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인간이란 순수한 영혼에 몸이라는 물질이 덧입혀진 시간과 공간의 틀 안에 구속되어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시간과 공간의 구속을 피할 수 없는 몸은 영혼을 가두는 감옥인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곳은 시간과 공간으로 짜여 있으며 생성과 소멸, 변화와 운동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존재가 있을 수 없다. 즉 순수한 형상이 버틸 수 없는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세계라 할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그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본질적인 영혼을 추구한 것이다. 그는 몸을 입고 있는 영혼을 몸의 간섭으로부터 철저히 분리시켜 오로지 순수한 영혼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인간의 심리가 아니라 인간 영혼의 신비, 즉 인간의 순수한 형상, 참모습, 즉 이데아의 신비를 풀고 싶어졌다. 그가 말하는 영혼은 인간의 감정, 사상, 행동, 삶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행동을 작용하게 만든 무형의 실체를 뜻한다. (??????.) 도스토옙스키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대답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비합리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의 중편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인간에 대한 문학적·철학적·과학적·심리적 성찰을 다룬 작품으로 인간 이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소설 분야에서 패러다임을 변환시키며 문학혁명을 시도한 자가 바로 도스토옙스키이다. 그는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지하인을 등장시켜 미래의 새로운 인간을 예고했다.
--- p.15~16
도스토옙스키는 사형 직전에 감형되어 유형생활을 하게 된다. 사형선고와 유형생활은 도스토옙스키의 삶과 사상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참고경험’이라 할 수 있다. ‘참고경험(reference experience)’이란 한 인간의 ‘생각을 변하도록 하는 결정적인 사건’을 말한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은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새롭게 깨달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 그의 생각과 행동 전부가 달라진다. 유형을 마친 후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세계는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유형 전에는 가난한 사람들, 즉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에 대한 작품을 주로 썼던 반면, 후에는 부르주아(유산계급)의 범죄에 대한 작품을 주로 쓰게 된다.
--- p.18
도스토옙스키는 텍스트에서 특정 개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패턴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가 사용하는 독자적인 표현 방식은 패턴 지식(Pattern Knowledge)의 활용이다. 그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패턴 인식이 필요하다. 패턴 인식이란, 개념이나 사태가 주어졌을 때, 그러한 개념과 사태를 결과론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특정 규칙을 지각하고, 그것을 개념과 사태의 본성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그는 『지하로부터의 수기』 제1부에서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기 위해 패턴 인식을 사용했다.
--- p.38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누군가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하고,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모순어법적 인간들이다. 지하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는 모순된 존재이자 분열된 감정의 소유자이다. 그의 고백은 역설적인 사고, 즉 모순어법적 사고의 강력한 힘으로 나타난다. 그는 고통의 기쁨을, 사랑의 증오를,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웃사람들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한다.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자존심이 없는 인물이다. 그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쾌감을 찾기도 한다.
--- p.42
다니엘 페나크의 말에 따르면 “모든 독서는 저마다 무언가에 대한 저항 행위”라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책읽기와 글쓰기는 ‘즐거운 저항’이었다. 글쓰기가 반드시 책읽기를 바탕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글을 읽다보면 자연적으로 글쓰기의 욕망이 일어난다. 글의 내용 역시 읽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이지만,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제1부는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저항이다. 제2부의 제목은 ?진눈깨비에 관하여?로 시작된다. 작품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전 작가들을 회상하고, 읽은 텍스트의 내용이 모티프가 되어 테마로 이어지는 글쓰기의 단초를 마련한다.
--- p.87
도스토옙스키는 지하인을 통해 막연하고 추상적인 형제애 또는 인류애는 실제 현실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함을 역설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상적인 유토피아는 동등한 형제애를 기초로 세워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하인은 동창생들을 만나면서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형제애를 느끼게끔 해준 동창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날 대다수의 정치인과 종교인들은 입으로는 형제애를 강조하거나 이웃사랑을 외치지만, 실제 생활에서 정작 본인들은 서로 비방하면서 싸움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사실 막연한 형제애는 인간 본성의 추함과 악함에 대한 잘못된 상상에서 출발한다.
--- p.100
사람의 능력은 위기나 고난의 시기를 맞아 증폭된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고통 받는 사람들로 인하여 세상은 전진해 간다.”고 말했고, 도스토옙스키는 “눈에 눈물이 없으면 영혼의 무지개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들은 때로 고통을 수반한다. 사랑도 고통을 수반한다. 잠 못 이루며 목말라 하면서 열병을 앓아야 한다. 고통의 극단은 궁극의 열정이다. 믿음도 고통을 수반한다. 회의와 싸워야 하고 핍박을 당하고 결단을 해야 한다. 소망도 고통을 수반한다. 섬김도 고통을 수반한다. 이름 없이 겸손하고 낮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출발도 고통을 수반한다. 길들여진 곳을 떠나야 하고, 욕망을 끊어야 하며, 새로운 모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낙원은 존재한다. 그러나 낙원에 가기 위해서는 지옥을 거쳐야 한다. 고난의 불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횟수는 고통의 가치에 비례한다.
--- 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