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부님은 저 격동의 근대 전환기였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아직도 봉건사상이 서릿발같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 질곡의 역사 속에서 온갖 차별을 받으며 살아온 여성들의 원한을 풀어 주고자 실천적 삶을 살았던 여성 해방 혁명가요, 6백만 신도의 대 부흥을 이룬 종교단체 보천교에 알토란 같은 씨앗을 뿌린 종교 지도자입니다. 또한 부당한 대접과 핍박 속에서 원과 한으로 점철된 민초들과 아픔을 함께한 마음의 어머니요, 억조창생의 온갖 죄업과 악척을 대속하며 후천 5만 년 새 세상을 열어 준 생명의 어머니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고수부님을 만난 것은 1990년, 정확하게는 그해 5월 4일 한겨레신문 기획시리즈물이었던 「발굴 한국 현대사 인물」 중에 김영철 기자가 발굴, 취재한 「시대가 여성의 삶을 바꿔놓다」 편이었습니다. 물론 그 발굴 기사의 주인공은 고수부님이었습니다. 기자는 고수부님을 개화기 시절 여성 해방 혁명가, 민중의 꿈을 이루는 여성, 후천 여인상의 표상 등으로 묘사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페미니즘, 해체(주의)가 우리 사회의 중심 담론으로 한창 밀려오고 있을 때이기도 했지만 그 발굴 기사는 무척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습니다. 그로부터 10년쯤 지난 뒤에 나는 본격적으로 고수부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뒤에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고수부님을 처음 만난 뒤에 20년이 지난 세월입니다. 고수부님은 가난한 시골 농부의 딸로 태어나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이곳저곳을 떠도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열다섯 살 때 혼인을 하였으나 딸 하나를 두고 남편과 사별하게 됩니다. 한 여성으로서 비극적인 운명의 삶을 살았던 거지요. 그러다가 남편과 사별한 지 다섯 달 만에 '인간으로 온 상제님' 증산 상제님을 만나 반려자가 되고 종통대권을 전해 받음으로써 '수부首婦'가 됩니다.
아직은 좀 생소하겠지만(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입니다.), 고수부님은 인류 역사가 열린 이래 맺히고 쌓여온 온 여성들의 원과 한을 풀어 새 세상을 열어 준 뭇 여성의 우두머리, 인간과 신명의 어머니, 당신을 수부로 내세운 증산 상제님으로부터 종통을 이어 받아 대도통을 한 후계자, 이 땅에 도운의 첫 씨를 뿌린 주인공, 그리고 우주의 가을철에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게 될 억조창생을 구원하고자 직접 10년 천지공사를 집행한, 온 인류의 원한과 죄업을 대속하고 새 생명의 길로 인도한 '여자 하나님'이 되어 실천적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온 생명의, 인류의 어머니라는 것이 그렇게 영광스럽겠지만, 또한 그렇게 모질고 험난한 역경의 삶이었습니다.
영화 「공공의 적」에는 돈 때문에 아버지의 몸을 유혈이 낭자하도록 찌르고, 이를 말리는 어머니까지 죽이는 패륜아가 등장합니다. 그때 어머니의 행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목에 칼이 찔려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제 칼에 잘려나간 아들의 손톱을 목구멍에 넣고 삼키면서 죽어가는. 그런 패륜아조차도 자신을, 부모를 죽인 범인으로 잡혀가는 것을 우려한,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증산 상제님이 어천한 이후 고수부님은 감당하기 어려운 배신과 굴욕을 끊임없이 당하게 됩니다. 여성 지도자로서 뭇 남성들을 거느리는 것이 아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인 까닭도 있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고수부님―. 자식이 아무리 타락하여 저 '공공의 적' 같은 패륜을 저지르는 한이 있어도 버리지 않는, 끝없이 포용하고 감싸 주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우리들의 어머니. 거룩한.
고수부님은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와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고, 바로 그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삶을 살다가 간 인물입니다. 더 이상 높을 수 없는 영광과 더 이상 낮을 수 없는 굴욕으로 점철된 한 생애를 살다가 갔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낮은 곳에 있던 인물이 그렇게 높은 영광을, 그렇게 높은 곳에 있던 인물이 그렇게 참담한 굴욕으로 얼룩진 삶을 희생과 사랑으로 살았다는 것은 저로서는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고수부님이 보여 준 전기적, 사상적 행적은 물론 당신이 현재까지 미치는 큰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물이 우리 역사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은, 또한 연구자들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현상입니다. 이 미스터리 풀기야말로 내가 고수부님의 생애를 쓰도록 만용을 부리게 한 첫 디딤돌입니다.
나는 고수부님의 그 '어머니'를, 어머니의 삶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미천한 재주가 과연 고수부님이 실천적으로 보여준 어머니의 삶을 억만 분의 하나라도 온전히 기록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나는 이 글을 고수부님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한 치 더하거나 빼는 것 없이 기록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고수부님이 전범으로 보여 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거룩한 삶을 온 몸으로 체험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