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서 겪은 일들을 들려주고 싶다. 나는 침묵에 지쳤어. 하지만 네가 이 자리에 없으니 펜을 든다. 이야기를 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모든 이야기를 잘 전할 수 있을지, 다른 편지처럼 네게 이 편지를 보내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밤 나는 외친다. 테오! 나 여기 있어! 나는 네 형이야, 영원히. 네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럼에도 너에게 다가가고 싶다. --- p.16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내가 계속 나아가리라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지쳤다면 이미 먼 길을 걸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이 이 세상과 맞서야 하는 자신만의 싸움이 있다면, 또 피곤하거나 머리가 터질 것 같다면, 바로 그것은 분투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눈을 들어 그물을 던지듯 네 자신을 세상의 바다에 던져라. 늘어진 두 손을 다잡고 일해라. 그 손으로 너에게 보이는 것들을 그려라. --- p.137
세상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이고, 내 안에서 하나님이 그 사실을 반대하지 않으신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과연 우리 중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스쳐가는 것 외에 다른 무언가도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의미가 없다면, 왜 이 모든 아름다움이, 왜 이 모든 고통이, 심지어 나에게는 왜 주먹을 부르쥐게 하고 이를 갈게 만드는 증오가 있는 걸까. --- p.266
딱따구리는 부리로 나무껍질을 파낸다. 송곳 같은 부리로 맹렬하게 나무를 쪼아댄다.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벌레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내 말은, 목적 없어 보이는 일도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거야. 사람이 자신의 직감을 믿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애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어쨌든 이 편지를 쓰는 데도 어떤 목적이 있다고 느껴진다. 풀숲에서 벌레를 찾듯 이 모든 말들을 한 뒤에 찾게 될 무언가가 있을 거야. --- p.266
우리가 이 세상을 붙잡으면 안 된다는 말이, 사랑하는 이들을 붙잡으면 안 된다는 말이 사실일까요? 여러분, 인정하세요!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이 세상을 붙잡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를, 이곳을, 우리가 떠나보낸 사람들을 붙잡고 싶어요. 여러분, 우리는 살아 있어요. 우리는 살아 있고, 그건 우리가 아직 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뜻이며, 아직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다음 세상을 위해 사는 게 아니에요. 다음 세상은 지금이 아닙니다. 나는 이 세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세상에서 신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무덤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게 맞아요. 그래요, 우리 모두가 그렇죠. 하지만 나는 가는 길의 걸음걸음마다 집중하고 있습니다. --- p.290
무엇이 너를 가로막고, 가두고, 묻어버리는지 늘 분명히 말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너는 알 수 없는 철창이나 문과 벽이 있음을 느끼고 있을 거야.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진지하고 깊은 애정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일이다. 그 지고의 힘으로, 강력한 마법으로 감옥을 여는 거야. 사랑이 없는 사람은 죽음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연민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 생명도 다시 살아난다.
그 감옥은 때로는 편견, 오해, 이것 또는 저것에 대한 치명적인 무지, 불신, 뻔뻔함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 p.337
만일 네가 나에게서 좋지 않은 나태함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볼 수 있다면, 정말 기쁘겠다. 내가 무언가를 해줄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내가 너의 조력자라는 사실을 잊지 마. 나는 네게 받은 것이 있어. 무슨 일이든 너를 도울 수 있다면, 내가 그랬듯이 너 역시 나를 불러도 좋아. 그렇다면 나는 행복해질 것이고 신뢰의 표시라고 생각할 거야. 우리는 꽤 멀어졌고 어떤 면에서 관점도 다르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어느 날 우리는 서로를 도와줄 수 있겠지. 오늘은 너와 악수를 하고, 네가 나에게 보내준 따스한 마음에 다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 p.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