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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 1

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 1

이재온 | 가하 | 2017년 07월 1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3 리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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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7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644g | 148*200*35mm
ISBN13 9791130019451
ISBN10 113001945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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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에엑!”

잔디를 입은 비스듬한 축대 한중간, 양이는 익룡처럼 울부짖었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바퀴벌레보다 더 징그러운 물체를 밟을 판이었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발바닥에 힘을 주었다. 한강 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두 팔을 세차게 파닥였다. 축대의 길게 누운 빗면을 스키 타듯 미끄러졌다.

“꺄아아악!”

양이는 드물게도 절망했다. 저기, ‘그것’들이 나뒹굴었다. 번뜩이는 돼지눈깔 수십 쌍이 양이를 노려보며 저 아래 산책로와 눈앞 경사로를 다글다글 굴렀다. 이제 몇 초 뒤, 양이는 이대로 미끄러지다 자빠져 온몸으로 돼지눈깔을 터트릴 운명이었다. 어쩌면 콘크리트 바닥에 이마부터 박아 구급차에 실려 갈지도 몰랐다. 돼지의 원혼과 수정체, 안구 액과 함께하는 실로 징그럽고도 흉측한 사망 방식이었다. 조금도 소녀스럽지 않았다.

‘안 돼! 죽을 땐 죽더라도 이렇게 추하게 죽을 순 없어! 돼지눈깔 위로 자빠져 죽다니!’

그러나 양이는 도저히 중심을 잡지 못했다. 멈출 재간도 없었다. 애초에 이렇게 가파른 빗면을 걸어 내려가려 들다니 무모했다. 흉포한 맞바람에 검은 머리칼을 망나니처럼 휘날리며 삵 만난 닭처럼 홰쳤다. 단 몇 초 만에 이십여 년 세월을 돌이켰다. 마지막 순간까지 소녀로서 존엄을 지키려 사력을 다해 파닥였다.

“저런.”

낮은 속삭임과 함께 양이는 긴 팔에 허리를 휘감겼다. 그 팔에 이끌려 빙글 돌았다. 낯선 품으로 떨어졌다.

“꽥.”

양이는 멱따는 소리를 내며 낯선 이의 가슴에 코를 박았다. 부딪는 감촉이 어찌나 단단한지 버텨 선 돌담 같았다. 코가 얼얼하고 머리가 띵했다. 그 감촉만으로도 낯선 이가 사내임을 알았으나 하릴없이 그 품에 기댔다.

“으…….”
“괜찮아?”

가슴은 흉기였으나 목소리는 나른했다. 양이는 귓가를 타고 흐르는 음색에 긴장이 풀렸다. 비틀대며 남자의 품으로 무너졌다. 손가락에 옷자락이 감겨 무심코 그러쥐었다. 엷게 사락대는 소리와 함께 손에 부드러운 감촉이 묻었다. 코를 묻은 옷자락에서는 깊은 국화 향과 고아한 약재 향이 났다. 어디 아득한 곳에 자리했을, 꽃이 흐드러진 고택 뜨락이 연상되는 향이었다. 양이는 더욱 힘이 풀렸다. 흐느적대며 남자에게 매달렸다. 처한 상황이 얼마나 난처한가도 떠올렸다.

‘망했네.’

양이는 남자의 가슴에 이마를 박고 생각했다.

◇ ◆ ◇

일이 시작된 때는 오늘 아침이었다. 대학 동아리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 양이야, 너 시간 있지? 오늘 남양주에 있는 도축장 좀 급히 다녀오면 안 될까? 내가 주말에 뭘 잘못 만져놓고 퇴근해서 내일 당장 해부 실습해야 하는 돼지눈깔이 다 상했거든? 나 이번에도 걸리면 진짜 죽어. 티 안 나게 메꿔야 하니까 오늘 다섯 시까지 몰래 배달 안 될까? 내가 도축장에 전화 싹 돌려서 눈깔 확보는 해놨거든? 나 좀 살려줘. 내가 하루 일당 꽉 채워서 줄게.

그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양이는 이게 웬 금 동아줄인가 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고 월세 날은 다가오고 서류심사와 면접에 떨어졌다는 문자와 메일만 쌓여가던 차에 하늘이 날 돕는구나 싶었다.

“예쓰! 선배의 불행에 이렇게 기뻐하면 안 되지만, 진짜 고마워요! 완전 베리 땡큐!”

양이는 당장 남양주 도살장을 찾았다. 돼지눈깔을 받아 아이스박스를 안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외진 곳이라 변변한 인도도 없어 가드레일을 따라 도로 가장자리를 걸었다. 남양주 한강 변은 바람이 드셌고 머리칼은 귀신처럼 휘날렸으며 상자는 무거웠지만 마음이 푼푼했다.
부아아아앙! 그 길에 오토바이가 폭주하며 가드레일 곁으로 달려왔다. 넋 놓았다간 관 짤 판이었다. 양이는 기겁하며 펄쩍 뛰어 가드레일로 더 바짝 붙었다. 그 결에 아이스박스를 놓쳤다. 끼이이이이익! 오토바이 운전자도 놀랐는지 찢어지는 소리로 아스팔트를 긁으며 갈지자를 그렸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양이의 얼굴에 삼도천 직행열차 승차권을 던져놓고 그대로 달아났다. 양이의 손을 떠난 박스는 뚜껑이 열리며 하늘을 날았다. 드라이아이스와 육십 쌍의 돼지눈깔도 하늘을 날았다. 양이가 가드레일 옆에 주저앉아 바라보니 하얗고 물컹한 눈깔들이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며 저 아래 한강 변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 눈깔의 비가 향하는 곳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 누군가가…… 이 남자겠지?’

양이는 고개를 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외간 남자의 가슴에 머리를 박은 채 충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양 숨만 죽였다.

‘망했다.’

정말 망했다. 최소한 세 가지 점에서 망했다. 첫째, 배달 아르바이트에 실패했다. 둘째, 그래서 선배가 곤란해졌다. 셋째, 낯모르는 남자 머리 위로 돼지눈깔을 들이부었다. 구제되지 못할 통장은 앞선 셋에 비하면 사소했다.

‘하아.’

양이는 딱 죽고 싶었다. 눈을 질끈 감고 바르르 떨었다. 그러자 커다란 손이 등을 지그시 눌렀다.

“흐음…….”

제 것 아닌 한숨이 나직이 흘렀다. 다시금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괜찮아?”

목소리는 느릿하고 말랑말랑했다. 적어도 화내는 투는 아니었다. 양이는 희미하게 희망을 보았다. 배 속 깊이 숨을 밀어 넣었다. 움츠린 목을 펴며 머뭇머뭇 고개를 들었다. ‘죄송해요.’라는 말을 입술에 걸며 남자를 보았다.

“죄…….”

양이는 나오던 말을 쭉 내민 입술 끝에서 멈췄다. 숨이 멎었다.
남자는 홍채가 새까맸다. 그렇게 끝없이 깊은 빛을 양이는 처음 보았다. 그 눈은 얇고 길게 뻗어 일견 여우 같았다. 그러나 선이 묘하게 탄탄하여 다시 보면 강인했다. 올올이 단정하나 짙은 눈썹이 그 인상에 힘을 더했고 쭉 뻗은 콧날과 뚜렷한 입술, 깨끗한 밀색 피부가 그 눈에 어우러졌다.
잘 벼린 진한 펜으로 망설임 없이 그린 얼굴이었다. 그 뚜렷한 명암이 남자에게 흑백사진 같은 고전미와 비현실성을 부여했고 그 감각에 밀려난 양이는 두 발짝 뒷걸음질 쳤다. 남자는 양이가 사극에서나 본 새하얀 도포와 갖신 차림이었다. 살랑대는 머리칼이 허리까지 닿아 새까맸고 양이에게 고인 눈빛이 단단했다.

‘음…….’

양이는 살면서 본바 최고로 잘생긴 남자를 앞에 두고 ‘죄’ 자 꼴로 입술을 내민 채 생각했다.

‘박수무당?’

남자는 생긋 웃었다. 강인해 보이던 눈매가 다시 여우로 보였다. 비현실적인 미모에 돌연 현실감이 들었다.

“이거…….”

남자는 무섭도록 상큼하게 눈웃음을 띠었다. 느른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며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양이의 눈높이로 들었다. 그 손가락 사이에 끼인 얼추 둥글고 대강 하얗고 일부 희푸름하며 몹시 물컹한 무언가가 햇살에 영롱했다. 양이는 자신이 그것을 남자의 머리 위로 쏟아부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눈앞이 아찔했다. 남자가 말을 맺었다.

“네 눈깔이야?”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고 불쾌하셨죠? 제가 간수를 잘못해서……. 죄송합니다.”

양이는 뒷걸음질로 공간을 냈다. 허리 숙였다. 불과 몇 분 전, 오토바이에 치여 죽을 뻔했다. 가파른 빗면에서 고꾸라져서도 죽을 뻔했다. 해명하자면 할 말이 없지야 않았다. 그러나 우선 미안했다. 허리를 접은 채 눈을 감았다. 반응을 기다렸지만 침묵이 길었다.

‘어쩌지?’

양이는 마른 입술을 물었다.
남자는 낯에서 화사한 미소를 닦아냈다. 양이를 향한 시선은 곧고 깊었으나 온도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남자는 여러 호흡이 지난 뒤에야 나른히 깜박였다.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놀라지도 불쾌하지도 않았어. 바퀴 긁던 소리가 상당했잖아. 상황은 얼추 짐작이 가고 네가 안 다쳤으니 됐어.”
“하…….”

양이는 긴장이 풀렸다. 가는 숨을 흘렸다. 남자가 웃는 낯으로 돼지눈깔을 들이밀 때는 ‘성깔 장난 아니겠구나!’ 싶었다. 내심 각오를 다졌건만 대응이 퍽 온화하고 상냥했다. 외려 이쪽 사정을 챙기니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니 일어나. 처녀귀신 같아.”
‘뭉클은 개뿔.’

양이는 기분이 확 식었다. 아무렴 처녀귀신보다야 내 꼴이 낫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맞바람 맞아가며 오두방정을 떤 끝에 그 비슷하게 거지 같아졌을 제 꼴을 짐작했다. 화나기보다 쪽팔렸다. 일그러지는 얼굴 근육을 붙잡아 매려 입술을 꾹 다물었다. 쏟아지는 한숨을 입속에 눌러 가두며 허리를 폈다. 가드레일을 넘느라 까매진 손가락을 뒤엉킨 머리칼에 찔러넣었다. 그대로 빗어 넘기는데 남자에게서 나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흐음. 또 보니 복어 같네? 뺨이 통실통실하니 새끼 복어가 따로 없다. 그럼 이건, 복어 귀신인가?”

양이는 울컥했다. 애써 표정 관리 중이었거늘 내 볼살에 보태준 과자 한 쪽 없으면서 복어라니! 복어 귀신은 또 뭐야! 미안함이 반감하며 체내에 테트로도톡신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하나 따지자니 돼지눈깔 투척이 메가 빅 엿이었다. 그 빅 엿을 삼키고도 기침 한번 안 하면 비정상이라 생각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 그게 바람이 엄청 불어서……. 강변이라 그런지 맞바람이 아주 그냥…….”

양이가 돼지눈깔은 해명 안 해도 이건 해야 한다는 소녀 감성으로 주절대다 보니 양이 못지않게 긴 남자의 머리칼은 결 곱게도 살랑이며 주인의 매끈한 밀색 뺨을 간질였다. 양이도 자신과 남자가 서 있던 지대가 다르다는 점이야 잘 알았다. 하지만 유부남 꼬이다 머리끄덩이 잡힌 처녀귀신 같은 제 꼴을 떠올리고 남자를 다시 보니 뭔가 억울했다.
양이는 머리칼에 손가락을 꽂고서 벌줌이 섰다. 남자는 손에 든 돼지눈깔을 휙 버렸다. 반 묶어 느슨하게 늘어트렸던 제 머리칼에서 머리끈을 풀었다. 매화문이 은은히 입사된 새하얀 비단 끈이 남자의 긴 손가락에 감긴 채 양이에게 내밀어졌다.

“묶어. 머리 넘기니까 이마가 예쁘다.”

남자는 밀당이 제법이었다. 양이는 체내 테트로도톡신 농도를 낮추며 물었다.

“당신은요?”
“일단 받고.”

양이는 얼결에 고개를 꾸벅했다. 비단 끈을 받아 머리를 올려 묶었다. 그사이 남자는 소맷부리에서 나무 비녀 두 개를 꺼냈다. 머리칼을 감아 올려 하나로 고정했다. 드러난 목덜미가 허전한 듯 목 뒤를 쓱 문질렀다. 말끄러미 둘러보았다. 좀 귀찮아하는 투로 물었다.

“이제 이거 어떡할래? 난 괜찮지만 다른 산책객이 보면 기절할 텐데? 사람 안구로 오해받으면 경찰이 나설 수도 있고.”

양이는 혈색이 가셨다. 테러 피해자가 대담하고 너그러워 다행이지만 뒷수습이 남았다. 약한 토기와 함께 한숨 쉬었다.

“으……. 주워야죠. 그런데…….”

양이는 심란했다. 굴러다니는 돼지눈깔과 일부 터져나간 수정체를 둘러보았다. 좀 더 창백해졌다.

“어떻게 아셨어요? 사람 눈 아닌 거?”
“해부실습용 돼지 눈이잖아? 그 정도는 알아. 도움 필요해?”

일 초가 다르게 낯빛이 죽던 양이는 눈이 동그래졌다. 아이스박스 위치를 확인하다가 고개 돌려 남자를 향했다.

“저 돼지눈깔, 알 주워야 하는데요?”

양이가 특정 단어를 순화하며 묻자 남자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답했다.

“알아. 그래서.”
“그래서 물으셨다고요? 도움 필요하냐고?”
“필요해?”

‘필요하냐’고? 절실했다. 양이는 되도록 저 물체를 만지고 싶지 않았고 도움받으면 일이 줄 터였다. 하나 자기도 섬뜩한 일을 부탁하자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양이는 고마움과 곤란함, 간절함이 섞인 얼굴로 남자를 보며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결국 고개 저었다.

“아니요. 저 옴팡 욕먹을 각오했는데 이해해주신 일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여기서 더 뻔뻔하게는 못 해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저는 걱정하지 마시고 살펴가세요.”

양이는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근처에 나뒹굴던 아이스박스로 가서 상자를 들었다. 남은 눈깔이 상자 속을 구르는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가 체념한 눈을 떴다. 허리를 숙이고 주변을 훑으며 돼지눈깔을 찾았다. 하나씩 상자에 담았다. 수정체가 터지기도 했지만 만지는 물체의 정체나 상태를 인지하지 않으려 애썼다.

“복어 양 애교 없네.”

양이 옆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졌다. 어느 틈에 다가온 남자가 흠칫 놀라는 양이에게서 아이스박스를 빼앗아갔다.

“사내가 돕겠다고 할 때는 받아들여. 사내는 여인의 예의와 염치보다 미소와 칭찬을 더 좋아하니까. 아니면…….”

남자는 말을 하면서도 잔디 사이에서 눈깔 하나를 집어 상자에 넣었다. 좀처럼 서두르지 않는 특유한 말투로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나한테 웃어주기 싫어?”

양이는 뺨이 확 달아올랐다. 반사적으로 남자를 보았지만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손길로 눈깔만 주워 담을 뿐이었다.

‘하……. 내가 초미녀도 아니고 이렇게 최악으로 처음 보는 사이에 뭐라고……. 혹시 선수? 이 남자, 멀쩡한 여자를 도끼병 환자로 만드네.’

양이는 피식 웃었다. 남자가 초면에 반말이긴 해도 배려 깊다 싶었다. 남자는 불쾌한 일을 겪었지만 양이가 다치지 않아 괜찮다고 했고 복어라 놀렸지만 머리끈을 빌려줬고 양이가 미안해하자 작업으로 들릴 만한 실없는 소리까지 입에 담으며 쾌히 도왔다.
양이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여유가 돌았다. 여전히 돼지눈깔이 끔찍했지만 몇 개 주워 남자를 쫓아가 아이스박스에 넣었다. 남자 주변에 쭈그리고 앉아 하나씩 주워 담았다.

“고마워요. 진짜로, 고마워요.”
“그래.”

남자는 겸양 없이 끄덕였다.
둘은 오리걸음으로 눈깔을 주워 모았다. 양이는 물컹한 감촉에 머리칼이 곤두서고 토기가 치밀었지만 제 일도 아닌데 묵묵히 돕는 남자를 보며 겨우 참았다. 인고 어린 시간이 헛되지 않았는지 아이스박스가 꽤 찼을 때였다. 남자가 문득 물었다.

“복어 양 의사나 병원 관계자 아니지?”
“어떻게 아셨어요?”
“안 똑똑해 보여.”
“아, 그러세요.”

남자는 진실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양이는 표정이 썩었다.

“아까 안았을 때 병원 냄새가 안 났어.”
“아.”
“그 사람들은 나. 아무리 가려도.”
“탐지견 같네요.”
“그래?”
“네.”
“도축이나 정육 관련도 아니고.”
“피 냄새 안 나요?”
“응.”
“혹시 개띠예요?”
“아냐. 학교 알바야?”

양이는 손을 딱 멈췄다. 남자를 멍하니 보았다. 남자도 손을 멈추고 양이를 보았다. 남자는 무표정했지만 그 표정이 묘하게 멀뚱거려서 순진해 보였다. 양이는 숨을 훅 들이쉬었다.

“왜 직원이냐고는 안 물어요?”
“곤궁함이 묻어나는 분위기라서.”
“하……. 진실일수록 너무 태연하게 말하면 안 돼요.”
“미안. 아는데 잘 안 돼. 학교 알바 맞아?”

양이는 맥이 빠졌다. 고개 저었다.

“아는 사람 부탁으로 하루 알바예요. 학교에 다섯 시까지 배달이었어요.”
“못 쓰게 됐잖아. 곤란하겠네.”
“네…….”

남자도 양이도 손을 멈췄다. 이제 정리가 됐는지 더는 눈깔이 보이지 않았다. 양이는 눈으로 주변을 훑으며 맥없이 답했고 남자는 그런 양이를 물끄러미 보았다.

“복어 양, 나랑 거래 안 할래?”

뜬금없는 말이었다. 양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네 상황은 내가 해결할게. 배달할 장소와 수량, 시간만 알려줘. 대신 내 가게에 면접 보러 와.”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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