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스위치와 인도교 딜레마를 가지고 문제를 풀어보자. 앞서 설명한 대로 사람을 밀어 죽이는 일은 스위치를 누르는 것보다(비록 둘의 결과는 같지만) 훨씬 격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설명하는 데 진화론적 관점이 유용할 수 있다. 인간은 서로를 밀치거나 때때로 밀어뜨려 살해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진화해왔다. 우리는 기계를 매개로 한 위협이 자행된 시기에 진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현대적 형태의 폭력보다 좀더 개인적이고 기본적인 형태의 폭력이 도덕에 대한 인간의 의식을 더욱 자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타주의적인 행동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감정 역시 비슷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은 멀리 떨어진 낯선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진화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 여기서 고통받는 사람을 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진화해왔다. 인간에게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흔들리는 깊은 감정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통해서만 살아 남을 수 있는 피조물의 결정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자연이 미처 내다보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언젠가 인간의 생존이 대양과 대륙을 넘나드는 협동에 의존할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인간은 멀리 떨어진 사람의 고통에 대해 선뜻 동요할 수 있는 마음을 미처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닐까?---p.24 도덕적으로 진화한 뇌
다른 사람과 지식을 나누게 하는 회로는 인간 본성에 또 하나의 깊은 의미를 지녀, '직관적 이타주의intuitive altruism'의 기초를 놓는다. 대부분의 문화는 윤리의 황금률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권고하며, 이슬람교는'너희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에게 소원하여 주지 않으면 진실한 신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행동하게 되는 걸까? 이것은 타인의 고통과 기쁨을 공유하는 뇌의 메커니즘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윤리적 판단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pp.45-46 거울뉴런과 윤리적 본능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도 역시 비슷한 현상이 발생했다. 대를 이어 지구상에 생존하기 위해 인간은 가장 똑똑한 사람과科 동물이 되기 위해 힘을 기울이는 대신 사회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온 것 같다. 그 편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더 높은 단계의 적합성을 갖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섬세한 문제해결이 가능하도록 도태가 이루어졌다. 인간은 먼저 친근해졌기 때문에 똑똑해질 수 있었다.---p.58 인간, 똑똑함을 버리고 친근함을 택하다
허구적 세계의 특성은 확실히 대단히 쓸모가 있으며, 특히 아동의 발달에 매우 유용하다. 어린이에게는 직접 탐험할 수 없는 현실이 많다. 그러나 상상력을 이용하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 사실 몇몇 연구자들은 이것이야말로 가상놀이의 본질이라고 추측한다. 이렇듯 가상놀이는 안전하고 분리된 공간에서 아이들에게 다른 사회적 역할을 해보거나 인격의 다른 측면을 탐험할 기회를 준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통해서는 실제적인 사실에 관해 배울 수 있지만, 가상놀이를 통해는 사회적, 감정적 현실에 대해 배운다. 다시 말해 실재로 경험하지 않고도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특정한 일을 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배울 수 있다.---p.72 상상력의 치명적 중요성
두 문화권의 중심 가치는 천 년이 넘도록 지속된 각 문화 특유의 빅아이디어를 나타낸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문화의 내용이 인간의 정신과 뇌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콘주의는 반대의 설명 또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만약 동양인과 서양인의 뇌의 차이가 각자의 문화를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촉진한 것이라면?'이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때 두 문화는 사회를 조직하는 각각의 방식에 가치를 두도록 구성원을 이끌며, 각 사회의 조직은 구성원의 뇌 조직 타입을 반영한다.---p.86 살아남는 아이디어, 사라지는 아이디어
이 연구가 인간 사회에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인간의 뇌가 수십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둘째, 청소년기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두드러진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호르몬 단독으로는 청소년기의 전형적인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힌다. 셋째, 청소년기 동안 발생하는 시냅스 인식synaptic recognition은 초기 시냅스 가지치기와 마찬가지로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은 순수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청소년기에 반드시 해야 할 경험이 무엇인지 밝혀질 것이다.
킹스컬리지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정신의학 연구소의 로빈 머레이Robin Murray 팀이「영국 정신의학 저널British Journal of Psychiatry」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정기적으로 마리화나를 피운 십대들이 그렇지 않은 십대보다 초기 성인기에 정신분열증을 일으킬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은 마리화나가 10대 시기 뇌 발달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성별에 따라 청소년기 동안 일어나는 사회적 인지발달에 차이가 생길 수도 있다.---p.92 뇌는 몇 살까지 성장할까
이러한 관찰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의 뇌는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의 정신과 같은 종류의 정보처리를 하려고 시도한다. 말하자면 뇌는 옆 사람의 뇌와 비슷하게 느끼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 발견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뇌와 비슷하게 느끼려는 뇌의 조직적 활동은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숨은 복잡성을 암시한다.
다른 사람의 정신과 성공적으로 상호작용하고 그것을 예측하고 때론 영향을 주는 일은 일련의 특별한 인지 기술을 요한다. 어떤 종류의 정보변환 과정이 치켜세운 눈썹이나 곁눈질을 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에 관한 이해로 바꾸는 걸까? 어떤 과정이 한 사람의 정신 상태를 정교한 말의 형태로 입 밖에 나오도록 바꾸는 걸까? ---pp.107-108 뇌도 친구가 필요하다
최근 신경과학자들이 그동안 언어 장애로 분류되었던 몇몇 장애를 타이밍의 문제로서 고려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언어 장애 진단을 받은 뇌졸중 환자는 시간의 길고 짧음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또한 난독증 때문에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청각 표현과 시각 표현 사이의 타이밍을 적절하게 포착하는 것이 힘들 수 있다. 최근에는 시간적 순서 판단력이 정신분열증의 몇몇 증상과 관련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귀인misattribution("내 손이 움직였어. 하지만 난 그것을 움직이지 않았어.")과 환청이 대표적 증상이다. 뇌와 관련한 시간 연구가 진전되면서 임상신경학과의 접촉점이 속속 드러날 것이다. 현재는 대부분의 상상 가능한 시간 장애가 치매나 방향감각 상실로 분류되어 일괄적으로 다뤄진다.---p.117 두뇌 시간의 비밀
21세기를 지나는 동안 내면적 인간 경험의 질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고
저장되며 재생되는지 알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창조하기 위해 기억을 조종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과거, 혹은 적어도 과거에 대한 인간의 회상이 선택의 문제가 된다. 이미 누트로픽nootropics이라 불리는 '스마트 드러그smart drug'(머리를 좋게 하는 약-옮긴이)가 출시되었다. 이 약은 학습 속도와 인간의 기억능력을 향상시킨다. 간직하고 싶은 기억과 버리고 싶은 기억을 선택할 수 있는 기술 또한 발달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은 배우거나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도 기억을 창조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술이 사회에 전면적으로 등장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잠재적인 윤리적 결과는 어떤 것들일까? ---p.148 기억을 디자인하다
기억을 연구하는 과학이 넘어야 할 가장 높은 문턱은, 실제로 일어난 적 없는 사건에 대한 기억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이것을 '마릴린 먼로 실험Marilyn Monroe experiment'이라고 부른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만약 기회만 주어진다면 과학계의 수많은 원로 학자들이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인 마릴린 먼로와 밤을 보낸 기억을 만들어내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소 경박하게 들리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실험이 성공한다면 이는 엄청난 과학적 성취가 될 것이다. 인간이 기억의 생물학적 근거를 이해하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p.155 기억을 디자인하다
의학은 어려운 분야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종종 실패하기 때문이다. 의학의 목적은 고장난 대상을 고치는 것이다. 반면'인간능력 향상Human Enhancement'의 목적은 고장나지 않은 시스템을 가져다 더 좋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의학보다 더욱 야심 찬 시도다.
진화된 복합체인 인간은 매우 놀라운 존재다. 그러나 생물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복합체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일부에 불과하다. 대체로 인간 능력의 인위적 향상에 반대하는 진영의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섭리에 따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일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사람들은 직관적으로'자연스러운'것이 인위적인 장치보다 우월하며, 인간의 교만이 수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반면 인간능력 향상의 열광적 지지자들은 생물의학적 개입이 약속하는 인식력의 개선과 정서적 행복의 증대, 노화 방지에 대해 낙관적이다. 이들은 자연스러운 것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미신을 신봉하는 무리로 치부해버리거나, 아예 그들?의 대화 자체를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pp.159-158 진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법
바이러스 연구는 지구상의 바이러스를 폭넓게 탐험하는 실제적인 중요성을 넘어, 우주 속 인간의 위치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바이러스는 지구 밖 생물체를 발견하고 그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려줄 것이다.
대중이 상상하는 외계인의 모습은 완벽하게 상냥하거나 악하다. 바이러스에 대한 틀에 박힌 생각 역시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바이러스는 좋고 나쁘고 추하고 이로운 모든 측면을 다 드러낸다. 외계 생명체 역시 마찬가지다. 외계인과의 최초의 만남은 아마도 극적인 조우가 될 것이다. 그들이 높은 지능을 가진 우호적인 존재든 낯선 행성에서 온 포악한 군사든 말이다. 설혹 우리 주변에 외계 생명체가 살게 되더라도, 그들이 유익한 종인지 해로운 종인지 확인하는 일은 까다로운 작업이 될 것이지만 외계 생명체의 발견은 과학의 발전에 분명 커다란 이득을 가져올 것이다.---p.177 바이러스와 외계 생물체
우리 조상들의 다양한 섭식과 강한 환경 적응력, 그리고 독특한 인구 특성의 결과를 확인해보자. 그들은 급격한 인구 증가를 이뤄냈을 뿐 아니라 6만 년 만에 멀리 떨어진 지구 구석구석까지 진출했다. 6만 년은 지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지극히 짧은 시간이며, 현재는 더 이상 뻗어나갈 땅이 없을 정도다. 우리는 생존한 유일한 인류로, 인구는 10억에 달하며 인간의 활동은 지구 환경에 부담을 준 나머지 기후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더 많은 종이 극심한 위협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새로운 환경 속에서 인간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과거의 경쟁자들처럼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릴까?---p.202 우리 인류는 멸종할까
관측되는 우주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전사prehistory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물리학자들이 대폭발의 신비 너머로 상상력을 뻗치고 있다. 과학자들은 전사 안에서 잘 조율된 낮은 엔트로피 상태의 초기 우주에 대한 설명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고도의 엔트로피 상태의 우주를 상상해보라. 그곳은 춥고 묽으며 입자들은 서로서로 멀리 떨어져 흩어져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진공에너지가 존재하며 따라서 빈 공간조차 완벽하게 정지된 상태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p.213 우주 속 인간의 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