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30일 밤, 그 IS가 파리에 동시다발 테러를 가해 프랑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학살을 일으켰다. …… 그 상징성에 먼저 주목한 이가 로마 교황 프란치스코다. 교황은 이 테러 공격을 “단편적인 제3차 세계대전의 일부다”라고 표현했다. 즉 이제까지 보아온 전쟁과는 이질적이며 반드시 조직화되지 않았다고 해도, 본질적으로는 세계대전으로 발전할 역사적 사건이자 현상이라는 것을 갈파했던 것이다. 감히 필자가 교황 프란치스코의 진의를 대담하게 추측하자면, 제2차 냉전과 포스트모던형 전쟁이 결합하는 위험한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논한 것은 아닐까? --- p.18
또한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의 총본산 이란은 안전보장 등 국익의 총체를 포함해 오랫동안 경합해왔고 이미 ‘냉전 상태’에 있었는데, 2016년 1월 단교하고 말았다. 게다가 그 뒤를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이 예멘의 이란 대사관을 공중폭격 했다고 이란 정부는 비난하고 있다. 만약 양국이 정면으로 부딪치게 된다면 국가 간 충돌에 머물지 않고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걸프만 지역을 무대로 수니파 대 시아파의 종파 전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될 경우 중동의 복합위기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문을 열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구미, 러시아, 중국도 휘말리게 되며, 호르무즈해협은 봉쇄되든지 자유항행이 크게 제한될 것이다.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에너지 공급과 금융·주식 시장 및 경기 동향을 직접 강타할 충격이 도래할 것이다. --- p.20
제2차 냉전의 격전화와 포스트모던형 전쟁의 복합위기가 중동에서 심화된 크나큰 원인은 오바마 외교의 한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바마는 걸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협과 외교’를 중동 정책의 근본으로 삼아왔다. 시리아에서 알아사드 대통령이 화학무기의 사용 등 ‘레드 라인red line’을 어기면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비극이 발생했지만 그의 국제 공약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 시점에 러시아는, 중국이나 이란과 마찬가지로 구미의 강경한 경고는 말뿐이며 전쟁이나 무력적 간섭에 호소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것으로 미국은 시리아 문제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 p.53
‘탈(脫)영토’ 혹은 ‘초(超)영토’적으로 폭력과 테러의 연장선상에서 행해지는 ‘전쟁’이나, 이제까지는 전쟁이라고 표현되지 않았던 ‘전쟁’을 현재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과 테러 자체가 상대를 굴복시키는 유일한 수단임을 확신하고, 광신적으로 ‘무슬림’을 자칭하는 개인 및 집단과, 구미 더 나아가 러시아의 국가와 사회를 둘러싼 가치관끼리의 대결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던형 전쟁은 국가 간의 전쟁이라는 전근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인식되어왔던 전쟁의 이미지와 내용을 대폭 다시 고쳐 쓰도록 하고 있다. --- p.80
포스트모던형 전쟁이 IS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IS는 오히려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현대 세계에서 자주 ‘파탄 국가’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이제까지 흔들림 없이 존재한다고 생각되어온 국가에 마약, 인신 매매 및 장기 매매 등에 손을 대고 있는 범죄 단체나, 이교도(異敎徒)라는 이유로 소녀의 성노예화를 합법화하는 IS와 같은 이슬람 테러리즘이 기생하고, 그 군사력에 압도당해 국가의 골격이 부패하는 흐름이 중동에서 아프리카에 걸쳐 포스트모던적 정치 현상이 되고 있다. 그보다 먼저 도달하게 되는 것은 국가의 해체다. 이제까지 우리들이 지구의(地球儀)를 보며 익혀왔던 영토와 영역, 그것을 획정하는 국경을 부정하면서 국가의 융해와 해체가 진전되고 있다는 데 심각함이 있다. --- p.83
IS를 비롯한 이슬람 테러리즘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은밀히 재정을 지원해왔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일부 세력은 국민들 사이에서도 뿌리 깊은 IS의 인기(일부 조사에서는 8%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도 국민에 의한 개인적 지원과 3500명으로 알려진 청년들이 시리아의 반알아사드 세력에 투신하는 것을 묵인해왔다. 한편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운동에 경계심을 품고 있는 터키에서는 IS를 일시적인 위협으로 간주하는 반면, 시리아의 쿠르드족 세력의 위험성이야말로 영속적인 성격을 띤다고 이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 p.164
중동으로부터 구미 지역으로 도망치는 형태의 난민 문제는 제1차 냉전 시기에는 보이지 않았던 국제정치의 핵심 사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중동으로부터 유럽으로 도망쳐온 300만 명의 사람들은 그때까지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표현과 정치 활동의 자유를 얻고 있다. 그 결과, 그들이 현재 비판하는 것은 원수인 IS가 아니라 그들을 받아들인 서구의 정부와 국민이라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그들에 대한 대우나 시민들이 보내는 ‘차별적’ 시선에 불만을 품는 것이 이슬람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일단 자유의 세계로 도망쳐서 자기주장의 권리를 수중에 넣은 젊은이들이IS 등 지하디스트들의 ‘악마의 속삭임’에 쉽게 사로잡힌다는 점이다. --- p.250
무엇보다 유럽은 무슬림 난민의 논리만이 우선되는 세계가 아니다. 유럽 고유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문명과 역사를 뒷받침하는 생활 규범과 가치관에 구애될 것이다. 그 결과, 선의와 인간애만으로 난민을 받아들이는 좋은 시대는 재검토로 내몰리게 된다. 이리하여 중동의 복합위기는 난민의 대량 유입과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러시아 및 터키 간의 적대 관계와 결부되면서 중동-유럽의 복합위기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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