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구 감독은 영화판에서 머리가 반짝이기로 유명하다. 상상력도 풍부하고 분야를 넘나들며 지식도 풍성하다. 그런 그가 과학소설을 썼다. 과학자로서 얼마나 반가운지. 눈 밝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상상력을 무한 충전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참 별난 친구다. 만나면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도 별나고, 갖고 있는 이야기도 별나고, 행동이며, 훌쩍 떠났다가 어느새 돌아오는 취미도. 하여튼 별나다.
정승구는 사회 제도권에서 잘 나가던 놈이었다. 좋은 직장을 다 때려치우고 늦은 나이에 영화를 하겠다고 나를 찾아왔었다. 사춘기 때부터 꿈이 영화감독이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멀쩡하게 생긴 게 왜 사서 고생을 할까? 꿈은 그저 꿈으로 두지. 별 희한한 놈을 다 보네.’ 그렇게 승구를 알게 된지도 10년이 지났다.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를 내놓았을 때도 그랬다. 개봉 전부터 언론을 얼마나 떠들썩 시끄럽게 만들던지. ‘화제의 문제작’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데뷔작부터 폴란드, 스웨덴, 브라질, 영국 등 국제 영화제에 불려 다닌 것을 보고 ‘정승구가 사고 쳤구나!’ 싶었다. 제작투자, 기획, 제작, 각본, 감독, 심지어 단역 출연까지…….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그게 정승구다. 정승구는 거침없다.
그런데 이번엔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초능력을 가진 아이 이야기를 쓴다 길래, 별난 놈이 또 웬 별나라 이야기를 쓰는가 보다 싶었다. “소설은 아무나 쓰냐?” 하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딱 〈영원한 아이〉를 진짜 눈으로 보기 전 까지였다. 이메일로 원고를 받았다. 밤 11시에 앉았는데 새벽 4시에 의자에서 일어났다.
도미노를 손바닥 위에 띄운 왕눈이가 눈앞을 어른거렸다. 글자들을 읽었는데 화면으로 기억되는 별난 경험이 되었다. 영화를 아는 친구라, 등장인물이 어떤 거리를 걷고,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대사를 섞고, 어떻게 들어왔다가 나가는지 명확하게 그려졌다. 환상과 허상이 사실처럼 잘 짜여 현실보다 생생한 진실로 느껴졌다.
정승구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같이 있으면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천생 ‘꾼’이다. 어디서 읽고 들은 게 많아서 아는 이야기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똑똑한 친구라 그 이야기들을 자기 식으로 독특하게 표현해내는 방법을 잘 안다. 그것이 시나리오든, 영화든, 술자리 대화든, 뭐든. 소설도 그랬다. 두려운 것도, 어려운 것도 없는 친구다. 난쟁이 문씨처럼 세상과 맞짱을 뜰 줄 아는 놈이다. 세상을 까거나 비판하고 싶어서 비꼬는 게 아니라, 적합한 말을 하고 싶으니까 하는 게 정승구다.
직설적이고 화끈한 말들이 소설 곳곳에 아무렇지 않게 녹아있는 것도 작가의 그런 성격 때문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꼬집고 싶어서 꼬집은 것은 아닐 텐데, 왠지 시원한 마음이 남았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시원해지겠다, 그리고 몇몇은 볼이 얼얼해지겠다 생각했다.
〈영원한 아이〉는 요즘 세상에 적절하고 필요한 이야기다.
작은 마을에 갇혀 연구대상이 됐던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는 순간까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지금도 서울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내 가족이 죽은 진짜 이유를 알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살아오지 못할 내 가족이 죽은 이유만이라도 알게 해달라고……. 많은 국민이 여의도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내 가족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개인적인 책임감만 자꾸 무거워지고 있다. 바우가 그랬듯, 가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를 되새기는 요즘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써준 정승구가 고맙다.
차승재 (영화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