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제7장에서 논의하게 될 상처받은 치유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통증에 대한 정서적 반응으로 곤란을 겪을 수 없기 때문에, 효과적인 돌봄을 행할 수 없다. 능력은 연민의 첫 번째 행동이다. 상처받은 치유자들은 자신들의 환자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의 필요성과 환자들의 요구 사항 사이의 일치를 알 뿐이다. 상처받은 치유자들은 치유하는 관계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환자들을 초대한다. 이런 의미에서 임상 의사는 환자들을 손님처럼 접대하는 것이다.
병원(hospital)과 손님 접대(hospitality)는 관련 있는 단어이며, ‘손님(guest)에 관계된’ 라틴어 hospitalis에서 공통적 어원을 공유한다. 환자들을 좋게 대접한다는 것은, 해결되어야 할 일련의 문제들로서만 그들을 대우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들을 좋게 대접한다는 것은, 종종 인턴 기간에서 시작하여 의사로서의 경력이 쌓여 가는 동안에 ‘환자 제거하기’의 태도를 삼가는 것이다. 좋게 대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손님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며, 한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가치 있는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병원이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 환자들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헨리 나웬은 자신의 상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시키는 특성으로 세 가지 구체적 표지들을 명확히 표명한 바 있다. 즉 hospitality(손님 접대)의 표지들이며, concentration(집중, 전심전력), compassion(측은지심, 연민), perspective(장래의 전망, 가망) 들이다.
집중(concentration)은 한 사람의 손님이나 환자들의 요구에 주의를 모으는 것을 말한다. 이는 개인으로서 그들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의 계획과 관심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세밀한 주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의학에서의 이것은, 알부민 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 주목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 환자의 정신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때를 아는 것도 의미한다. 수술 후 폐의 색전증을 예방하고 예견하는 것, 외과 수술 중에 일어날지 모를 죽음-20년 전 마취 중에 죽은 부모의 기억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한다.
측은지심(compassion)은 적어도 환자와 함께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는 의사나 간호사가 환자의 (나쁜) 처지에 관해서 느끼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역전이’를 아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 연민은 자신의 고통과 다른 사람의 고통 사이의 본질적인 일치, 예수님의 고통에 토대를 둔 일치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의미한다.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아주 나쁜 것이다. 혼자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훨씬 더 나쁜 운명에 놓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임상 의사는 모든 사람의 고통을 일치시키는 유대를 자주 불명확하게 이해할 때에도, 비참하게 외로운 절망에서 온 고통을 구속(救贖)시키는 유대를 불명확하게 이해할 때에도, 환자와 의사소통할 기회를 갖는다.
그리스도인적 측은지심은 무의미한 고통으로부터 구속될 가능성을 환자의 머리맡으로 가져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의사나 간호사는 고통과 죽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을 알기 때문이다. 조용한 미소와 예의 바른 접촉이 만약 예수님 안에서 이뤄졌다면, 그것은 신앙·희망·사랑의 선물이 전달되기를 요구하는 모든 것일 수 있다. 이것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상처에) 부어준, 그 상처 입은 사람을 위한 (고통을 진정시키는) 향유일 수 있다. 자신도 고통을 겪고 있던 그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와 다른 모든 인간적 고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비로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요구되는 장래의 전망(perspective)이란, 하느님의 참된 표지로서, 그리고 희망의 입구로서 환자들의 상처를 보는 것이다. 성인들의 회심 이야기에서 질병이 그토록 자주 결정적 요인으로 나타났는지! 사울은 그가 말에서 떨어져 눈이 멀 때까지는 하느님을 알아볼 수 없었다(사도 9,1-19 참조).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회심은 그가 아프고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시작되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처음으로 거룩한 성경 말씀을 진지하게 읽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총상에서 회복되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하느님께서 하느님 백성들의 질병 안에서, 질병을 통해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알아볼 기회를 갖는 특전을 받은 사람들이다.
--- pp.7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