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그런 공간이다. 2,500년 세월로 깊어진 신비로운 담론의 공간. 세속에 관한 관심을 놓지 않지만, 세속과는 절연된 심연이다. 새벽의 전동성당, 이역만리 쾰른 대성당의 예배 공간처럼 숙연한 곳이다. 소음 없는 곳, 번잡 없는 곳. 주역을 들추는 순간, 우리는 다른 시간으로 이동한다. 나만의 은밀한 아지트로 진입한다.
(중략) 주역도 그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에게서 멀리 떼어 저 멀리로 펼친다. 64개의 괘로 세상사를 집약해, 한눈에 조감하게 해준다. 주역을 펼쳐 드는 순간, 우리는 단숨에 백운대에 오른다. 백운대뿐이랴. 찬바람 떨치며 저 하늘 밑 에베레스트를 넘어가는 독수리의 눈을 갖게 해준다.
(중략) 매혹과 혼돈. 주역은 느릿느릿, 이런저런 점사들을 던지다가 어느 한순간, 예상치 못한 매혹의 메시지를 ‘툭’ 하고 내던진다. 홍매화 한 송이가 열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순간의 매혹은 바로 닫히고 다시 어눌하고 모호한 말들이 펼쳐진다. 한줄기 바람의 소행이다. 주역은 매혹했다가, 바로 혼돈하게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아무 때라도 나를 내려놓고 그 ‘나’란 것을 주역에 한번 맡겨보라. 유·불리로 상황을 파악하는 일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살다 보면 갖가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 상황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쉽게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게 주역이다. --- p. 16쪽
선택보다 중요한 게 절실한 마음이고 절실한 행동이다. 선택은 잘못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한번 선택했으면 밀고 나가야 뭐가 이뤄지든 말든 한다. 물론 ‘이건 아니다’ 싶어 선택을 물리고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차선이든, 차차선이든 자신의 선택을 밀고 나가면 대부분은 무언가 이뤄진다. 중요한 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이다. 선택보다 선택에 대한 믿음이 훨씬 요긴할 때가 많다. --- p. 27쪽
살다 보면 누구나 여러 번 머뭇거린다. 그럴 땐 그냥 머뭇거리는 게 가장 좋다. 준비가 안 되었거나, 실행할 시기를 못 만났거나, 일을 이미 그르쳤거나 하면 누구나 그런다. 어찌할 줄 모른다.
그런 일 생기면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빈둥거리고, 아무 생각 없이 서성일 뿐이지 더 무얼 하겠나. 대안이란 게 빈둥거리고 서성이던 중에 나오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p. 39
그 기다림의 이야기는 아주 멀리 교외에서 시작한다. 기약 없는 일이지만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 모래사장에서 기다리고, 진흙탕에 빠진 채로도 기다려야 한다. 급기야 피를 흘리며 기다리는 경우까지 이야기한다. 아마도 전쟁의 와중에 뽑은 점사였을 것이다. 물론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며, 흥청망청 즐기면서 기다리는 행복한 경우도 있겠다. 주역은 수천 수 괘에 그런 온갖 기다림의 경우를 망라한다.
그래서 결론은? 기다림을 괴로워하지 말란 얘기다. 저 위 하늘 뜬구름들을 보면서 ‘저게 언젠가는 비로 변해 내리겠지!’ 자신을 위로할 따름이다. 구름이 비가 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p. 43쪽(05 수천 수)
굳고 정함이 리더의 덕목이 돼야 한다는 데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대중 안에서 대중의 심정을 체득해야 한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 괘가 제시하는 리더의 덕목은 ‘땅에 스며든 물’이라는 ‘지수’의 괘상 자체에 있는 것 같다. 땅속의 물은 온몸으로 나무들을 살린다. 나무에 온전히 흡수되는 물의 행동 방식은 자기희생이다. 자신을 버려야 무리가 자신을 따른다. 큰일은 늘 그런 식으로 이뤄진다. 자기를 버리면, 사람들이 따른다.--- p. 47~48쪽(07 지수 사)
난세를 바꿀 사람은 자고로 이래야 한다. 저 멀리 황량한 변방에 버려진 것들을 보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오래된 흙탕의 황하를 맨몸으로 건너는 일도 마다치 않아야 한다. 내 주위를 둘러싼 친숙한 것들을 단번에 잊어야 한다. 하늘과 땅을 뒤엎어 평안을 얻으려는 자라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다.--- p. 71쪽(11 지천 태)
눈앞의 화려함에 현혹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이렌 요정들의 노랫소리에 빠진 오디세우스의 수하들이 그 옛날 이미 맹목적 취미(趣味)의 치명성을 몸소 보여주지 않았던가.
산화 비의 괘는 아름다움에 던지는 찬사인 동시에 경계다.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붉은 노을은 숭고하면서도 퇴폐적이다. 몰락한 태양의 빛이 주는 느낌은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소박해야 진짜 아름답다--- p. 100쪽(22 산화 비)
살다 보면 무너지기 마련이어서 늘 고생이다. 시인의 말마따나 오늘 저녁이 살기 싫고 내일 아침이 먹기 싫다. 그런 사람 수다하고, 그런 사연 허다하다.
산지(山地) 박(剝)의 괘는 그걸 아주 위태위태하게 괘상으로 쌓아놓았다. 두 동강 난 음의 막대가 아래로 다섯 개 위태롭게 놓였는데 그 위로 양의 막대 하나가 걸쳐 있다. 곧 무너질 거다. 흔들흔들하다가 주저앉을 것이다. 폐허가 되리라. 가냘픈 생 힘겹게 떠받쳐온 기둥 몇 개 널브러진 채로 황량할 거다.--- p. 105
주역의 점사에는 숱한 단어와 성어와 문장이 등장한다. 그중 개인적으로 아끼는 단어가 회망(悔亡)이다. ‘회한이 사라진다.’ 후회 없는 삶, 아쉬움을 남기지 않은 삶, 안타까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은 이 세상에 없다. 없어서 더 회망의 경지를 사랑하게 된다. 끝내 이루지 못할 경지이므로, 언제까지라도 마음속에 염원으로 둘 수 있는 영역이므로….--- p. 137
‘득실을 걱정하지 않는다. 가면 길하다. 불리할 게 없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묵직함과 여유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아닐까. 득실 따위 걱정하지 않고, 그래도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면 불리할 게 없지 않겠느냐는 낙관이야말로 한 인간을 태양으로 우뚝 세우는 비결 아니겠는가 싶다.--- p. 148
진정으로 멋있는 사람은 만신창이가 되고도 다시 일어나 절뚝거리며 제 갈 길 가는 사람이다. 그렇게 파행(跛行)하다가 다시 우뚝 일어나 동지들을 얻고, 명예를 얻고, 잃었던 친구들을 얻고, 마침내 꿈꾸던 한 가지, 불가능할 줄 알았던 그 한 가지를 쟁취하고 마는 사람이다. 세상의 끝에서 반전하는 사람이다. 파행의 괘, 절뚝거림의 괘 수산(水山) 건(蹇)의 효사들은 그런 내용이다.--- p. 162쪽(39 수산 건)
꼬인 상황을 푸는 가장 절묘한 자극은 진심이다. 현란한 말과 선물로는 누구도 자극하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사람의 문제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일 때가 많다. 나의 진심이 물속에 서서히 퍼지는 한 방울의 자줏빛 물감처럼 다른 이의 마음을 적시고 나면, 나를 괴롭히던 문제도 어느새 흔적 없이 사라진다.--- p. 166
혁명은 됐다 치자. 살다 보면 신경 써야 할 ‘거사’가 꽤 많다. 그런 일이 닥치면 일단 은밀해야 한다. 앞발에 힘 팍 넣고 얼굴 근육 굳히면, 저 멀리서 편하게 졸던 상대방도 발소리에 경직된 분위기에 놀라 무슨 일 있나 점검하게 된다. 몸에선 힘 빼고, 얼굴에선 긴장을 풀어야 한다.그러나 마음가짐은 독할 만큼 결연해야 한다. 그래야 택천 쾌의 메시지에 부응한다. 효사 중에 이런 말도 등장한다. ‘과감하고 과감해야 한다. 홀로 가는 길에 비를 맞더라도.’ 주위에 자기편 하나 없어도, 암울한 상황이 예견되더라도, 필요하면 사지로 튀어나갈 줄 아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추위 속의 소나기로 온몸이 젖고 얼어붙어도 내친걸음 멈추지 않고 돌진하는 저돌 없이 완고한 구체제가 타파될 리 없으니.--- p. 1754~175
‘만나지 말고, 슬쩍 지나치라’는 말은 은유다. 작은 일(슬쩍 지나치는)은 하더라도, 큰일(직접 만나는)은 삼가야 한다. 괘의 이미지가 점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벼락[雷]이 산(山) 위로 내리치는 중이다. 벼락이 지나갈 때까지 최대한 웅크리고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버티는 게 상책이다. 어쩌면 비바람의 와중일 수도 있다. 무리해서 만나려 하지 말고, 슬쩍 지나치는 편이 훗날을 위해 현명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살짝 스쳐 지나간다고, 훗날의 만남 그 개연성이 증발되는 것은 아니다. 만날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라도 만난다. 10년, 20년을 스쳐만 지내고도 끝내는 만나는 사람이 있다.--- p. 238
사라졌다가도 다시 나타나는 게 우리가 사는 곳 우주다. 그 안팎으로 아무것도 없었을 블랙홀이 터지면서 천변만변으로 세상이 펼쳐졌다. 몇 가지 원소가 융합하고 폭발하면서 수를 불리고, 그게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 엮이면서 자연도 만들어내고 사람도 만들어냈다. 자연은 쇠락하고 사람도 사멸하지만, 그걸 이루던 우주의 원소들은 모양을 바꾸고 예상치 못한 결합을 선보이며 이곳저곳에 출현한다. 그래서 사라진 모든 것들은 다시 나타난다.
--- p. 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