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입학처장 일을 처음 맡게 되었을 때, 필자는 기존의 입시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KAIST에 지원하는 학생 대부분이 서울대 또는 주요 의과대학에 동시에 지원하고 합격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자연스레 ‘이러한 입시 경쟁 속에서 어떻게 하면 KAIST가 우수한 학생들을 더 많이 선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입시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시 전략에 몰두하던 어느 날, 필자는 스스로 그동안 손가락질해왔던 입시 관계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 프롤로그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은 대부분 철이 들고, 엄마와 학원의 영향력은 이제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며, 생각하는 시간을 충분히 주는 대학 교육의 특성상 지능도 그렇게 중요한 요인은 못 되는 것 같다. 대학에서 성공하는 요인은 꿈과 즐거움이다. 즉, ‘전공 적합성’이다. 대학 교육은 자신이 사회에 나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을 배우는 전공 또는 직업 교육이 핵심이다. --- p.24
과거에는 KAIST 신입생 가운데 일반고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25% 정도였으나 2017년 입학생의 경우 30%이며, 신입생의 다양성과 대학 진학 후 학업성취도를 고려할 때 당분간 30~35%가 되리라고 전망한다. 융합적 사고와 인문사회적 소양이 중요시되는 사회 변화에서 ‘다양성’은 KAIST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방향 가운데 하나다. 일반고의 경우 수학, 과학의 이수시간이 적고 선행학습과 심화 수업이 덜 이루어져 대부분 학생들이 1학년 때 학습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좋은 학점을 받기도 힘들다. 하지만 2학년 이후 전공에 들어가면 대부분 빠른 속도로 격차를 줄이거나 오히려 역전하는 경우가 많다. --- p.29
교사들의 기대와 달리 학부모들의 우려는 다른 곳에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이 좋고 안 좋고 하는 문제를 떠나 과연 이 제도가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학생을 직접 선발하는 입학사정관 처지에서 보면, 학생부종합전형은 앞으로도 지속될 개연성이 높다. 사실 학생부종합전형은 시작부터 KAIST가 깊게 관여되어 있는 입시정책이다. 2016년 현재, KAIST를 포함한 전국 197개 4년제 대학의 입학생 선발과정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을 실시한다. 대학이 왜 이런 입시제도를 채택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 p.80
몇 년 전 경기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KAIST 입학설명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 보통 설명회 시작 전 학교 선생님들과 대화를 하는데, 특별하게 진학부장 선생님이 자료를 준비했다며 필자에게 그 안에는 전년도 KAIST에 지원한 20여 명의 이름이 내신성적 순으로 나열되어 있고 KAIST 합격/불합격 여부 등 다양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우리 학교 1등 학생이 떨어지고 2등, 4등이 학생들이 합격한 이유가 뭐죠?” 1등 학생의 인성이나 사회성에 문제가 있었다면 질문 자체를 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우리가 학생을 잘못 선발한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 끝에 선생님에게 다시 질문했다. “혹시 그 학생이 의대에 진학하지 않았나요?” 선생님의 답은 “네”였다. “그래서 KAIST는 그 학생을 뽑지 않았을 것입니다. KAIST에는 의과대학이 없기 때문에 의대 진학을 준비한 학생보다는 과학기술 분야, 즉 자연과학이나 공학에 열정이 있는 학생들이 KAIST 인재상에 더 부합합니다.” -2장, 87
학생부종합전형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 초기에는 소논문·경시대회·공모전 등 비교과 활동의 거대화로 수상실적이 화려한 학생, 스펙이 남다른 학생, 문화자본이 좋은 학생을 뽑는다고 알려져 오히려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을 조성한다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학생부종합전형을 도입하면서 철저하게 학생부를 중심으로 평가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교육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p.117
“KAIST는 문제아를 원합니다. 세상에 없던 문제를 새롭게 만들어 개척할 수 있는 문제아.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당장 KAIST에서 학점 4.0을 받는 학생보다는 학점이 조금 낮더라도 자신만의 생각을 키워낼 잠재력 있는 학생을 원하죠. 하지만 서류만으로 잠재력 있는 학생을 알아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변 도움으로 꾸준한 성적을 낸 석준이는 분명히 KAIST에서 학점을 4.0 받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자신만의 문제를 개척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제껏 그렇게 살아보지 못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수정이는 다릅니다. 스스로 개척하며 인생을 살아본 경험은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한 아이들이 새로운 문제를 개척하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 p.119
KAIST에 입학한 새내기들은 이렇게 새내기과정학부의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생각의 전환기로 1년(無학과)을 보내고 2학년 때 학과를 선택한다. 이는 새내기들이 대학생활을 즐겁게 하며 다양하게 경험한 후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학과를 스스로 찾아가라는 최소한의 배려다. --- p.117
KAIST 학생들이 졸업 후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진로는 대학원 진학이다. 2015년에 대학원으로 진학한 학생(전체의 70%가량) 중 대부분은 KAIST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그 이유는 KAIST 대학원이 학생들에게 항상 열려 있는 개방성에서 찾을 수 있다. 특정 분야에 관심과 열정이 있는 학생들이라면 교수들은 누구에게나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주고, 대학원생들은 선배이자 멘토로서 학생들을 지도한다. 미리 이러한 경험을 했던 학부생들이 자신이 했던 연구를 잘 알고 있는 KAIST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 p.281
다음은 200만 학부모가 사용하는 국내 최대 모바일 알림장 ‘아이엠스쿨’을 개발해 운영 중인 정인모 학생의 글이다. 학부생인데도 졸업 이후 인생을 다루는 이번 장에 이 글을 싣는 이유는 많은 학생이 졸업 후라도 괜찮으니 마음껏 KAIST 캠퍼스를 이용하며 창업에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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