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치의 뿌리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 정권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는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이끈 두 축이었다. 나는 우리 보수 정치의 뿌리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정부에 있다고 믿는다.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위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던 최초의 문민정부에서 우리 보수 정치는 출발한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개혁의 속도에 있다. 개혁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점진적인 변화를 통한 사회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보수이지, 변화를 외면하고 개혁하지 않으며 고여 있는 썩은 물이 되겠다는 것이 보수는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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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랬기에 나로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일하고, 보수 정당에서 정치 입문을 한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대학생, 김영삼 정부의 참모, 보수 정당의 국회의원, 당 대표. 이 이름들은 민주주의라는 원칙하에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했던 나의 정치 인생에서 만난 직함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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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보수는 그동안 국민이 보수를 지지하는 기반이 되어 주었던 경제 성장과 안보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이후에도 고도 성장기의 담론에 매달리면서 복지 확충, 재벌 개혁 등 경제민주화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환경이 바뀌었는데, 정책 방향을 바꾸자는 얘기를 하면 좌파로 매도했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는데도 산업화 시대의 논리를 고집했다. 양극화로 사회의 안정성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고 시장 경제의 원칙을 확보하는 데에는 무관심했다.
--- p.21
결국 보수와 진보라는 양대 정치 이념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균형을 잡아 가는 것이 올바른 정치의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진보만으로는, 보수만으로는 국민의 의사가 왜곡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보수 정치 궤멸의 시대를 넘어 진짜 보수, 개혁 보수가 필요한 이유다.
--- p.32-33
30년 전, 87년 체제를 위해 투쟁했던 대학생 정병국은 지금 5선의 국회의원이 되어 있다. 그리고 87년 체제가 수명이 다했음을 주장하고 있다. 내가 쟁취해서 만들어 낸 체제를 내가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30년 전 군부 독재하의 한국 사회와 세 번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 낸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분명히 다르다. 두 번의 정권 교체를 민주주의 공고화의 지표로 제시했던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에 따르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미 단단해졌다. 이제는 공고화를 넘어 심화의 단계로 진입해야 할 때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권력의 분산과 견제, 시민권의 회복이 우리의 남은 과제다.
--- p.63
안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한 삶을 위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사회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안보 정책의 핵심 목표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지하고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가 체제를 수호하는 일이다.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고, 국가의 존재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 정치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군의 대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 주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진보 세력을 공격하고 친북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해 안보를 논해야 하는 것이다. 안보는 공허한 이념 논쟁거리가 아니다. 안보는 민생이다.
--- p.82-83
불안한 미래에 목표도, 꿈도 없는 청년들은 어른들이,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을 향해 달려간다. 30만 명이 넘는 공시생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합격자는 3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 97퍼센트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어차피 합격자의 수는 정해져 있고, 탈락자는 나올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는 가능성이 낮은 좁은 문으로 청년들을 밀어 넣고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 안 됐다는 자괴감만 심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 p.107-108
보수는 움직여야 한다. 듣는 것에서 소통이 시작되고, 소통에서 감동의 정치가 시작된다. 여의도 정치를 넘어서, 발로 뛰며 국민과 만나는 현장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지시를 내리는 정치의 시대는 끝났다.
--- p.134
혹자는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느 쪽이 집권을 해도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그렇다. 나는 그런 미래를 꿈꾸고 있다. 어느 정당이 집권을 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고 나라가 뒤집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집권 세력이 바뀌더라도 건강한 견제의 시스템이 유지된다면, 사회의 안정과 균형은 담보될 것이다. 그것이 곧 협치의 정치다.
--- p.148
변화를 부르짖는 정치인들은 보수 정당의 일부에 불과했다. 나를 포함해 ‘소장파’로 불린 젊은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젊은 층과 소통하고 변화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변화의 몸부림은 이회창 총재, 박근혜 대표 같은 유력 정치인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액세서리로 활용되는 데 그쳤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득권 유지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변화의 움직임이 보수 정당 전반으로 퍼져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보수는 기득권, 부패, 무능 세력의 동의어가 되고 말았다.
--- p.154
분명한 것은 바른정당의 현재는 우리 한국 정치의 미래라는 것이다. 미래의 정치는 소통과 공감, 협력으로 이뤄질 것이다. 그것을 확신하기에, 나는 바른정당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당장 내년 선거에서 승리하고, 다음 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새로운 정치 실험이 몇 년 만에 국민의 마음을 파고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내하고 극복할 것이다. 참고 이겨 내지 않으면, 대한민국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
--- p.173
개혁 보수는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선언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당연시해 왔던 관행을 다시 살펴보고 개선안을 내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변화의 진정성이 국민의 마음에 닿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행동해야 한다.
--- p.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