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다 말해버리는 선수와 솔직하게 다 말해버리는 작가
LPGA는 고등학교처럼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동네이다. 투어의 연애 현장과 관련해서라면 나와 마크와의 결별이 유일한 뉴스는 아니었다. 진짜 흥미진진한 결별은 어떤 남자 선수와 여자 캐디 커플에 대한 거였다. 남자 선수가 유럽에서 다른 여성들과 신나게 즐기며 오프시즌을 보내고 난 뒤 그들은 결별했다. 그 캐디인 여성은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감정을 정리하고자 한해를 쉬기로 했다.
우리가 토너먼트 라운드 도중에 섹스에 대해 얼마나 많이 얘기를 나누는지 골프 팬들이 안다면 충격 받을 것이다. 한번은 나와 한 조를 이룬 친한 친구가 그녀가 읽고 있는 선정적인 책 〈I Hope They Serve Beer in Hell〉에 나오는 이야기들로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 책엔 실제 캐디가 자신의 다양한 성적 모험담들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넋이 빠져 대화하는 모습을 본 팬들은 모두 아마 우리가 미키 라이트의 스윙이나 알리스터 맥켄지의 벙커링에 대해 토론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줄곧 섹스에 대한 외설적인 잡담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만일 당신이 사랑이 필요한 선수이고 캐디와 얽히고설킨 관계를 피하고 싶다면 또 다른 선택의 가능성으로 에이전트들이나 투어에 종사하는 장비담당자들이 있다. 이런 남자들은 캐디들처럼 매주 투어를 하는 게 아니라 약간의 신비감도 있고 땀투성이가 아니라는 게 장점이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지독한 바람둥이들이다. 그 중 한 검객이 유난히 악명 높았다. 피카소의 그림 스타일이 시기에 따라 청색 시대, 그 다음 장밋빛 시대, 그리고 또 다른 시대로 변화해 간 것을 알 것이다. 이 에이전트도 처음엔 연상녀 시대를 보냈다. 이 시기 동안 약 25년 전 쯤에 대단했던 오스트레일리아 여자를 낚은 것이다. 그 다음엔 아시아 여자 시대로 넘어갔다. 그 후엔 유럽 여자들 시대로 옮겨 갔고 마침내 그 중 한 여자와 결혼했다. 내 계산이 정확하다면, 이 남자가 같이 잔 여자선수들이 우승한 메이저 챔피언십이 모두 합쳐서 18개니까, 이런, 그는 잭 니클라우스와 타이기록을 세운 셈이군! --- 〈이별은 새로운 출발〉 중에서
한국인 부모들이 정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자녀들의‘성취’이다.
어느 날 아빠는 끝이 구근모양인 웃기게 생긴 철제 스틱을 들고 나타나셨다. 날 뒷마당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아스트로터프 인조잔디를 까시고는 으름장을 놓으시듯 말하셨다. “여기서 할 수 있는 한 세게 스윙해봐.” 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재밌었다. 그러고 나서 아빠는 내게 그렇게 499번을 하라고 시키셨다. 효심 깊은 한국인 딸로서 아빠에게 토를 달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방과 후면 분부하신 500번의 스윙을 하느라 2시간을 보냈고 오빠 멜과 언니 글로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 골프를 향상시키기 위해 매우 분석적으로 접근했다.: 토너먼트 중에 그는 커다란 카메라와 삼각대를 짊어지고 마치 빅풋이 내려오듯이 나무들 사이를 요란스럽게 다니시며 날 찍으셨다. 그 당시에는 자신들의 딸의 라운드를 촬영하는 부모들은 없었다. 나는 아빠와 늘 따라 다니는 카메라 때문에 창피했다...
16살 때인 2000년 말에 내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결정들 중 하나를 내렸다.: 오크 그로브 하이스쿨을 떠나 풀타임으로 골프에 집중하자. 누구든지 아빠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했으리라고 짐작하겠지만 그것은 순전히 나의 결정이었다. 부모님들은 정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내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아셨기 때문에 내게 축복을 빌어주셨다. 나는 캘리포니아 주 검정고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고등학교 졸업생 지위를 부여 받았고, 엄마와 아빠는 기뻐하셨다. 사람들은 한국인 부모들이 교육에 대해 집착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들이 정말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취이다. --- 〈나는 아빠의 딸〉 중에서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신지애, 미셸 위...대단한 한국 여성 골퍼들!
박세리의 신참시절 그녀는 투어에서 단 두 명뿐인 한국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지금은 48명이 있고 이러한 이주현상은 한국에 있는 탄탄한 기반-엄청난 수의 골프 아카데미, 주니어 프로그램, KLPGA대회들-을 고려해 볼 때 거침없이 계속될 것이다. 박세리의 약진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은 사실 그녀의 열성적인 아버지 박준철씨에게로 초점이 모아진다. 그는 박세리가 10대였을 때 그녀에게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공동묘지에서 그녀 혼자 밤을 보내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또한 박세리의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의 아파트 건물에서 그녀가 절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들이 사는 곳이 15층이라는 사실만 아니라면 대단하게 들리진 않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한국에서 등장한 뛰어난 선수가 김미현으로 그녀에게도 아픈 사연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메이저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까지는 결혼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키가 157 센티밖에 안 되기 때문에 우리들 사이에서 수퍼 땅콩으로 불리는 김미현 선수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8번의 LPGA 시합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메이저 대회에서는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부담감을 생각했을 때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녀가 32살이 된 2008년 12월에 마침내 결혼을 하도록 허락받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유도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의 국가적 영웅인 이원희 선수로부터 그녀가 청혼을 받자 그녀의 아버지가 마음을 바꾼 것이다. (결혼식 때 박세리가 부케를 받았는데, 투어의 한국 선수들 대다수가 그런 것처럼 그녀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다.)
박지은은 아름답고 화려한 이미지를 발산하면서도 R 등급의 탁월한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고, 혼자 힘으로 투어에 프라다와 구찌를 소개한 LPGA의 독창적인 디바들 중 하나이다. “한국인들은 다 똑같아.”라고 불평하는 팬들과 기자들은 단지 그 개개인들을 알기 위해 노력하기에는 너무 게으르거나 편협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로레나가 가정을 만드는데 열중하는 동안 그 공백을 메운 사람이 신지애다. 그녀는 한국출신의 21살짜리 신예로서 2009년 중반에 두 번이나 우승했고 그 외에 탑 텐으로 피니시를 한 것도 네 번이나 된다. 키가 5피트1밖에 안 되는 신지애는 로레나처럼 폭발적이진 않지만 그녀의 시합에는 약점이 없다. 나는 그녀와 한 조가 된 적인 가끔 있는데 그녀는 그냥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다가 그녀의 점수를 보면, 세상에 정말 7언더 파를 치고 있단 말이야? 하고 놀라게 된다. 지애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영어가 아직 그냥 그래서 미국 팬들은 그녀가 정말 재밌는 캐릭터라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에게는 신인 가수 경력이 있고 그녀의 발라드 곡들 중 하나는 한국에서 가요 차트에도 올랐었다. 삼성 월드 챔피언십 때 그녀는 선두를 달리고 있었는데도 3라운드가 끝난 뒤 라호야 해안으로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가기도 했다...
미셸 위 덕분에 마지막 라운드는 골프 채널에서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고 lpga.com은 어느 때보다도 방문객이 많았다. 나는 미셸이 LPGA에 등장했던 최고의 선수들 중 한 명이 될 거라고 말해왔다. 그녀는 지적이고, 예쁘고, 재치 있고, 키도 180 센티가 넘고, 그리고 아무도 그녀를 무시할 수 없게 만드는 스타성을 지니고 있다. 골퍼들이 천성적으로 이기적일지라도 미셸이 이루는 것들이 투어를 위해서도 좋고 남은 시즌 동안에도 그녀가 풍성한 수익성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들 결국은 납득할 것이다. 미셸은 자존심을 억누르고 Q 스쿨을 거침으로써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녀는 정말 커다란 미디어 광고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 〈내 뿌리는 한국〉 중에서
골프장비의 교체, 그리고 스윙 자세 교정...
운을 바꿔보겠다는 희망으로 2라운드에서는 크람스키에서 만든 새 퍼터로 플레이 했다. 아담한 외양의 독일산으로 수제의 아름다움을 발산하여 유러피언 투어에서 인기가 많다. 이것이 그해 나의 네 번째 퍼터였다. 좀 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퍼터가 아니라 스트로크가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겠지만 난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칠 수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퍼팅을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어떤 기술적인 설명도 무색하게 만드는 일종의 마법 같은 것으로 여겨왔다. 내게는 퍼팅은 기술적인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신비하고 순간적인 “느낌”에 관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퍼터 교체는 10번 홀에서 시작한 2 라운드에서 별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내 스윙의 커다란 변화는 백스윙 때 왼쪽 팔을 더 곧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팔이 구부러져 제자리로 돌아가면 클럽페이스가 위를 보고 열려 있게 됐다. 나는 왼쪽 팔이 너무 곧게 펴져 있다고 여러 해 동안 놀림 당했었는데, 이번에는 그것을 고수하기 위해 전념해야만 했다. 한쪽 팔을 조금 더 펴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로 들리겠지만 마치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글을 쓰려고 하는 것처럼 기계에 손댈 때마다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나는 새로운 동작에 익숙해지기 위해 며칠 동안 전력을 다해 노력했다...
에비앙 마스터스 직전에 쉬던 주와 프랑스에 있는 기간 동안 나는 계속해서 나의 근본적인 것들에 대해 연구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 공의 위치와 정렬 그리고 스윙 패스와 템포에 집착해왔다. 하지만 로열 리담의 3번 페어웨이에 서있으면서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완벽하려고 애쓰지? 난 집에서 만든 스윙을 하는 웃기게 생긴 여자야. 왜 그냥 그걸 받아들이? 않아? 로레나 오초아도 교과서적인 스윙을 하진 않지. 낸시 로페즈도 그렇고. 이야기 나온 김에 말인데, 짐 퓨릭이나 리 트레비노 그리고 정말 많은 위대한 선수들도 그래. 여기에 나는 거룩한 디 오픈을 플레이하고 있어. 성스러운 영국 링크골프장에서, 재치 있는 영국인 캐디와 함께, 전형적인 영국 날씨 속에서. 그런데 나는 완벽한 스윙을 하는 완벽한 미국 산 로봇이 되려고 애쓰고 있어. 골프는 예술이지 과학이 아니야. 골프는 샷을 창조하는 것이지 감정 없이 같은 스윙을 거듭해서 반복하는 게 아니야. 바로 그곳 3번 페어웨이에서 이 모든 생각들이 내 마음 속을 질주해 갔다. --- 〈전진 또 전진〉 중에서
프로골퍼의 돈 관리
그 다음으로 든 생각은 돈다발이 날아가 버린다는 거였다. 72홀을 하는 동안 모든 스트로크가 똑같이 중요하지만 일요일 날 18번 홀을 망쳤을 때는 그 재정적인 의미에 대해 더 많이 의식하게 된다. 18번 홀에서 버디를 하게 되면 나는 15위가 되어 24,000달러 정도를 벌게 된다. 대신에 더블 보기를 하게 되면 27위가 되어 14,097달러를 벌게 된다. 정말 비싼 실수가 되는 것이다...
아빠가 전임으로 내 캐디를 할 때 그는 투어에서 가장 보수를 많이 받는 캐디들 중 하나였다. 한 해에 10만 달러 이상의 봉급을 받았다. 내가 아빠를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의 부풀려진 봉급은 사실상 내게 부과되는 세금을 줄여주기 위해 지불된 것이었다. 돈에 대한 우리 가족의 태도는 항상 내 꺼가 네 꺼 라는 식이였기 때문에 내가 아빠에게 지불하는 돈은 전부 우리 가족들 모두가 공유하는 하나의 큰 공동 자금으로 되돌아왔다. 엄마도 내 급료 지불 명부에 올라계신다. 엄마는 내 회계사로 활동하시며 모든 청구서들을 다루고 우리의 계좌들을 관리하고 줄줄이 이어지는 소득 신고서를 준비하는데 도움을 주신다. (투어하는 모든 골퍼들처럼, 나는 어느 나라에서나 영수증을 모으면 철하여 정리 보관하는데 정말 엉덩이가 아파올 정도로 고된 작업이다.)
속 모르는 팬들은 프로 골프를 치면 돈을 쉽게 벌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가진 자와 더 가진 자들의 세계인 PGA 투어에만 해당되는 얘기다. LPGA에서 고투한다는 것은 페라리 대신에 포르쉐에 만족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9년에 케빈 스트릴먼은 PGA투어 머니 리스트에서 91위로 피니시했는데 1,007,444 달러를 벌어들였다. 제니퍼 로살레스는 LPGA 머니 리스트에서 91위였는데, 92,832달러를 벌었다. 지출을 계산에 넣어보면 머니리스트에서 탑 50 정도에 들지 못하면 LPGA 투어에서 플레이하다가는 말 그대로 파산하게 된다.
--- 〈돈, 돈, 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