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가 연필로 그린 두 번째 그림에서는 독수리의 분노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8.2I). 그림 속 사람의 팔은 독수리에 의해 뜯겨져 나갔으며, 눈은 이미 당한 공격으로 크게 상처 입어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림 왼쪽 상단에는 그림 해설자가 그려져 있었으며, 그림에 대한 설명이 말풍선에 담겨 있었다. “독수리. 독수리가 미쳤습니다. 독수리들은 사람을 죽이고, 잡아먹으려 합니다.”
도로시가 가지고 있는 새에 대한 환상 중 공격적인 면이 그렇게 처음으로 드러났다. 그러한 공격성은 자기 주변 사람 그리고 아마도 도로시 자신을 향한 것으로 보였다. 그 다음 주에는 힘차게 날고 있는 새를 그렸다. 그런데 그림을 완성한 후 어두운 색 물감으로 그 위를 덮으면서 “집으로 가!”라는 말을 반복했다. 도로시가 그 다음으로 그린 것은 새장 속에 갇힌 채 흑흑 소리를 내며 우는 한 소녀의 그림이었다(아마도 병실에 갇혀 지내는 자기 자신을 상징한 것이 아니었을까?). 새장 오른쪽에는 “하하!” 소리를 내며 웃는 괴물이 있었다.
도로시는 큰 새와 작은 새 한 마리씩을 또 그렸다. 그리는 내내 팔을 푸드득거리며 “집으로 가! 집으로 가! 집으로 가!”라는 말을 리드미컬하게 반복했다. 그 날의 마지막 작품은 사랑스러우면서도 당당해 보이는 큰 새 그림이었다(8.2J). 도로시는 그 작품을 매우 신중하게 완성했다.
아홉 번째 세션에 도로시의 그림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 --- pp.216~217
한편 세 남매 중 맏이인 제니는 막내 존이 태어난 이후 형제들뿐 아니라 부모들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냈다. 겉보기에 제니는 나무랄 데 없는 언니이자 누나였다. 하지만 나는 제니의 방에서 눈, 머리카락, 팔과 다리가 없는 “못생긴 엄마”와 “못생긴 아빠” 그림을 발견했다. 반면 그 옆에 있는 자신은 예쁘게 그려놓았다(17.6C). 그림에 대해 제니가 설명하기를 “엄마와 아빠는 아이를 너무 많이 낳았기 때문에 못생겨졌다”고 했다. 몇 달 후 제니가 다시 그린 가족 그림에는 부모, 동생들, 자기 자신 모두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남성들은 작게 그려져 있었다(17.6D). 1년 후 제니는 가족 전체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17.6E). --- p.467
아이들은 또한 미술을 통해 자신이 강하다는 환상을 표현하고 분노의 대상인 어른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 노나는 4살 때 긴 머리를 빗지 않으려고 해서 내게 꾸중을 들었다. 나는 노나에게 빗질을 못하게 할 거면 짧게 잘라버리겠다고 말했다. 노나는 그 일로 화가 나서 지금까지도 나나 남편이 머리를 빗겨주지 못하게 하고 있다.
머리를 자르고 온 다음 날 노나는 유치원에서 그림 두 점을 그려서 가지고 왔다. 첫 번째 그림은 “긴 머리 소녀와 차고에 갇혀 있는 엄마”라는 제목이었다(17.7B). 두 번째는 차고 위에 의기양양하게 앉아 있는 여자아이를 그린 그림이었다. 작게 그려진 엄마(나)는 여전히 차고 안에 있었고 “소녀가 열쇠를 들고 있었다”(17.7C). 현실에서는 나를 통제할 수 없었지만 그림에서만은 모든 권력을 쥘 수 있었다. --- pp. 468~469
넓은 의미에서, 미술치료를 통해 아이들의 성장을 돕고자 하는 사람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표현력 발달을 강화하는 데 적절한 방법으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치료사의 주된 역할은 타인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외적인 모양과 형태는 대상이 되는 아이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다. 아이의 창의성 발달을 가로막는 큰 장애가 없다면 위에서 설명했던 조건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신의 창의성을 꽃피울 것이다.
하지만 크고 심각한 장애가 있다면, 그 장애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 노력은 대상 아동의 능력과 필요에 따라 형태를 달리할 것이다. 지금까지 내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그 과정은 예측하기 어렵고 까다로우며, 창의성을 요했다. 새로운 아이를 치료할 때마다 새로운 퍼즐을 푸는 기분으로 접근해야 한다. 모든 아이들에게는 저마다의 개성과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잠재력이 있다. --- p.63
장애가 있는 아동들과 함께 미술 활동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보상은 크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 도움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해하고 돕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아이를 이해하고, 공감을 표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지 모른다. 아이들이 미술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내리고, 독립심을 발휘하도록 돕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면 생각보다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할지 모른다. 학습의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도록 돕는 것은 아이를 어르거나, 꾀거나, 일방적으로 이끌어 천편일률적인 틀에 맞추는 것보다(그 틀이 아무리 매력적이라 해도) 훨씬 더 아름다운 경험이다. 그것은 또한 훨씬 더 흥분되는 일이다. 그 과정을 결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술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시력을 되찾아주지 못한다. 지능이 낮은 아이에게 분명한 이해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지체부자유 아이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미술은 아이들에게 감각 세상을 즐기고 탐색하는 기쁨과 자극을 줄 수 있다. 미술은 아이들의 바람대로 재료와 도구를 통제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술은 연습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는 기쁨을 준다. 미술은 마음껏 문지르고 어지르고 두들기면서 몸의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두려운 감정을 상징적으로나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아이들은 미술을 통해 시간, 공간, 환경, 몸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각을 정리할 수 있다. --- p.416
여러 사례에서 보았듯 미술은 장애가 없는 정상 아동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미술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질투, 분노, 두려움 등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다. 아이들이 경험하는 감정 중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게다가 미술은 빈스가 그린 “나쁜 가위” 그림처럼 실제로 누군가를 해치지 않고도 분노를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미술은 마음속 소망이나 공상을 안전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상징적 수단이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미술을 통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이들의 정서적인 문제도 더욱 줄어들 것이다. 말하자면 미술은 예방약이라고 할 수 있다.
--- p.4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