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내가, 여기 한국에서 해봐야겠다.’ 그 당시 인력거가 다니지 않는 서울 도심의 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대였다. 서울에 아직 인력거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겐 큰 동기부여가 됐다. 아무도 안 할 때 빨리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발로 움직이니 운동도 되고, 뒤에 탄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는 건 이미 해 봐서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점은 바로 이거다. ‘즐거움’ ‘행복’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인력거 핸들을 잡은 나에게 바로 전달되는 것.(잡아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모른다.) 게다가 미국에서 했을 때처럼 돈도 충분히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중략) 내 나이 스물일곱. 스티브 잡스는 20대 초반에 사업에 성공했고, 이상과 윤동주는 내 나이 때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고 떠났다. 이때를 놓치면 젊은 시절의 그 에너지는 없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이 회사의 멍청한 대표(내가 다니던 회사의 대표는 3명이었는데 하나같이 멍청해 보였다.)들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에 점점 조급해졌다. ― 「누구도 가능하리라고 믿지 않았다. 나만 빼고.」 중에서
비니가 주저 없이 한국으로 날아온 이유는 자신이 잘하고 즐거울 수 있는 일을 친구와 함께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It is your life. Just go, have a fun!”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응원해 주셨다고 한다. 비니 아버지의 말씀은 지금도 나의 가슴에 남아 있다. 한국에서 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안된다” “안될 거야” “하지 마라” 이런 말만 들어왔던 나에게 비니 아버지의 말씀은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되었다. ― 「Just go, have a fun」 중에서 지나고 보니, 인력거 일은 사람들이 겉모습만 보고 편견을 쉽게 가지는 사업이었다.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힘들지 않은데 힘들 것 같다고 동정한다든가, 외국인들이나 타는 것으로 생각한다든가(손님의 약 80%는 한국인들이다.) 마치 할 일이 없어서 이거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로 보는 것 등등. 진심으로 나는 사람들의 그런 편견과 싸울 수 있어서 좋았다. 잘되게 하려고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인 건 더 좋았다. 이기면 보람도 두 배일 거기에. (중략) 이 일을 하며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삶에 대한 성취감이 학교나 회사에 다니며 반수동적인 환경에 있을 때 맛보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 창업으로 얻는 성취감과 짜릿한 묘미는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 ― 「처음으로 되돌아갈 순 없다」 중에서
“인력거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었어.” (갈매 이주형)
“직장 다닐 때는 야근하고 들어가면 스트레스인데, 여긴 하루가 끝나면 몸은 좀 고되지만 집에 가서 자려고 누우면 내가 뭔가 하나 해냈다는 행복이 있어.” (헉 김학송)
“내가 다녔던 회사의 업무는 주로 자료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어. 상당히 정적이고 상당부분 예측가능한 부분이 많았지. 그렇게 일정한 틀에 짜여진 삶은 뭔가 허전했어. 시야가 갇히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아띠인력거에서 일어나는 일은 늘 새로웠어. 평소 나는 남들과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는데, 이 일과 딱 맞아떨어진 거야.” (제임스 이재훈)
“인력거는 이런 게 정말 재미있어, 인력거에 앉는 그 순간부터 인력거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과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마법을 보여주거든.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듣고 또 내 이야기도 해 주면서 스트레스도 풀 수 있고, 행복 에너지를 얻는 거 같아.” (잭슨 심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