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는 언제나처럼 동쪽에서 떠올라 옅은 색 커튼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눈 속을 파고들었고, 그녀는 졸음 섞인 신음소리를 한 번 내고는 벌떡 일어나 욕실로 향했거든요.
“야, 얼른 아침 먹어! 네 책 기증하러 복지관 간다며!!”
“알아, 엄마! 씻고 있단 말이야!!”
엄마 말씀대로, 그녀의 소설책을 기증하러 복지관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또한 엄마 걱정대로, 얼른 아침을 먹지 않으면 지각을 하리라는 것도, 똑똑한 그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독촉은 아무 이유 없이 짜증으로 응수하게 되는 법이죠. 이 나이가 돼서도 변함없이 말예요.
주름이 지기 시작하는 거울 속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마음은 여전히 초등학교 꼬마 애인데, 잔인하기도 하지. 어차피 인생 한 번 사는 거, 시간 좀 많이 주면 어디가 덧나나.
“얼른 나와, 이것아! 이러다 복지관 선생한테 전화 오면 내가 받아야 할 거 아녀!!”
“아우, 정말! 알았어, 나갈게!!”
머리 감을 시간도 없네, 하고 작게 투덜거리면서, 그녀는 감으려던 머리를 위로 올려 단정하게 묶습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니, 그래도 감지 않은 티가 많이 나지는 않아요. 순간,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다며 감지 않은 머리를 며칠씩 땋고 다니던 20년 전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함께 떠오르는 그 사람도….
이젠 어느새 자신이 삼십 대의 작가가 되어,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꿈을 선사해 주려 애쓰고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다 무거워집니다. 그래도 복지관에서 기다리고 있을 밝고 순수한 얼굴들을 떠올리니, 다시금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알람 좀 맞추고 자라니까, 네가 애냐? 아직도 엄마가 깨워줘야 혀?”
“깨워주지도 않았으면서. 내가 스스로 일어났거든.”
“계속 깨웠는데 네가 하도 안 일어나서 잠깐 가만히 내버려 뒀던 겨, 이년아!”
“알았어, 알았어. 앞으론 꼭 알람 맞추고 잘게. 응, 응, 미안하다고.”
식탁에 앉아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아침 뉴스에 귀를 기울입니다. 일기예보를 듣고 싶어서요. 베란다 바깥으로 보이는 하늘이 꾸물꾸물한 게, 비가 올 것도 같거든요. “비 오면 다른 걸로 갈아입어야 하는데”라고 작게 중얼거리면서 레이스 달린 옷을 만지작거리는 그녀. 엄마는 아직도 자기가 어린애인 줄 아나 보다고 비웃곤 하시지만, 쇼핑을 할 때마다 그녀의 시선은 어김없이 이런 옷에 멎곤 한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어제 저녁 5시 반경 △△로에서, 불법 장기기증 혐의 및 미성년자 희롱죄로 여러 차례 징역을 살았던 한 전과자가,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일기예보를 기다리며 토스트를 베어 물던 그녀의 입이 가만히 멈춥니다. 서늘한 공기가 갑자기 주위를 에워싸 온몸을 칭칭 감아버린 듯 꼼짝도 할 수가 없습니다.
좋지 못한 예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가는 게 스스로도 느껴집니다.
어제? 저녁 5시 반경? △△로? 그건….
“…사후, 그의 주머니에서 장기기증 카드가 발견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몇 년 전 이미 기증한 왼쪽 각막을 제외한 모든 장기를 필요한 환자들에게, 그것도 될 수 있는 한 가장 어린 환자들에게 기증해 달라는 일종의 유언이….”
토스트가 바닥에 뚝, 떨어집니다.
“아니, 이년아, 정신을 엇다 팔고…!”
그녀를 혼내려던 어머니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잠시 할 말을 잃습니다. 쉽사리 흔들리는 법이 없는 그녀의 어머니이기에 놀랄 만한 일이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찬찬히 고개를 저으며 바들바들 떨고 있습니다.
“…심각한 정신 장애에 시달리고 있던 그는, 자살 직전 매우 불안정한 태도를 보이며, 전혀 연고가 없는 근처의 한 여성을 끌어안았던 것으로 확인되는데요. 이 여성에 따르면….”
“연고가 없는 여성이라고?”
그녀가 멍하니 중얼거립니다. 다음 순간 그녀는 가슴을 들썩이며 조금씩 웃기 시작합니다.
뭐야, 그런 거였어?
네가, 감히 나를 그딴 식으로 속여 넘긴 거였어?
말을 했어야지!
겁쟁이.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죽었어? 왜 이렇게 무책임해? 나는, 나는 어떡하라고?
아니겠지. 아닐 거야. 또 나 혼자 착각하는 걸 거야.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서, 나랑 전혀 관계없는 일을 또 내 일인 것처럼 착각하는 걸 거야. 그래, 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나한테 그럴 리가 없잖아….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