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억 속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많은 날들을 함께 보냈던 사람도 있고, 하루 혹은 몇 시간을 스쳐가듯 만났던 사람도 있습니다. 저를 아프게 한 사람도 있고 제가 큰 상처를 안긴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 중 누군가가 그리울 적이면 저는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그를 불러옵니다. 만일 그가 바쁘다면 제가 찾아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눕니다. 안부를 묻고, 지난 일들을 묻고, 현재의 고충을 털어놓고,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기도 합니다. 서로를 격려하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말자며. 나중에 진짜 한자리에 모여 부둥켜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자며. 최선을 다했노라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삶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언제나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고.
--- 표지글
어디 있니. 도대체 어디 있는 거니. 대답 좀 해봐. 어떻게 그렇 수가 있었지. 이 세상에 네 몸 하나 의지할 데가 없었니. 이 넓고 따뜻하고 화사한 세상에...먼저 떠나면 떠난다고 얘기라도 해야지. 꿈속에라도 잠깐 찾아와서 알려주었어야지. 18년이 넘도록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었니. 대답 좀 해봐. 도대체 내 얘기를 듣고나 있는 거니....
--- p.316
'쓸쓸해 보이는군요. '
'그래요. 쓸쓸해 보여요. '
그녀의 대답이었다.
'쓸쓸할 수밖에요. 저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
'유경씨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그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중략)…
'저 사람이 사랑하는 건 제가 아니에요. 기억일 뿐이죠. '
그녀는 다시 커튼 틈으로 시선을 돌렸다.
'옛사랑의 기억, 자기 가슴 속의 상처, 회한... 비를 흠뻑 맞으며 처량하게 서 있다는 사실도 조금은 사랑할 테구요. 저 사람은 아마 언제나 저런 식이었을 거예요. 전 그런 건 질색이에요. 제 속에도 쓸쓸하고 처량한 건 넘쳐나고 있거든요. '
--- p.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