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 어떤 집단도 이런 문화적 다양성과 다양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의 장벽이 없어져 도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바로바로 접하는 우리는 이질성(alternit?)을 실감하며 살아간다. ……특히 학교는 여러 규범들이 상징적으로 충돌하는 장소들 중 하나가 되었다. ……문화적 다양성은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여러 가지 현상들로 나타나며, 종종 비정상적 상태의 출현은 기능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 경우 교사들은 아무런 참조기준이 없어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문화적 다원성 문제에 대한 오랜 침묵은 지속적인 무질서를 초래하고, 사회화와 교육의 주역으로서의 학교의 정체성 자체를 훼손시킬 뿐이다. ……그러나 학교가 언제까지나 아무런 방향설정 없이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p.9
문화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고 사람을 통해서만 표현된다(Linton, 1968). 따라서 격리된 문화적 특성이나 구조로 문화적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것은 헛된 일이다. 게다가 어느 누구도 자기가 속해 있는 문화 전체를 다 알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분석적이고 규범적인 접근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접근은 문화를 마치 실체인 양(Linton, 1968), 아니면 작동적인 개념(Lvi-Strauss, 1977)인 양 여기게 만든다. --- p.16
차이에 관한 연구는 다양성과 보편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황과 그 관계에 관한 연구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보편성 원칙은 종종 그것의 변질된 형태에 불과한 보편주의와 혼동되기도 한다. 이런 혼동은 ‘동일성(identit)’과 ‘동일한 것(identique)’이 뒤섞이고 동화된 것으로, 개별적인 것을 훨씬 큰 전체로 일반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보편주의에 대한 비난 때문에 보편성의 원칙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 --- p.34
오늘날 문화적 다양성을 다루는 두 가지 모형이 있다. 하나는 앵글로색슨의 다문화 모형으로, 모든 사람에게 국가-국민과는 다른 공동체에 속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다른 하나는 프랑스어권의 상호문화적 모형으로, 아직까지 정치계나 교육계에서 공식적으로 분명하게 천명된 적은 없지만 다문화적 흐름에 대한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 p.37
학교가 다원적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국가나 시대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사회적·정치적 차원에 뿌리내린 다문화적 추세는 교육계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문화교육은 국가가 여러 가지 다른 교육계획을 실시한 후 문화적 역동성을 조절하고 교육체계를 다양한 문화 집단의 요구에 맞추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 p.41
다문화주의는 차이를 온전히 인정하기 때문에 집단과 개인의 동거와 공존 구조에 멈춘다. 개인은 자신의 차이를 타인과 되도록 소극적으로 대립하면서 키워나간다. 이런 구조화는 잠재적으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는데, 불평등한 관계가 미결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각자에게 상징적이거나 실제적인 어떤 자리를 지정해버리면 불평등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비록 차이의 인정이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구상·개발·실행되었을지라도 말이다. --- p.51
모든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핵심 문제는 차별주의나 보편주의에게 빠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어떻게 다원성과 다양성을 고려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회의 응집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차이점을 다룰 것인가? 결국 오늘날의 과제는 차이점의 위계화와 대량화라는 위험, 극단적인 상대주의로 인한 사회체계의 무력감이라는 위험을 모두 피할 수 있는 다원성 이론을 개발해내는 것이다. --- p.58
프랑스에서 널리 퍼진 상호문화적 관점은 다문화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적·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계몽주의 철학을 충실히 따르고 소수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법적 전통과 관련된 보편성의 원칙을 중시하기 때문에 다문화주의는 문화적 다양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상이나 시도에서 늘 논외의 대상이었다. --- p.59
상호문화주의에서 ‘상호’라는 접두사는 집단, 개인, 정체성 간의 상호작용을 관련짓고 고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원문화(pluriculturel), 다문화(multiculturel)라는 용어가 확인 차원에 멈춘다면, 상호문화는 절차를 중시한다. 따라서 이 용어는 객관적인 실체에 해당하는 개념이 아니다. 연구대상에 ‘상호문화적’ 특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분석이다. 이런 이유로 대상의 속성에 따라 상호문화적 교수법, 상호문화적 의사소통, 상호문화적 관계라 부른다. 다시 말해, 이런 용어들은 그것이 상호문화적 원칙에 따라 분석될 때 비로소 정당성을 확보한다. --- p.65
교육에서 상호문화적 사고나 행동과 관련된 영역은 매우 넓다. 왜냐하면 모든 교육은 하나 또는 여러 문화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육적 또는 교육학적 행위가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대상에게 적합한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교육학적 개입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또한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문화적 요인은 학습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타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보면 일종의 상징적 폭력으로 정의할 수 있는 교육과 교육적 전통을 어떻게 공존시킬 것인가? 오늘날 교육계는 이런 유형의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 p.103
이민자녀의 학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호문화적 활동과 관련된 공문이 나오기 시작한 1975년부터 교육에서 상호문화는 많은 모순과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상호문화는 다른 교육 분야, 예를 들어 상호문화적 접근방식을 원용한 언어교육, 학교교류, 시민교육에서 큰 활기를 띠고 있다. 또한 기업, 경영 및 의사소통 관련 분야 역시 여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상호문화적 주제는 이제 (이민자의, 유럽적, 지역적) 문화와 언어에의 개방, 국제 교류에의 개방, 그리고 대중매체·여행·신기술을 통한 세계에의 개방 등 다양한 개방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 p.117
각국의 방향 설정이 무엇이든 간에 최근의 연구와 논의는 다차원성과 통합 과정의 변화를 최대한 고려하고 있다. 또한 문제를 순전히 이민자로만 한정하지 않고 공공생활로 확산시키고 사람들 간의 상호적응을 고려함으로써 좀 더 수평적이고 좀 덜 수직적인 방향 설정을 모색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 p.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