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꿈을 꾸지 않는 잠에 빠져들 때면 의식은 사라진다. 저마다 가진 고유한 세상이-사람과 사물, 색깔과 소리, 쾌락과 고통, 생각과 느낌, 심지어 우리 자신마저-녹아 없어져 버린다. 우리가 깨어나거나 꿈을 꾸기 전까지.
의식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는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을까? 의식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어떻게 뇌 속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과학이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어쩌면, 의식은 과학이라는 이름의 장막 뒤에서만 머무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의식이란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객관적인 대상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의식은 주관적인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펼쳐질 내용은 의식이 무엇인지 탐구하기 위해 여정에 오르는 늙은 과학자, 갈릴레오의 이야기이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관찰자의 입장을 배재하여 과학이 객관화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로 관찰자를 다시 자연 속으로 돌려보내려는, 주관성을 과학의 일부로 만들려는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이 책에서 즐겨 사용될, 사고실험의 달인이었다는 이유가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 p.9-10
“(…) 대뇌 뒤쪽에 자리한 뉴런집단은 시각을 담당하고, 가운데에 늘어선 것은 청각을, 또 다른 것은 촉각, 후각, 미각을 담당하죠. 그리고 뇌의 앞쪽에 위치한 뉴런집단은 사고하는 일, 아니면 분노나 기쁨 같은 감정들을 다룬 답니다. 하지만 역할분담은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아요. 대뇌 뒤쪽의 뉴런집단 가운데 일부는 색상에 관심이 있어서 물체가 붉은색인지 노란색인지는 식은 죽 먹기로 구분해내지요. 허나 그게 사탕무인지 레몬인지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요. 실은 알 길이 없는 거죠. 반면에 다른 녀석들은 형태에만 관심을 보여요. 어떤 것은 각뿔 형태를 좋아하고, 또 다른 것은 구형을 좋아하겠지요. 하지만 빨강이나 노랑의 차이에 대해서는 모른답니다. 또 다른 녀석들은 움직이는 방식에만 신경을 쓴답니다. 형태나 색깔에는 무심한 채 말이죠. 예상하셨겠지만 그 녀석들 중 몇몇은 그저 수평 방향의 움직임만이 관심사이고, 다른 몇몇은 수직 방향의 움직임만을 챙기지요.”
--- p.48-49
갈릴레오는 생각했다. 뇌 속에는 2개의 거대한 도시가 있구나. 대뇌란 각양각색의 시민들이 서로 논쟁할 수 있고, 함께 결정내릴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소뇌란, 더 많은 이들이 살고는 있으나 모두 홀로 떨어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각자의 방 안에서 자신의 일에만 신경을 쓰는 곳이다. 거대하고 혼잡한 대도시, 생기 넘치는 민주주의인 대뇌에 의식이 깃드는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이리라. 그리고 소뇌는, 광대하지만 침묵하는 감옥이리라.
--- p.73
“보셨죠, 이 기계는 많은 이들을 쉽게 속일 수 있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창 뒤편에, 모든 걸 다 꿰뚫어보는 나이 많은 신부님이 계실 것이라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이건 그냥 죄목만을 찾아내고 나머지는 간과해버리는 기계 뭉치일 뿐이에요.”
소뇌처럼 말이지. 갈릴레오는 생각했다. 각각의 장치들은, 기계 속 각 모듈들은 맡은 일에 능숙하다. 자신의 영역 안에서 빠르고 훌륭하게 답을 찾아내지만, 맥락을 조망하지는 못한다.
(…)
갈릴레오는 다시금 M의 손을 잡았다. 맥박은 좀 더 빠르게 뛰었지만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는 살아 있다. 갈릴레오는 생각했다. 하지만 의식이 있을까, 아니면 코페르니쿠스와 마찬가지로 공허 속에 사라진 것일까?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의사들이라면 의식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 어떻게 할까? 몇 가지 질문을 던질 테고, 만약 환자가 매번 적절한 답을 내놓는다면 의식이 있다고 확신할테지. 만약 아무런 대답이 없다면, 환자로 하여금 움직이도록 지시하고서 이를 따르려는 징후가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혹은 위협하는 시늉을 취하고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할 것이고 만약 반응한다면, 아마도 그 속에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M은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살갗을 꼬집었지만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눈 깜빡임을 제외하고는.
(…)
갈릴레오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M은 증명하고 있었다. 완전히 마비되어 있으면서도 완벽히 의식적인 상태가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죽어가는 육신에 갇힌 죄수로 죽는다네.” M은 말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어. 움직일 수 없기에 고로 존재하지 않네.”
그렇게 그는 의식적이었다. 모든 게 너무나도 의식적이었다
(…)
우리가 잠들 때면 몸은 마비되지만 꿈속에서 의식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 친구는 악몽 속에서 마비되어 버렸다.
--- p.97-103
프릭은 돌아왔고, 갈릴레오는 그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는 남자의 어깨를 흔들었다
“제가 깨우기 직전 당신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말해주세요.”
갈릴레오는 소리치다시피 했다. 젊은 남자는 천천히 눈을 떴다.
“맘속에서는 아무것도 떠오른 게 없었소.”
남자는 진한 프랑스식 억양의 목소리로 졸린 듯 뒤늦게 대답했다.
“뭐하는 거요? 잠도 덜 깬 사람한테.”
“마음속에 떠오른 게 아무것도 없었나요?”
갈릴레오는 한 번 더 물었다.
“보았던 것, 들었던 것, 생각한 것이 전혀 없었나요?”
“없었다니깐.” 남자는 반복했다. “나는 깊이 잠들어 있었소. 깨우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수면을 방해하는 당신네는 대체 누구요?” 그는 중얼거리며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프릭은 갈릴레오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놀랍지 않나요? 당신은 막 무의식으로부터, 완전한 무無에서부터 솟아나온 한 사람을 목격했습니다.”
“뭐가 놀랍죠? 밤만 되면 모두가 겪는 일인데요. 필시 뇌가 휴식하기 위해 잠시 멈추는 통에 생기는 일이겠죠.”
“그게 바로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이 잠든 동안에도 뇌는 잠들지 않아요. 대뇌피질 속 300억 개의 뉴런들은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지런히 발화하고 있거든요.
--- p.157-158
갈릴레오는 다시 한 번 프랑스인에게 질문해 보기로 마음먹고 그를 깨우려 했다. 하지만 프릭은 그를 막아섰다. 반쯤 열린 눈꺼풀 사이로, 잠자는 남자의 눈동자는 왔다 갔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벌레를 쫓고 있는 듯 보였다. 그들은 한동안 남자를 관찰했다.
“이제 깨워보세요. 깜짝 놀라실 겁니다.”
갈릴레오는 남자를 다시 흔들어 깨웠다. 이번에는 그가 금세 일어나더니 말했다.
“이런, 깨달음을 주는 꿈을 깨우는 훼방꾼들! 내 두뇌는 뜨겁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소. 아주 값진 꿈을 꾸고 있었단 말이요. 그런데 당신네들은 채 뭔가 얻어내기도 전에 내 꿈을 산산조각 내버렸소.
--- p.160-161
어쩌면 포토다이오드와 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이것일지도 모른다. 매순간 갈릴레오는 선명한 경험을 했다. 온통 어둠뿐이었을 때처럼 가장 간단한 경험에서조차도 뇌는 단지 둘 중 하나의 가능성만 구분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빛과 어둠만을 구분한 것이 아니었다(비록 앨튜리는 그런 식으로 갈릴레오를 실험했지만). 그렇다. 뇌와 그 복잡한 기전은 어둠으로부터 다른 수많은 상황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양한 경험을 초래할 상황들을 분간해내고 있었다. 왜냐하면 갈릴레오에게 있어 어둠이란 그저 빛과 구분되는 상황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어둠은 붉은빛이나 푸른빛 혹은 그 어떤 무지개 빛깔과도 달랐으며, 어떤 얼굴, 장소, 소리나 냄새, 맛, 어떤 느낌이나 생각, 혹은 이들의 어떠한 조합과도 구별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포토다이오드에 있어서 어둠의 의미는 훨씬 작았다. 기계의 간단한 기전으로는 어둠이 어떤 색깔이 아님을, 어떤 얼굴이나 장소, 소리나 냄새, 맛, 느낌, 생각이 아님을 알 길이 없었다. 포토다이오드에게 있어서 어둠은 어둠이 아니라, 단지 둘 중 하나일 뿐이었다. 포토다이오드에게는 전 우주가 단순히 이것 또는 저것일 뿐이었다. 진실로 포토다이오드와 갈릴레오 간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정보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 p.207-208
“(…) 각각의 뉴런, 각각의 소소한 메커니즘, 녀석들은 자신만의 조그마한 왕국을 지배하고 있지요. 다른 가능성은 일축한 채, 자신이 맡은 조그마한 영역, 작은 개념만큼을 구체화시키지요. 하지만 그밖에 나머지 일은 아무것도 알지 못해요. 외부에서 관찰했을 때, 우리는 시야 한가운데의 빛을 구별해내는 데 필요한 메커니즘, 혹은 왼쪽에 위치한 빛을 구별하는 데 필요한 또 다른 메커니즘, 푸른색을 위한 메커니즘, 붉은색을 위한 메커니즘, 원형을 위한 것과 네모꼴을 위한 메커니즘 따위를 발견해낼지도 모르지요. 코를 위한 것, 입술을 위한 것, 얼굴을 구별하기 위한 것, 어쩌면 그녀를 구별하기 위한 메커니즘도 있겠지요. 그녀가 누구이든지 간에요. 하지만 이 미미한 메커니즘들, 이 녀석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녀석들 각각에게 있어, 그건 단지 ‘이것 혹은 이것이 아닌 상태’에 불과하거든요. 녀석들이 느끼는 세상의 넓이는 1비트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이제 확실히 알겠어요. 하지만 의식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이들 메커니즘을 통한 작업이 합쳐져야만 해요. 녀석들은 동시에, 함께 어우러져, 자신에게 깃든 수많은 개념들을 구체화시켜야 하겠지요. ‘저 사람은 여자인데 시야의 한가운데에 있고 검은색 외투를 두르고서 내 영혼을 향해 눈길과 애정 가득한 미소를 보내고 있구나’ 하는 식으로요.”
--- p.293-294
갈릴레오는 자신 주변에다 거울을 맞추고, 퀄리아를 관찰했다. 거울 속에서, 정원은 그저 회색빛이 도는 엷은 증기, 증발하지도 숨결이 느껴지지도 않는 증기에 불과했다. (…) 그는 주위를 살폈고, 거울의 배율을 높이기 위해 다이얼을 돌렸다. 그러자 땅의 어두운 증기를 뚫고 또 다른 밝은 다이아몬드, 나방의 것보다도 더 휘황찬란한 다이아몬드가 솟아올랐다. 점차 더 밝아져, 웅장하고 거대한 크기를 드러낸 그것은 올빼미 속의 태양이었다.
“제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혜성이네요. 하찮은 올빼미조차도 아침 하늘 위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꽃을 머릿속에 짊어지고 있었군요. 아마 그 속은 레이스 장식보다도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겠지요!” 여인이 소리쳤다. “제가 본 혜성은 올빼미에 비하면 하찮은 존재였어요. 당신이 가진 거울로 비춰 본다면 텅 비어 있을 테니까요.” 여인은 등불을 끄더니 이제 수풀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쪽,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운 저쪽에는 다른 종류의 별과 성좌들로 가득할 겁니다. 만약 당신이 그 하나하나를 찬찬히 볼 수만 있다면, 은하계와 다를 바 없겠지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동물들이 내면의 빛을 켜고 있답니다.”
--- p.326-327
그러므로 의식은 뇌와 함께 태어나, 파릇파릇한 신경들의 연결과 동시에 자라나고, 퀄리아의 형상을 꽃피우는 골격을 위해 가지치기를 하고서는, 뇌와 더불어 늙어간다. 푸르렀던 수관이 시들어 뇌가 말라버릴 즈음이면 영혼도 곧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렇다. 의식이 물질로 환원될 수는 없다. 는 환원이 불가능한, 존재하는 가장 본질적인 것이며, 정말로 실재하는 유일한 것이다. 하지만 의식은 물질에 의존하는 바, 만일 뇌를 도려낸다면 영혼 역시 무너지리라.
--- p.347
“잠들어 있는 인간 배아 속 영혼의 크기는 자유를 맛본 비루한 늙은 당나귀보다도 작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초기 단계에서 배아가 가진 의식의 값은 어쩌면 파리보다도 작을지 모르겠습니다. 퀄리아의 형상들은 채 만들어지지 않은 육신보다도 더 불분명할 것이며, 인간이라 하기에는 더 거리가 멀 것입니다. 형체도 없이, 구분되지도 분화되지도 않은 한 덩어리로, 시각, 청각 그리고 후각의 형상을 갖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증 역시 거의, 아니면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며, 감각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자아란 없겠지요. 언제쯤 배아에게 적당한 영혼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단지 1초라도 살아 있기만 하면 될까요? 아니면 울거나 걷고 말하고 생각하거나 질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기억을 떠올리거나, 어째서 어느 날 태어났는지 질문하고, 또 그것이 좋은 일이었는지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그럴까요? 아주 희미한 감각이라도 느낌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영혼을 가졌다고 추론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의식의 빛이 언제쯤 자라나 두뇌의 대성당 속으로 들어오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은밀하게,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하게, 건물터의 으슥한 구석에 켜놓은 어느 촛불처럼 입장할까요? 탄생의 세례가 있기 훨씬 전부터? 그 후 뇌 속에 존재하는 방방마다 찬찬히 빛을 밝혀 드넓은 회당 전체가 환해지기까지 입장은 계속되는 걸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관통하는 불빛은 생명과 동시에 켜지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의식과 더불어 타오르는 것이죠.”
--- p.409-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