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이 퍼지면서 수수하거나 투박한 시골말이 차츰 밀려났고, 온갖 한자말이 불거졌어요. 학교를 드나드는 문 둘레는 “학교 어귀”이고, 아파트가 늘어선 커다란 마을(단지) 앞에 있는 상가는 “아파트 어귀”인데, ‘어귀’라는 말로 이러한 자리를 가리키는 사람은 요새 거의 없어요. 다들 그냥 “학교 앞”이나 “아파트 단지 입구(入口)”라고만 해요.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싱그러이 드나들면서 오붓하고 포근한 집을 가리켜 ‘보금자리’라고도 하는데, 보금자리는 새가 엮은 집을 가리키는 이름이랍니다. 들새나 멧새나 숲새나 물새가 오붓하게 지내는 자리처럼 사람도 삶자리를 오순도순 가꾸려는 마음으로 보금자리라는 이름을 새한테서 빌렸다고 할 만해요.
‘쉼터’는 “쉬는 곳”을 가리켜요. 배우는 곳은 ‘배움터’이고, 살림을 하는 곳은 ‘살림터’예요. 책이 있는 곳은 ‘책터’이고, 일하는 곳은 ‘일터’이지요. 버스가 서는 곳이라면 ‘버스터’가 될 테고, 기차가 서는 곳이라면 ‘기차터’가 되겠지요. 놀이를 즐기는 곳은 ‘놀이터’예요. 자동차나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쉬기도 하지요? 이때에는 ‘고속도로 쉼터’에 머물면서 쉬어요.
햄버거나 피자를 파는 곳은 ‘패스트푸드’라고 해서 말만 하고 돈만 내면 몇 분이 안 걸려서 먹을거리가 척척 나와요. 영어인 ‘패스트푸드’는 한국말로는 ‘빠른밥’이에요. 그래서 이런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자는 뜻으로 ‘느린밥’을 찾는 물결이 일어요. 느리게 밥을 짓고, 느리게 밥을 먹으면서, 느리게 살림을 짓자는 물결이에요.
기차를 타는 곳은 ‘기차역·역’이라 하고, 배를 타는 곳은 ‘항구’라 하며, 버스를 타는 곳은 ‘터미널’이라고 해요. ‘정류소·정류장’이라는 말도 써요. 택시를 타는 곳에는 ‘택시타는곳’이란 이름이 흔히 붙습니다. 우리는 ‘정류소·정류장·승강장’을 ‘타는곳’으로 고쳐서 쓸 수 있어요. 기차를 타는 곳이라면 ‘기차타는곳’이면서 ‘기차터’라 할 만하고, 버스를 타는 곳이라면 ‘버스타는곳’이나 ‘버스터’라 할 만하지요. 배를 타는 곳은 예부터 ‘나루터’라 했어요. 비행기를 타는 ‘공항’에는 어떤 이름을 붙일 만할까요? 한번 슬기롭게 생각해 보셔요.
아직 힘이 여린 동무가 있으면 슬그머니 어느 자리에든 끼워서 함께 놀아요. 아직 여린 동무이니 굳이 술래를 시키지 않아요. 함께 있기만 해도 즐거워요. 함께 있기에 참으로 신나요. 어느 쪽에든 마음대로 드나들며 어우러지는 놀이동무를 두고 ‘깍두기’라고 하지요. 닭싸움을 하든 씨름을 하든, 깨끔발로 콩콩 뛰어다니든, 흙바닥에 오징어를 그리고 달리든, 또 흙바닥에서 조약돌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놀든, 깍두기 자리에 있는 아이는 같이 어울리면서 활짝 웃습니다.
자동차는 아직 기름을 넣어서 달려요. 앞으로는 기름이 아닌 햇볕이나 전기로 달리는 자동차가 나올 테니, 그때는 ‘햇볕차’나 ‘전기차’라는 새 이름이 태어나겠지요. 그리고 크기로 따져서 ‘큰차·작은차’가 있어요. 사람을 아늑하게 태우는 ‘사람차(승용차)’하고, 짐을 넉넉히 싣는 ‘짐차(화물차)’가 있고요.
곳곳에서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살림을 지으면서 즐겁게 삶터를 가꿉니다. 나라마다 나라말이 있고, 고장마다 고장말이 있으며, 마을마다 마을말이 있고, 집마다 집말이 있어요. 곳마다 말이 달라요. ‘곳말’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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