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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 권력

비선 권력

: 박근혜와 최태민의 만남부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까지

김용출 등저 | 한울 | 2017년 05월 1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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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5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696쪽 | 954g | 148*224*35mm
ISBN13 9788946063518
ISBN10 894606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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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 자 소 개
김용출
신문기자 및 작가.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으로 바다를 향해 가다 보면 닿는 곳, 전남 장흥에서 1969년에 태어났다. 나주 금성고를 거쳐 1995년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에는 ‘문학의 향연’에 취하기도. 1997년 8월 세계일보에 입사한 이래 정치부와 경제부, 사회부, 문화부 등에서 일했고, 2012년 4월부터 3년간 도쿄 특파원을 지냈다. 현재 탐사보도팀에서 근무 중. 쓴 책으로는 『시대를 울린 여자: 최옥란 평전』(2003), 『독서경영: 지속성장을 위한 강력한 경쟁력』(2006, 공저), 『독일 아리랑』(2015, 개정판) 등이 있다. 이달의 기자상(9회)과 한국신문상, 국제앰네스티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꿈은 1000년이 가는 잡지를 만드는 것.

이천종
신문기자. 하늘 아래 가장 살기 편하다는 충남 천안에서 1972년에 태어났다. 천안고를 거쳐 1999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99년 5월 세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사건팀과 정치부 정당팀, 특별기획취재팀 등에서 일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C) 저널리즘 스쿨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세종시에 상주하며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취재해 경제 분석 기사를 주로 쓴다. 한국신문상과 국제앰네스티언론상, 이달의 기자상(4회), 올해의 좋은 신문기획상 등을 수상했다.

조병욱
신문기자. 바다와 산이 있는 부산에서 1985년 봄에 태어났다. 경남외국어고를 거쳐 선문대 북한학과와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대학 시절 네팔에서 반년간 봉사활동을 하며 산에 자주 올랐다. 2010년 세계일보에 입사한 이래 사회부, 외교안보부, 특별기획취재팀 등에서 일했다. 현재 경제부 기자로 근무 중. 쓴 책으로는 『지구의 미래: 기후변화를 읽다』(2016, 공저)가 있다. 한국신문상과 녹색기후상 등을 수상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행작가가 되는 것이 꿈.

박영준
신문기자.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보다 운동을 더 열심히 했다. 안양 백영고를 나와 2006년 늦깎이로 숭실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2011년에 졸업했다. 2011년 9월 세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경찰팀을 거쳐 현재 정치부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신문상, 이달의 기자상, 인권보도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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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의 편지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박근혜는 일주일쯤 뒤인 3월 6일 청와대에서 최태민을 만났다. 최태민은 그때 나이 63세였지만 얼굴 피부가 팽팽한 동안이었고 몸집은 작으면서도 다부져 보였다고 한다. 박근혜는 이날 최소 3시간 이상 최태민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최태민이 대화를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민은 이 자리에서 육영수 죽음의 의미를 설명한 뒤 박근혜에게 외부 활동을 적극 권한 것으로 전해졌다. --- p. 32

박근혜는 퍼스트레이디로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최태민이 주도하는 행사나 활동에 빈번히 얼굴을 드러냈다. 최태민이 서울시의사회와 함께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위치한 구 서울신학대학 건물에 야간무료진료센터를 열자 큰 관심을 보이며 이와 관련한 각종 행사에 참석했다. …… 재미있는 것은 박근혜가 나중에 대한구국선교단의 야간진료 활동을 자신의 주요 업적 가운데 하나로 바라봤다는 점이다. 박근혜와 최태민, 최태민과 박근혜가 서로의 활동을 제 것처럼 인식한 게 아닌가 하는 추정이 나오는 대목이다. --- p. 59~60

박근혜는 왜 최태민이 주도한 행사에 빈번히, 거의 빠짐없이 달려갔을까. 이에 대해 박근혜가 최태민이 주도한 행사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공주나 여왕처럼 떠받들면서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권력을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다. 즉, 흙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하는 노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내려다보며 강연하면서 권력 의지를 키우고 즐겼다는 것이다. --- p. 61

최순실은 1979년 6월 10일 서울 한양대에서 박근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회 새마음제전을 주도했다. …… 단국대 대학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최순실은 이날 오전 10시 20분 제1회 새마음제전에서 새마음전국대학생연합회 회장으로서 개회를 선언했다. 당시 영상에서 최순실은 이날 행사장을 찾은 박근혜의 옆을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있다. 최순실은 박근혜를 행사장으로 안내하거나 박근혜의 오른편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가 친절하게 설명하는데, 이에 대해 마치 시녀가 공주를 대하는 듯한 모습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편으로 이는 ‘공동 이익’을 나누는 전면적인 관계는 아직 아니었다는 조순제의 증언에 힘을 실어준다. --- p. 97~98

김재규는 10·26 사태 직전인 10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른바 「최태민 관련 자료」를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는 최태민의 횡령, 사기, 변호사법 위반, 이권 개입, 융자 브로커 행각, 성추문 의혹 등이 적나라하게 들어 있는 보고서였다. 무려 44건의 비리 대부분이 권력형 비리였다. 하지만 박정희는 김재규의 직보를 묵살했고, 이것은 10·26 사태의 중요한 동기의 하나가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근혜도 10·26 사태 이틀 전이던 10월 24일 박정희를 찾아가 최태민 문제를 제기하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의 동시 경질을 요구했다. --- p. 101

전두환은 이후 허화평과 이학봉 등에게 최태민 비리 의혹을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탁명환에 따르면 최태민은 약 1개월간 도 모 검사의 지휘 아래 수사를 받았다. 수사 장소는 서울 신촌의 S 호텔과 청계천 7가의 S 호텔. 수십 명의 수사진들이 동원된 조사에서 엄청난 비리들이 속속 드러났다. 수사팀은 외곽수사를 끝나고 증거까지 확보한 뒤 마지막으로 최태민을 불러 조사했다. 그런데 최태민은 비리에 모두 박근혜가 개입됐다고 진술했다. 최태민은 돈 문제에 대해 “전부 박근혜 양이 아는 일”이라고 잡아뗐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근혜 양이 개입된 것”이라고 진술했다. 수사 결과 행방이 밝혀지지 않은 돈 15억여 원에 대해서도 “예금통장도 근혜 양이 가지고 있다”고 진술했다. 수사팀은 이에 대통령 자녀에 대한 예우 등을 감안해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못했다고 한다. --- p. 106쪽

최태민은 1980년 하반기에 군부대 내 구금 상태에서 해방됐다. 11월에는 자신과 박근혜가 주도했던 새마음봉사단이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것을 눈 뜨고 바라봐야 했다. 최태민은 이때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자신이 강원도 인제의 군부대에 유폐된 것이나 새마음봉사단이 강제 해산된 것을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수모를 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 p. 112

최태민과 그 일가는 박근혜가 힘들고 외로울 때, 특히 배신감에 떨고 있을 1980년대 초반 빈번히 접촉하며 박근혜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박근혜는 2007년 6월 언론 인터뷰에서 박정희 사후 최태민이 도와준 것을 거론하며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어렵고 힘들 때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도와주고 위로해주셨다. 저에게 고마운 분”이라고 평가했다. 최태민은 그에게 어렵고 힘들 때 도와주고 위로해준 ‘고마운 분’이었다. --- p. 121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수록된 2007년 7월 20일 자 문서에 따르면 윌리엄 스탠턴 당시 주한 미국 부대사는 문서 「한국 대선: 여전한 소용돌이 정치」에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박근혜에 대해 “경쟁자들이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부르는 최태민이라는 목사와의 35년 전 관계와 그가 육영수 서거 후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로 있던 시절 박근혜를 어떻게 지배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고 있다”고 적었다. 스탠턴 부대사는 그러면서 정치권 안팎에 퍼져 있는 루머를 전했다. “최태민이 인격 형성기에 박 후보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지배했고, 최태민의 자제들이 그 결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루머가 널리 퍼져 있다.” --- p. 127~128

최태민은 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장인 이상달(1939~2008)과도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상달이 최태민의 측근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최재석은 “(우병우의 장인) 이상달은 아버지(최태민) 살아생전 서울 역삼동 자택으로 거의 매주 한 번가량 가장 빈번하게 방문한 측근 중 한 사람”이라며 “아버지와 이상달을 따라 부친의 서울 역삼동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도 있다”고 기억했다. --- p. 131

최태민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1992년까지 거액의 자금을 모으려 했다. 이 시기에도 박근혜를 앞세워 돈을 모았다는 증언이 있다. 한 여성 기업인은 최태민이 1992년 또는 1993년쯤 여성 경영자와 회사 대표 부인 20여 명이 참석한 모임에서 박근혜를 앞세워 돈을 걷었다고 증언했다. …… 최태민과 최순실은 이 시기 박근혜의 일상을 완전히 장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박근혜의 서울 삼성동 집의 경비원 채용과 관리부터 옷 구입, 은행 업무까지 최순실 일가가 대신했다는 것이다. 최태민과 최순실은 박근혜의 일상을 장악함으로써 박근혜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간 반면, 박근혜는 이들을 대한 의존증이 더욱 커졌던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일가의 영향력을 위해 박근혜는 ‘공주’여야 했다. --- p. 181~182

정윤회가 최순실 일가에 합류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정윤회는 최순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는 ‘최태민의 딸’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까지 접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최순실은 정윤회를 통해 박근혜의 대외 활동에 더 많이 관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최순실은 나중에 정계로 뛰어드는 박근혜를 정윤회가 보좌하게 해 지속적으로 동선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 p. 184

최순실은 어떻게 박근혜와의 관계를 심화시키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우선 최순실은 아버지 최태민으로부터 비선이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이론과 방법을 배우고 익혔을 것으로 관측된다. 즉, 최태민을 보거나 함께 일하면서 박근혜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키우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최순실은 박근혜와 같은 여성으로서 남성이면 불가능할 의상이나 화장, 피부관리, 건강 등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주며 박근혜와의 관계를 심화시켰을 것으로 분석된다. --- p. 205

1996년 최순실과 정윤회 사이에 딸 정유라(개명 전 이름은 정유연)가 태어났다. 공식 서류에는 정유라가 최순실과 정윤회의 호적상 혼인신고(1995년 12월 26일) 이후 약 10개월 만인 1996년 10월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재미있는 것은 최순실 일가와 차병원 간 오랜 인연의 이면에 정유라의 출생이 자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즉, 정유라가 시험관 아기로 차병원에서 어렵게 출생하면서 최순실 일가와 차병원 간 오랜 인연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 p. 212

박근혜가 국회에 입성한 1998년 4·2 보궐선거는 사실상 최순실 일가의 힘으로 치러졌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 비선 세력은 박근혜의 비공식 선거자금을 지원하고 핵심 보좌진 역할을 하며 선거를 진두지휘했기 때문이다. 최순실 일가는 먼저 박근혜에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지원했다. 즉, 최순실의 주도로 최순실과 어머니 임선이, 자매 최순영, 최순득, 최순천이 각각 5000만 원씩 갹출해 모두 2억 5000만 원을 박근혜 캠프에 지원, 박근혜의 당선을 도왔다. --- p. 222

최순실은 재선 시절에도 박근혜의 의정 활동에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최순실이 임선이와 함께 박근혜의 많은 활동에 개입하고 나섰기에 안봉근과 정호성, 이재만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최순실이 국정을 좌지우지할 것을 예견했다. 최순실의 17년 운전기사 김 씨는 “그들은 ‘우리 의원님(박근혜)이 코드원(대통령을 의미)이 되면, (최 씨가)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기억했다. 문고리 인사들은 심지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최순실이 반드시 국정농단을 할 것이라며 임선이와 최순실이 사라져주기를 원했다고 한다. --- p. 251쪽

박근혜는 2013년 8월 5일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을 대신해 김기춘을 신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1974년 문세광 수사를 담당한 ‘고마운 은인’ 김기춘이 대통령 비서실 살림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김기춘은 청와대 우위의 수직적인 당청 관계를 주도하는 한편 청와대와 국정 운영 전반을 보수적으로 끌고 갔다. 그가 이 과정에서 최순실과 정윤회, 문고리 등 비선 세력의 파워를 실감하고 그들의 ‘지하경제의 양성화 창구’ 역할을 하며 생존을 모색했다는 분석도 있다. --- p. 352

박근혜는 비선 권력 최순실에게 상당히 의존적인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는 2013년 10월 28일 예정된 정홍원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 발표를 하루 앞둔 10월 27일 “빨리 정리해야 되는데 어떡하죠. 내일 발표할 건데”라고 말하며 불안해했다. 이에 정호성 비서관이 “선생님(최순실)과 상의했다”고 하니까 “예, 예”라면서 그제야 안심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최순실은 불안해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달리 대국민 담화나 수석비서관회의 발언 등을 정호성을 통해 과감하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 p. 356

여당 의원들은 정유라에 대해 “유망하고 전적이 뛰어”난데 사기를 꺾어놓으면 “장래를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힐난했다. ‘공주 승마’ 의혹 제기를 사과하라는 요구였다. 정유라를 두둔한 김희정 의원과 강은희 의원은 각각 2014년 7월과 2016년 1월 여성가족부 장관에 차례로 입각했다.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은 4월 14일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승마협회의 일부 관계자가 정치권 등을 통해 제기한 시·도 승마협회장 사퇴 압력과 특정 선수 특혜 논란은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며 정유라를 두둔했다. --- p. 371

박근혜는 평소 오전에 머리 손질을 한 것과 달리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당일에는 오후에 머리 손질을 받았다. 대통령 머리 손질 및 화장을 했던 미용사 정송주는 4월 16일 오후 3시 20분 서울 안국동 사거리에 도착해 이영선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갔다. 이영선 행정관으로부터 머리 손질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였다. 정송주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미용실을 운영하는 유명 미용사였다. 정송주가 청와대 관저 파우더룸에서 미용 도구를 펼치는 등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대통령이 급히 들어오면서 “오늘 빨리 좀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래서 평소 40분 정도 걸리던 대통령의 머리 손질과 화장이 그날은 20~25분 만에 끝났다고 정송주는 2017년 2월 18일 특별검사에게 진술했다. 정송주는 특검 조사에서 “거의 매일 오전 8시 정기적으로 청와대에 들어가서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했지만 2014년 4월 16일은 전날 ‘내일은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송주는 4월 16일 낮 12시쯤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해야 하니 급히 들어오라”며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정송주는 승용차로 1시간쯤 걸려 청와대에 도착, 대통령의 올림머리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월 15일 저녁부터 4월 16일 오전 10시까지 무엇을 했는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특별검사는 덧붙였다. --- p. 373쪽

박근혜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취재기자의 질문을 잊고 엉뚱한 답변을 해 구설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북한은 제재 조치가 가장 많이 가해진 국가인데 만일 또 추가 핵실험을 할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라는 미국 기자의 질문을 받고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국 진행자가 ‘대통령님’이라고 부르고 오바마 대통령이 급기야 “불쌍한 대통령이 질문조차 기억하지 못한다(The poor president doesn’t even remember what the other question was)”고 거들었다. 박근혜는 민망한 듯 웃다가 “아까 그, 아휴, 말씀을 오래 하셔 갖고, 허허, 질문이 그러니깐, 그, 저”라고 더듬다가 답변을 이어갔다. 박근혜는 1년 후에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무능의 일단을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았다. --- p. 374쪽

박근혜는 7월 25일 이재용 부회장과 독대에서 “내 임기 안에 경영권 승계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며 “지난번 얘기한 승마 관련 지원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도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한 것이냐. 삼성이 한화보다도 못하다”고 질책한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물산 합병을 도왔음에도 삼성이 정유라에 대한 지원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한 것이었다. 박근혜는 이 자리에서 최순실이 조카 장시호를 통해 만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삼성의 지원,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에 대한 출연을 요구하기도 했다. --- p. 457쪽

대통령은 10월 30일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대구·경북 출신인 김수남 대검 차장을 내정했다. 청와대 사정 라인인 우병우 민정수석과 이명재 민정특보도 인접한 경북 출신이었다. 여기에 임환수 국세청장과 ‘경제 검찰’로 불리는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도 대구 출신이라 사정 라인이 TK 출신으로 채워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강신명 경찰청장도 경남 출신이었다. 특히 김수남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우병우 민정수석과의 관계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권은 김 후보자를 포함해 사정 라인에 TK 만리장성을 쌓았다”며 “이들이 레임덕을 만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린 지역 편중 인사다. 만리장성으로도 진나라가 쇠락을 피하지 못했던 것처럼 TK 만리장성은 종이성”이라고 지적했다. 사정 라인의 지역 편중 문제를 지적한 이종걸의 예언은 1년 만에 비극적으로 실현된다. --- p. 463

박근혜가 이끄는 청와대는 최순실의 재단 연루 의혹이 불거진 이후 비선 실세 관련 부분을 인정하자는 건의가 나왔지만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즉, 2017년 1월 16일 헌재의 탄핵심판 5회 변론기일에 안종범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청와대 회의에서 “재단법인 미르와 재단법인 K스포츠 설립과 관련해 의혹이 많으니 비선 실세와 관련해 일부만 인정하자”고 건의를 했으나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종범은 “박 대통령이 이후 재단 모금은 재계가 함께 한 것이고 임원진 인사도 청와대는 추천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지시했다”며 대통령이 사건 은폐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 p. 512~513

오후 7시 3분,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가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송달되면서 헌법상 대통령 권한과 직무 행사가 정지됐다. 취임 1384일(3년 9개월여) 만이었다. 같은 시각,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되기 직전 최재경 민정수석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자로 조대환 변호사를 임명했다.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에서 새누리당 추천 부위원장을 지낸 조대환 변호사의 전력을 두고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를 대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 p. 556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자 집이나 사무실, 광장 등 전국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수많은 시민이 그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아무나 붙잡고 박근혜와 최순실, 최순실과 박근혜 시대의 종언을 노래했다. 하지만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도래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거짓과 허위가 무너진 자리에 무엇이 찾아올지는 누구도 아닌 시민들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2017년 3월 10일 그날, 민주공화국으로 갈 수 있는 의미 있는 한 발을 내디뎠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였다.
--- p.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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