954. [조선일보]에 장편 『임진왜란(壬辰倭亂)』, 연재. 예술원 회장으로 추대됨. 1955. 제1회 문학공로상 수상. 1958. [세계일보]에 『벼슬길』 연재. 1959. [한국일보]에 『여인천하(女人天下)』, [조선일보]에 『삼국풍류(三國風流)』 연재. 1962. [조선일보]에 『자고 가는 저 구름아』 연재. 1965. [한국일보]에 『월탄삼국지(月灘三國志)』 연재. 1966. [부산일보]에 『양녕대군(讓寧大君)』 연재. 1970.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1981. 1. 13. 서울 자택에서 타계.
……상감마마! 나는 여태 칠십 평생에 모든 것을 원망하고 저주하였소이다. 선한 자나 악한 자나 다 마찬가지인 줄로만 알았소이다. 오히려 악한 놈은 더 잘되는 줄로만 알게 되었소이다. 의리도 소용없고, 충신도 소용없고, 효자도 소용없고, 열녀도 소용없는 줄 알았소이다. 모든 것이 한때의 분 바른 허위와 가식의 거린 줄만 알았소이다. 오히려 정작 골똘해 이 길에 들어가는 사람이 어리석고 바보인 것으로만 알았소이다. 상감마마! 그렇지 아니했어요? 우리의 자리를 빼앗아간 모든 불의의 일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부귀영화에 호화로운 행복을 누리었습니까? 의를 앞세우고 우리를 두호하던 사람들은 어디 한 사람이나 씨가 남은 이가 있었습니까? --- p.467~468
옆에 방에는 내시도 잠들고, 나인도 잠들었다. 만뢰는 고요히 쥐 죽은 듯한데 다만 깨어 있는 것은 흐를 듯한 달빛, 내리는 서리, 싸늘히 부는 바람, 날리는 낙엽, 그리고 이 속으로 걸음을 옮기는 상감 연산과 귀여운 사람 장녹수의 두 그림자뿐이다. --- p.503
“이런 못난이, 고만 울어라. 우리는 강하게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강하게 살아요?” 녹수는 방긋 웃었다. “내 힘껏 싸워 보련다. 단 십 년을 살아도 사는가 싶게 화려하게 살아 보련다. 고시랑고시랑 백 년을 살면 무얼 하니. 하고 싶은 것은 모조리 해보고야 말 테다. 인생 한번 돌아가면 구름과 안개인 것을!” --- p.505
사람의 새빨간 욕심이란 채우면 채울수록 밑바닥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강렬한 본능인 때문이다. 이 야수 같은 새빨간 본능은 어느 구석 사람의 마음 한편 귀퉁이에 몇천 년 몇만 년을 두고 길고 강하게 뿌리박혀 내려왔다. 그러나 사람은 도덕이란 옷과 예절이란 굴레를 쓰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야수성을 뿜을 수 있다가도 반성하는 마디에 소스라쳐 돌아설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요 비로소 사람이다. --- p.600
연산을 내쫓아라! 사나운 폭군을 폐위시켜라! 백성이 부지할 수 없고 나라가 견딜 수 없다. 일어나거라 팔도 의병은! 봉홧불은 먼저 전라도에서 터져 일어났다. 세상은 은은한 가운데 물 끓듯 소란하다. 이 시절은 언제나 결딴나느냐? 빨리 명랑한 밝은 날씨가 보고 싶구나! 말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나, 은연중 사람과 사람의 마음은 이심전심으로 어떠한 크나큰 파멸과 변혁을 기다린 지 오래다. 파멸과 변혁 뒤에는 어떠한 거룩한 태양 같은 광명이 비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