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니스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는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번역서로는 클로드 프레드릭 바스티아의 《국가는 거대한 허구다》, 가브리엘 타르드의 《모방의 법칙》, 《여론과 군중》,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빵의 쟁취》, 막스 베버의 《도교와 유교》, 《직업으로서의 정치》, 칼 뢰비트의 《베버와 마르크스》, 로제 카이와의 《놀이와 인간》,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 세르주 모스코비치의 《군중의 시대》, 피터 L. 버거의 《사회학에의 초대》, 그랜트 매크래켄의 《문화와 소비》 등이 있다.
오늘날 진실로 결정적이며 가치 있는 업적은 항상 전문적인 업적입니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가죽 눈가리개를 일단 끼고서 이 친필 원고의 이 구절에 대해서 이러한, 바로 이러한 판독(判讀)을 올바르게 하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 능력이 없는 사람은 누구나 학문을 멀리하십시오. 그런 사람은 사람들이 학문의 ‘체험(Erlebnis)’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결코 자기 내부에서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p.23
학문은 오늘날에는 자각과 사실관계의 인식에 이바지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행해지는 ‘직업’이지 구원재와 계시를 주는 예견자나 예언자로부터 받는 은총의 선물이 아니며 또는 세계의 의미에 대한 현인과 철학자의 성찰의 일부분도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역사적 상황의 불가피한 소여인데,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충실한 한에서는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 p.67
합리화와 주지주의화, 특히 세계의 탈주술화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 시대의 운명은 바로 궁극적이며 가장 숭고한 가치들이 공공(公共)의 무대에서 물러나서 신비적인 생활의 초월적인 왕국 속으로 들어갔거나, 아니면 개인들 서로 간의 직접적인 관계의 형제애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시대]의 최고예술은 [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결코 기념비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은 우연이 아닙니다. 또한 전에는 예언자의 성령으로서 격렬한 열정으로 커다란 공동체들을 휩쓸면서 그들을 결합시킨 것에 해당되는 것이 오늘날에는 다만 개인 간의 가장 작은 공동체 내부에서만 가장 약하게(impianissimo) 고동치고 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 p.74
위대한 국민은 수천 년에 걸친 영광스러운 역사를 짊어지고 있다고 해서 그 무게 때문에 노쇠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자기 자신과 자신에게 부여된 위대한 본능을 신봉한다고 고백할 능력과 용기를 갖고 있다면, 그리고 그들의 지도층이 차갑고 맑은 대기 속에 솟아올라서 독일 정치의 사려 깊은 활동을 번성시키고 또 이 활동이 가장 진지하면서도 영광스러운 국민감정에 의해 고취된다면, 그 위대한 국민은 여전히 젊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