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자신은 정통 힌두교의 맥락에서 카운터컬처주의자였다. 그는 힌두교의 고행자(왕위를 포기한 방랑하는 거지)였다. 그가 환상 속에서 깨닫는 경험을 겪은 것은 달콤한 것을 먹음으로써 자신이 속했던 숲의 요가 수행자 분파의 극단적인 금욕을 깨뜨린 직후였다. 나무 아래 앉은 싯다르타는 자연적인 “변화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는 인류의 끝없는 괴로움과 분투를 보고 이해했지만, 이 의식 상태는 그 자신의 개인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중생의 비참함에 대해서도 평화롭고 비애착적인 측은한 마음을 갖게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고 존재하는 이 새로운 방식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힌두교의 복잡한 체계와 신화를 포기했다.
▷수피는 도취를 추구한다. 즉, 그들은 고양이라는 관점에서 사랑과 신 안에서 자아를 잃어버리는 경험을 체계화한다. 대부분의 수피들은 자연스러운 열광 상태를 목표로 하지만, 역사적으로 소수의 수피 그룹들은 정신적인 수행의 일부로 포도주, 해시시, 마리화나, 또는 심지어 커피에도 문자 그대로 중독되었다.
▷식별력이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이라면 많은 록 음악에서 여전히 중세 프로방스의 음유 시인의 노래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사례를 인용하자면 거의 끝이 없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1960년대 중반 롤링 스톤스의 히트곡 「레이디 제인」이다. “나는 당신의 하인, 그렇게 초라하게 남아 있을 거야./ 레이디 제인에게 맹세해.”
▷초월론자들은 지속되는 분주함이 영혼을 오그라들게 하고 마음을 닫는다고 믿었다. 시간은 묵상, 독서, 자연 감상,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친밀한 생각을 나누면서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 소로는 시초부터 게으름뱅이의 왕이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는 대학 졸업식에서 대표로 연설하는 영광을 누리도록 선택되었다. 소로는 그 기회를 이용해서 성서의 명령을 거꾸로 뒤집어서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고 나머지 엿새는 쉬어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새로운 것의 추구를 예술에서 중요한 요소로 확립한 이외에도 19세기의 프랑스 예술가들은 가난하고 쾌활한 소굴, 정신적 자극, 마약과 알코올을 통한 왜곡, (종종 당시 쉽게 이용할 수 있었던 매음굴에서의) 자유로운 성적 즐거움의 추구, 그리고 개인적, 정치적으로 불복종하는 경향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자유분방한 카페를 발전시켰다.
▷다다이즘의 양상은 급진적인 도교의 성난 유럽식 버전을 연상시킨다. 도교에서는 집착, 구별, 제약, 그리고 논리적인 마음을 농담과 수수께끼, 그리고 명상 수련으로 부드럽게 희롱했다. 다다이즘에서는 심리적 방어벽 너머의 까다로운 유럽인들에게 조바심을 내며 문화의 화염병을 투척했다. 문명화된 사고에 대한 이 전쟁에서 다다이스트들의 무기는 허무주의적인 시, 희롱, 부조리극, 욕설, 무엇보다도 조금 지나치게 거드름을 피우고 자만심이 강하다고 여겨졌던 파리의 예술 이벤트를 공격적으로 침범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피카소는 “명예의 전장에서 전사한 늙은 병사”라고 ―즉, 한때는 급진적이었지만 이제는 독창성이 없어졌다고― 비난 받았다.
▷앙토냉 아르토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어떤 초현실주의 논의도 완전할 수 없을 것이다. 아르토는 초현실주의 초기에 그룹에 가담했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이고 배우였으며 마법과 오컬트를 배우는 학생이었던 아르토는 아마도 20세기에서 가장 뻔뻔스러운 아편의 옹호자가 되었고, 자신의 환각제 경험을 서정적으로 썼다.
▷《율리시스》가 출판되자 조이스는 지치지 않고 흥행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매일같이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에 나가 실비아와 그녀의 조수에게 더욱 많은 비평들을 발송하게 했고, 친한 작가들에게 전화를 걸어 서구 전체의 매체에 비평과 추천을 전하게 했다. (……) 한 비평가는 그를 “신경 발작을 일으킨 후의 라블레”라고 불렀고, 다른 이는 “한창때가 지나 쇠퇴한 졸라”라고 불렀다. 게다가 “악마의 제자”라고 불렀던 비평가도 있었다. 심지어 버지니아 울프조차 조이스는 “여드름을 긁적거리는 역겨운 신출내기”라며 코웃음을 쳤다. 그와 실비아와 위버는 런던 최고의 타블로이드 신문에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스캔들을 일으키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1면에 실렸을 때 특히 기뻐했다. 그 기사는 조이스를 “정신이 이상한 미치광이”이라고 불렀다. 비치는 그 기사를 사무실 책상 뒤의 벽에 붙여 두었다.
▷앞선 프랑스의 입체파처럼 이 미국인들도 밤낮으로 카페와 바를 전전하며 먹고, 마시고, 시시덕거리고, 섹스하고, 철학을 이야기했다. 이런 쾌락적인 삶의 방식이 유럽인들에게는 자연스러웠을지 모르겠지만, 대서양 건너 젊은 민주주의 국가의 남녀가 ?동에 옮겼을 때에는 웬일인지 절망적인 분위기를 띠었다. 스타인은 새로운 미국 친구들에게 “로스트 제너레이션”라는 이름을 붙였고, 헤밍웨이는 나중에 미국 이주자들의 세계를 일종의 “자포자기적인 쾌활”이라고 묘사했다.
▷정치적 카운터컬처 내의 분열은 남자들이 재수 없는 놈들이라는 것을 여자 운동가들이 깨달으면서 크게 증폭되었다. 1960년대 내내 신좌파에 속한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등 시민 취급을 받아 정책 결정 토론에서 배제되었고, 남자들이 매력적이고 마초적인 대중적 태도를 취하는 동안, 커피를 만들고 팸플릿을 등사하는 등 허드렛일을 했다. (……) 1969년 여자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히피 급진주의자들이 “인간”에 대해 사용한 전술을 급진적 여자들이 그대로 도입했다. 운동 사무실과 「랫」 같은 지하신문들을 점거했고, 남자 발행인들과 편집자들을 “돼지들”이라고 선언했다. (……) 운동에 참가했던 여자들이 갑작스럽게 남자들과의 관계, 심지어는 결혼까지도 종지부를 찍고 여자만의 세계에서 살기 위해 노력했다. 일부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모든 남자의 성이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적 강간―침입 도구인 페니스가 여자의 몸을 침공해서 임신을 통해 식민지화하는―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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