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poldo Alas ‘Clarin’, 1852~1901 스페인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비평가. 베니또 뻬레스 갈도스, 에밀리아 빠르도 바산과 더불어 19세기 스페인의 대표 작가로 자리 잡고 있다. 1852년 스페인의 사모라에서 주지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비에도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1868년 ‘9월 혁명’의 영향 아래 자유주의 사상을 옹호하며 신문 『후안 루이스』를 발행했다. 혁명 이후 사회변혁을 사상적으로 주도한 크라우제 철학에 매료되었고, 이는 저작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1875년 ‘나팔’을 뜻하는 ‘끌라린’이라는 필명으로 신문과 잡지에 정치비평과 문학비평을 발표하면서 왕정복고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1881년 스페인 소설가 베니또 뻬레스 갈도스의 소설 『무산자』에 대한 평론을 발표하고, 1882년 『라 디아나』지에 「자연주의에 대하여」라는 글을 발표하며 스페인 고유의 자연주의 문학론을 정립했다. 같은 해에 사라고사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이듬해에는 오비에도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쳤다. 1884년과 1885년에 걸쳐 첫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인 『레헨따』를 출간하며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외에도 『뻴라요의 포옹』 『그들의 유일한 아들』 『내리막길』 세편의 장편소설, 그리고 다수의 산문과 단편소설이 있다. 1901년 49세의 나이에 오비에도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역자 : 권미선
고려대 서문학과를 졸업하고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에서 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희대 스페인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사볼타 사건의 진실』 『브리다』 『먼 별』 『운명의 딸』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영혼의 집』 등이 있다.
“페르민 신부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이 그와 겨루며 싸우고 있지만 결국에는 그 혼자 독식하게 될 먹잇감이었다. 참 내! 사람들은 이 궁색한 제국마저 그에게서 빼앗아가려 한단 말인가? 아니다. 그것은 오롯이 그의 것이었다. 그가 멋지게 싸워서 얻어낸 거였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도 어리석을까?” --- p.26
“그녀는 더이상 글을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야유들을 비웃었다. 그녀의 자존심은 멍청한 귀족 남자들에게서 받은 환대를 경멸하고, 그들의 조소를 무시하는 걸로 복수했다. 아나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바치는 숭배는 받아들였다. 하지만 자신의 뇌리에서 잊힌 유명인사들을 대하듯, 우상 앞에 무릎을 꿇은 신도들을 한명씩 무시했다.” --- p.181
“하지만 무슨 사랑? 그 사랑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녀는 그 사랑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수치심 반, 분노 반으로 기억해냈다. 신혼여행은 쓸데없는 자극이자 감각에 대한 허위경고이고, 잔인한 빈정거림 자체였다. 그래, 정말 그랬다. 추억이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드는데, 왜 자기 자신에게 숨긴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