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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무당 나와야 정치 살아난다
eBook

큰 무당 나와야 정치 살아난다

: 6월 항쟁의 스님 지선과의 대화

[ EPUB ]
손석춘 | 알마 | 2018년 08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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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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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년 0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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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0.70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5.5만자, 약 1.7만 단어, A4 약 35쪽?
ISBN13 979115992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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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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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지선
6월항쟁과 불교개혁의 ‘얼굴’이자, 오랜 세월 안거를 하며 화두에 몰두해온 선승이다. 온갖 모순이 얽혀 있는 세간 고원해 보이는 출세간을 오가며 부처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해온 우리 시대의 스님이다. 1946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1961년 장성 백양사에서 석산은사로 출가했다. 법명은 지선. 백양사 운문강원 등에서 전통적인 불교 교육을 수행했다. 1976년 이후 영광 불갑사 주지, 종정 사서실장, 제주 관음사 주지, 광주 문빈정사 주지를 역임했다. 1984년 민족·민주 불교운동에 나선 이후, 민중불교운동연합 지도위원,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민족자주·통일 불교운동협의회 의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공동의장, 불교정토구현 전국승가회 의장, 민족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공동의장, 전국불교운동연합 상임의장,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6·10민주항쟁기념사업회 상임이사장 등을 지내며 1980~1990년대 재야의 한복판에서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진력했다. 1999년 동안거를 시작으로 백양사 운문암, 김천 수도암, 오대산 상원사, 덕숭산 정혜사 등지에서 10여 년 동안 안거를 지내고, 지금은 고불총림 백양사 수좌로 있으면서 참선수행에 진력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시집인 《여래의 깃발》을 비롯해 《아름다운 그 이름 사람이어라》《세간과 출세간 1,2》《대중아, 물이 거꾸로 흐른다》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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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 6월항쟁 때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의장이었는데 교도관들이 와서 그래요. 내란음모죄, 국가전복죄 등 다섯 가지에 해당된다고. 그리고 전두환 씨가 계엄령을 내일, 모레 발표한다고 말해줬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끌어다 죽인다는 말도 나돈다고 했어요. 그래서 이제 끌려가서 죽는가보다 했지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거니와 내가 죽는 것은 원통하지 않았어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 학생들이 잡혀가서 죽고, 의문사하고, 병신 되고, 일반 국민들도 끌려가서 수난을 당하던 때였으니까요. 나 자신의 죽음보다는 생사를 초월하고 해탈한다는 수행자들이 모든 생명, 모든 중생의 생명을 보호하고 구해주는 일에 아무 구실을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생각했어요. 천주교나 기독교에서는 인권운동이나 소수 민중들의 권익을 신장하는 운동을 펼친 지 오래된 상황이었고, 불교도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지요. 그런 차원에서 우리 같은 사람이 하나 죽어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 포기했어요.
손석춘 그럴 정도로 비장했었군요.

손석춘 무당에 대한 인식이 일찍부터 열려 있으셨군요. 그런데 정치인이 무당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나눠봤으면 합니다.
지선 무속에서는 해원상생 핵심입니다.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가슴에 묻혀 있는 한o, 그 원을 풀어 주고 상생하는 거죠. 원을 풀어줘야 같이 살 거 아니에요.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이 한다는 말이 과거에 얽매이고 매달려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겁니다. 좋은 게 좋지 않느냐? 우리 서로 상생의 정치를 펴자. 앞의 해원을 빼고 상생만 써먹고 있어요. 상생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합니다. 군홧발로 짓밟고 사람을 때려죽여서 가슴에 한이 켜켜이 맺혀 있는데 지난 일은 없었던 걸로 하자, 과거에 매여서는 앞으로의 미래가 어둡다, 현재 좋은 것이 좋지 않으냐, 그냥 더불어 살자, 덩실덩실 춤추고 살자, 이러는 게 말이 됩니까? 맺힌 한이 풀리면 상생하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왜 앞에 ‘해원’은 빼버리느냐는 거죠. 상생의 정치만을 하자는 정치인들을 우리가 따라가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요.

손석춘 해원이 있어야 상생한다는 말씀이신데요. 상생만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래서 큰 무당이 필요하다는 뜻인가요?
지선 그렇습니다. 해원상생이 바로 무당입니다. ‘정치가 무당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농민이나 어민, 산에 사는 사람, 들판에 사는 사람, 떠돌아다니며 사는 사람, 모든 사람들의 해원상생을 정치가 해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풀어주면서 함께 더불어 살게 하는 역할을 해야 그게 정치라는 겁니다. 정치가 특정인, 가진 자의 이익이나 권력가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소수자들의 군사독재나 민간독재를 눈감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정치인은 무당이 돼야 하고, 그 역할을 못할 것 같으면 정치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 「1장 정치를 무당으로 풀이하는 까닭」 중에서

손석춘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이승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김일성, 김정일 체제에서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죠.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어요?
지선 그따위 소리는 속 좁은 소리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해요. 남북 민족이 현재 이민족이 됐어요. 이질화돼버렸어요. 이런 불행한 사태까지 이르렀는데, 나는 이 나라가 남한 쪽으로 합해져서 지금 하나가 됐다고 해도 좋은 일이고, 북한 쪽으로 합해졌다고 해도 장래를 생각하면 나쁜 건 아니라고 봅니다. 한 국가가 됐으니까요. 거기서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면 되잖아요. 인간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억압과 착취, 수탈에 견디지 못하니까, 그런 세상에서 누가 지도자가 됐다고 하더라도 조선 민족으로서는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떨쳐 일어났을 것입니다. … 미국식 자본주의, 서양식 자본주의의 통일만이 최고라는 사람, 못 먹고 못살고 굶어 죽어가는 이북처럼 됐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답하고 싶어요. 지금 이북같이 안 됐을 수도 있습니다. 통일이 됐으면 이북의 현 체제는 벌써 타도됐을 수도 있어요.
지선 한국이 지금 자유민주주의인가요?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의사 pz 자유민주주의죠. 우리나라에서는 온전히 민주주의를 해본 적이 없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해본 적이 없어요. 아무것도 해본 적이 없어요. 강대국 제국주의자들한테 식민지만 되어가지고 쫓겨다니다 판났지요. 우리가 민족끼리 모여서 지도자를 뽑고, 사회 형태를 만들고, 원하고 바라는 대로 한순간이라도 해봤냐는 거예요. … 우리나라가 현재 자유민주주의입니까? 국가보안법. 세계에 없는 보안법이 우리나라에는 그대로 있어요. 교육이나 노동을 보세요. 통일이 안 되면 모든 것이 반쪽입니다. 역사도 반쪽, 철학도 반쪽, 문화 예술도 반쪽, 문학도 반쪽, 반쪽이 아닌 게 없어요. 다 다시 시작해서 다시 쌓아야 합니다. 통일이 되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말이에요. 우물 안의 개구리같은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그쪽에서 이승만을 내세워서 그가 아니었다면 자유민주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맛보고 살았겠느냐,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어섰겠느냐, 그렇게 말한다면 정말 속 좁은 소리입니다. --- 「2장 그렇다면, 무당에 가장 가까웠던 역대 대통령은? 」 중에서

손석춘 박정희 시대에 스님으로서 지선은 잘나가고 계셨더라고요.(웃음) 조계종 종정 사서실장. 젊은 나이에 그런 중책을 맡았고, 제주도 본사인 관음사 주지도 하셨고요. 그때 어떻게 그리 잘 풀리신 거예요?
지선 저는 당시 전남 영광에 있는 불갑사 주지를 했는데, 새마을사업이 막 일어날 때였습니다. 전국이 눈만 뜨면 새마을판이 된 때인데, 그때 절집 논과 땅을 빌려 먹고사는 사하촌 있었어요. 저는 지주 같은 입장에 서서 경작료 내라고 큰소리치고, 그 사람들은 없어서 그러는데 왜 그러냐고 언쟁을 하고 그랬죠. 한 1~2년 지내다 보니까 내가 20대 시절인데 느낀 점이 많았어요. … 절로 돌아오면서 회의가 들었어요. 논두렁, 밭두렁을 걸어오며 ‘야, 중이 이거 할 짓인가’ 싶었지요. 그래서 그다음 해에 영광군과 함평군에 공문을 붙였어요. ‘돈이 없어서, 가난해서 학교 못 간 아이들을 내가 가르쳐주겠다. 절로 보내라’고 벽에 써 붙였어요. … 처음에는 5명, 10명, 나중에는 2년 지나니까 70여 명까지 됐어요. 1, 2, 3학년으로 나눠서 만세루 막은 것에 다시 두 칸을 막으니까 교실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하니까 그때 새마을방송에서 촬영을 했어요. 절집에서 이렇게 새마을운동을 한다고 전국 새마을방송 콘테스트에 우수상인가를 차지해서 상금도 받고, 라디오에도 나간 거예요.
손석춘 일약 새마을운동의 ‘스타’가 되신 거군요(웃음)

손석춘 제주도 관음사 주지하실 때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셨다면서요.
지선 큰 절인 관음사 주지를 하다 보니 박정희 대통령이 연초에 지방순시할 때 제주지역의 유지 자격으로 악수하고, 식사할 때 박정희 대통령 바로 옆에 앉았어요. 신문사 사장인가 옆에 앉았는데, 내가 두 번째 옆에 앉은 거예요. 바로 옆에서 보는 거죠. 이야기도 수시로 하고, 농담도 하고. 그분은 말이 별로 없었어요. 그때는 감히 아무 말도 못하고 전부 덜덜 떨고 있죠. 박정희 대통령이 다 알아서 했어요. “제주 신문사 사장, 얘기 한번 해봐” 그러면 얘기하고, 이어 “해병대 회원 사령관, 얘기해봐”라고 지적하면 말해요. 대통령이 지적하지 않았는데 무슨 말을 하면 경호실장이던 차지철한테 조인트 까이는 거죠. 답변을 잘못하면 끝나는 거예요.
손석춘 가까이서 보고 이야기를 나눈 박정희의 인상은 어떠셨어요?
지선 바늘을 찔러도 안 들어갈 정도로 딱딱하고, 쓴웃음을 짓는데 그게 굉장히 고독해보였어요. --- 「3장 새마을운동의 ‘모범스님’ 지선」 중에서

손석춘 박근혜를 관음사에서 봤을 때 호감을 느꼈다고 하셨는데요.
지선 그때는 선입견 없이 봐서 그런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미소 지으며 말하는 행태들이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어쩔 수 없이 저렇게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는구나’ 그런 생각이었어요. 또 그때는 새마음운동의 총재였는데, 사실 ‘새마음’이라고 하는 게 불교와 친근한 단어 아닙니까. 그때는 그걸 나쁘게 생각 안 했어요. 저 일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뒤로 시간이 흐르면서 보니까 옹졸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정도의 역사적 아픔을 지녔고 정치적 변화도 수없이 봐왔을 텐데, 사람이 크게 변화는 못하더라도 긍정할 것은 긍정하고 부정할 것은 부정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 과감하게 민주화 정치와 복지정책을 내놓고, 자기 아버지가 야만적 행위를 저질렀을 때 상처 입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을 거론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그런 말은 한마디 언급 없이 자기 아버지가 훌륭했다, 위대했다, 청렴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렇게 칭
찬만 늘어놓으니까 이건 아니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죠.

손석춘 그럼 그때 전두환 일당에게 끌려가지 않았다면 정치의식이 바뀌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겠군요.(웃음)
지선 그렇죠 …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나에게 의문이 생겼어요. 우리는 호국불교라고 해서 지금까지 잘해왔고, 누가 정권을 잡아도 박수 쳐줬고, 어떤 사람이 정권을 잡아도 잘하라고 격려하고 힘을 보태줬는데 불교는 어째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탄압을 당하고 정치적 이용물, 희생물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의심이 떠오르는 거예요. 나 자신에 대한 회의도 들었어요.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나도 그런 관례를 따라서 박정희, 전두환 이런 사람들이 제주에 내려올 때 새마을운동도 잘한다고 하고, 강연도 다니고 했어요. 그런데 내가 끌려와서 처참하게 갇혀서 저들한테 모욕과 수모를 당하고 있는 거예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교에게 이럴것 아닌가, 그런 회의를 갖게 됐죠. 세계 모든 역사를 봐도, 정권이 ‘정화’라는 미명하에 직접 개입해서 내놓고 종교를 탄압한 사례는 없단 말이에요. 신성한 법당에 들어와 수많은 군인들을 총동원해 수백 명을 잡아다가 이렇게 두들겨 패고 고문을 한 사건을 저지른 역사가 없어요. --- 「4장 박근혜, 그녀에게 느낀 호감과 끔찍함」 중에서

지선 광주 시민들이 무등산을 참 많이들 올라가세요. 아침이면 맨숭맨숭 올라가서 소주 한잔씩 먹고, 정신이 몽롱해지면 내려오면서 아스팔트 옆 대로변에 있는 문빈정사 문짝을 발로 차면서 욕을 하는 거예요. 개새끼, 소새끼, 중새끼들, 전두환 살인마를 위해서 조찬기도회를 한다고 욕을 해요. 하루 이틀 겪다 보니까 그것도 괴롭데요. 시민들이 근처에 대소변도 봐버리고, 문을 잠갔는데도 발로 차버리고 그랬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나가서 “왜 대문을 발로 차냐? 스님들이 다 그런 게 아니고 일부가 그런 것이지 오해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그러면 스님은 5·18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요. “군사독재정권이 나와서 시민들이 일어선 것이지 전두환 정권이 잘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답하면서 소통이 시작된 거예요.

손석춘 그 뒤 서울로 오셨는데 6월항쟁의 그날, 성공회 성당의 종루에 올라가시잖아요.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요?
지선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만든다고 해서 광주 재야 대표 겸 불교계 대표로 올라갔죠. …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매일 저녁 뉴스에 나오는 가운데, 3일 후에 열릴 6·10대회 식순을 짰어요. 처음 식순에는 내가 개회사를 하고, 성공회 종루에는 박형규 목사가 올라가서 국민운동본부 첫 방송을 하기로 했거든요. … 그런데 식순이 바뀌었어요. 박형규 목사가 개회사를 한다고 그래서 내가 종루로 올라가게 됐어요. 좁은 길을 따라 성당 종루에 올라가려고 하니까 조금은 미안하더라고요. ‘아이고, 예수님 미안합니다. 훌륭한 국가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올라가니까 이해를 하십시오’ 그렇게 기도하고 올라갔죠. … 올라가니까 옥상에 큰 스피커 네 개가 동서남북에 있었어요. 굉장히 큰 이동 스피커들이었죠. 정각 10시가 되어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입니다. 지금부터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각 장충체육관에서 선출되고 있는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는 국민의 이름으로
무효임을 선언합니다.” 이렇게 되풀이를 서너 번 했죠. 그 신호에 맞춰서 아래쪽에서 움직였을 것 아닙니까. 최루탄 쏘는 소리가 콩알 볶는 소리처럼 들리더라고요. --- 「5장 무등산 시민들이 욕설로 깨우쳐주다」 중에서

손석춘 성당 종루로 올라가실 때 어느 정도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지선 이기고 지고, 그런 승부를 많이 이야기해요. 그때도 그런 소리가 나왔어요. 우리가 이 짓 해가지고 이기겠느냐? 못 이기죠. 우리가 저 공무원들을 어떻게 이기느냐? 저 많은 경찰들을 어떻게 이기느냐? 국군을 어떻게 이기느냐? 외세를 어떻게 이기느냐? 겹겹이 쌓여 있는 거니까요. 어떻게 이기느냐? 그것보다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옳으면 싸우고 가는 것이지 이기려고 하는 싸움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싸움이었습니다. 운동이라는 것이 누가 먹고 먹히는 싸움, 죽고 죽이는 싸움이 아니거든요.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해서 그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서로 같이 그야말로 해원상생해서 나아가자는 것이지요. 그것은 원 원수를 갚는 보복풀이가 아닙니다.

손석춘 이한열 노제 당시 광화문사거리에서 경찰이 지키고 있는 선을 넘어 청와대로 가자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게까지는 하지 말자는 사람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스님은 어떤 생각이셨는지요?
지선 나는 청와대로 가자는 편이었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감옥에서 나오니까 격앙되어 있었거든요. 원로들이 회의를 하면 딱 그렇게 나뉘지는 않았지만, 대강 두 개의 흐름으로 나뉘었어요. 나는 “이 기회에 저걸 잡아들여야 한다. 미친개는 물에 빠졌을 때 두들겨 패야 잡지, 그때 패지 않으면 나와서 사람 물어 죽인다”고 했어요. 그래서 “인파가 100만 명이 모이면 청와대로 밀고 나가자. 저것들이 100만 명을 다 죽이겠느냐? 그렇게 하다보면 양심적인 경찰, 군인들도 있어서 더는 총을 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밀고 나가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다른 패가 있었어요. 행사는 평화적으로 장엄하고 엄숙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특정 종교 계통에서 그 이야기를 강조했다고 기억해요. … 그때 고은 시인인지 누군가가 벌컥 화를 내면서 “장례식을 거룩하고 위대하고 성스럽게 치를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이 훌륭한 장례식을 진짜 성스럽게 하는 것은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결국 해결을 못 보고 시청 앞에 나온 거예요. 그렇게 된 거죠. 한 패는 광화문사거리 쪽으로 가다가 막혀버린 거고, 나머지는 서서히 흩어진 거죠. 결국 장례 대열이 광주로 가는 것으로 끝났지요. --- 「6장 운동은 이기는 게 아니라 해원상생이다」 중에서

손석춘 그때 김영삼, 김대중의 분열로 운동 내부에 갈등이 불거졌는데요. 스님은 비판적 지지지 쪽에 계셨었죠?
지선 그때 나는 비지였지.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 이한열 장례식 때 김영삼 총재 쪽에서 밥을 한 번 같이 먹자고 연락이 왔어요. … 식당에 가니까 김영삼 씨가 먼저 왔더라고요. 와이셔츠 입고 혼자 왔다 갔다 방에서 이러고 있어요. 두어 시간 얘기를 했죠. 야권에서 단일화해야 한다는 얘기, 그리고 두 번째는 종교 편향적인 자세를 갖지 말라고 했어요. 우리나라에 비종교인이 많고 종교가 다른 사람이 많은데,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자꾸 ‘하나님’ 소리를 너무 많이 하면 좀 그렇다고 했죠. 그러니까 김영삼 씨가 단일화는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말하고, 종교 문제는 그러더라고요. 옛날에는 ‘야소교’라고 했다, 예배 보는 곳을 예배당이라고 했다, 그때 우리 젊은 남녀 청년들이 예배당에서 만나서 연애하고 그랬다, 그래서 사실 ‘연애당’이라고 하고 그랬다, 그런 풍토 속에서 살다 보니까 말이 그렇게 나와버렸다, 주의를 하겠다는 말을 했거든요. 제가 나오면서 진관스님한테 “아따, 안 만났으면 했는데 만난 것이 그러네” 그랬어요.

손석춘 그 뒤 어쨌든 김영삼, 김대중이 각각 대통령이 되잖아요?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를 한 분씩 해주시죠.
지선 김영삼 씨가 굵직굵직한 것은 많이 했죠. 하나회도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도 하고, 조선총독부 건물도 찬반양론이 있기는 했지만 헐어버리고, 용감하게 대통령 둘을 감옥에 보내버리고 이런 일을 상당히 했어요. 나중에 김대중 씨가 된 뒤에 보니까 김대중 씨가 먼저 됐다면 하나회를 숙청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분은 겁이 많아요. 그래서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김영삼 씨는 그런 것들을 해서 상당히 자기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죠.
김대중 씨는 나중에 보니까 그런 굵직굵직한 것은 없어요. 햇볕정책 하나 외에는 없죠. IMF 경제위기 극복도 들 수 있는데, 사실 누가 되어도 그 지경이 됐으면 국민들이 아이들 돌 반지뿐만 아니라 푼돈이라도 모아줍니다. 그것은 별것 아니고, 오히려 외국에 공기업과 금융기관들을 팔아넘겨 잘못한 거죠. 햇볕정책은 잘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분 평소 주장이 입만 열면 국가보안법 철폐한다, 노동악법 없앤다, 그랬단 말이에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민주주의가 들꽃처럼 만발한 세상 만든다고 했는데, 부정이 강물처럼 흘렀어요. 민주주의가 ‘들꽃처럼’이 아니었죠. 뭐가 꽃 피었냐는 말이에요. 소소한 점은 하기는 해서 달라진 것들도 있으나 본질적인 모습은 손도 못 댔어요. --- 「7장 6월항쟁 때 청와대까지 갔어야 옳았다

지선 우리는 다 준비가 됐는데 평민당에서 못 내게 하고 있다고 말하니까, 김대중 이 양반이 성질을 내고 “스님, 운동 그만하세요” 그래요. “제가 왜 운동을 그만합니까” 그랬죠. “스님이 자꾸 법복을 입고 다니면서 학생들한테 강의하고 하니까 애들이 쇠파이프 들고 폭력투쟁을 하지 않습니까? 내가 오늘도 연세대학교 갔다 왔는데 옥상에 가서 보니까 쇠파이프가 쌓여 있고, 병이 있고, 화염병이 있었어요. 내 철학이 비용공, 비폭력, 비반미입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그분의 실체를 알아봤어요. 김대중의 삼비론이 유명합니다. “스님이 돼서 그렇게 하니까 학생들이 폭력적이고” 그런 말을 듣고 나니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해져버리더군요. 나는 생명을 바쳐놓고, 유서 써놓고 운동을 했거든요. 나도 말 나온 김에 해버려야겠다 해서 “선생님, 정치 그만하십시오” 그랬어요.

손석춘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동의하세요?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을 평가한다면요.
지선 동의하지 않아요. 파병했던 것도 동의하지 않고, FTA도 그래요.
손석춘 그런데 왜 그렇게 한미FTA를 하려고 했을까요
지선 그 자리에 가면 불안하죠. 불안하니까 이라크에 파병해서 미국 비위를 맞춰줬겠죠. 파병한다고 하면 뭔가 우리 맘대로 좀 할 수 있고, 조금 얻어냈을 거예요. 소소한 거라도요. 그래서 파병을 한 거 같아요. 추측인데, FTA 같은 것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으니까 하지 않았겠는가 생각해요. 사실 노무현 씨도 한 게 없잖아요. 진짜 없어요.
손석춘 한 게 없다고 똑같이 비판하면서도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혹독한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조금 부드럽네요?(웃음)
지선 좀 짠해요. 지금 그분이 그렇게 죽어서 그런 것 같은데, 돌아가신 분한테 할 얘기는 아니고 예의 없는 소리지만, 그분이 살았으면 지금 욕 무지하게 먹을 거예요.

손석춘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떠세요, 이명박 대통령은 굳이 평가하고 싶지 않으시죠?
지선 저건 ‘인간 말종’이에요. 저분은 솔직히 말해서 스님으로서 할 얘기는 아닌데 개짐승만도 못한 사람이에요. 4대강 안 된다고 전 국민적인 반항에 부딪혀서 촛불항쟁이 일어났을 때, 안 한다고 했잖아요. 그래놓고 전라도 가서 영산강 시찰을 하고 영산강에 무엇을 해놓겠다 하고 그랬죠. 만일 민주당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떼어놓고 반대를 했으면 못 했겠습니까? 민주당에서 하는 척만 하고 안 했어요. 영산강을 시찰할 때 박준영 전남지사가 영산강 사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잖아요. 그 때문에 반대가 수그러들었어요, 반대가. 민주당에서 입 다물어버리고 그래서 한 거예요, 4대강 사업이. 내가 민주당에 아주 못되게 얘기했죠. 정세균 씨가 대표할 때 당신이 민주당의 세균이라고 아주 못되게 욕을 했거든요.(웃음) --- 「8장 김대중과 노무현을 보는 스님의 눈」 중에서

손석춘 그럼 진보정당은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 통합진보당이 있고 진보신당도 있습니다.
지선 중생들의 한계인데, 사회주의 이론이나 공산주의 이론이, 이론이 나빠서 망한 건 아니잖아요. 인민의,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정치가 안 되고, 이론으로는 있지만 그 정치를 펴지 못해서 공산당 하겠다는 사람들이 망한 거지요.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론이 나빠서 망한 건 아니에요. 언제든지 다시 솟아납니다. 문제는 진보정당도 거꾸로 가는 운동이라는 거예요. 어른한테, 지도자한테 제대로 물려받은 운동이 아니라는 거예요. 전통과 가르침을 받은 내력 있는 운동이 아닙니다.

지선 그래서 운동권이라는 것이 자기 수련과 자기 수행을 통해서, 불교로 말하면 보살정신은 아니라 하더라도 대승정신은 있어야 합니다. 유교로 말하면 군자에 버금가는 정신이 있어야 하지요. 운동할 때도 ‘거꾸로 가는 운동’ 이야기도 했습니다만, 모든 운동단체를 만들 때 그 지역에서 깨끗하고 덕망 있는 사람이 앞에 서야 합니다. 지금은 사회가 서양 중심이되다 보니까 모두 자기가 해먹기 급급해요. 운동권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고 이 자리까지 왔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러거든요. 그것은 영웅의식이나 호걸의식, 자기 명예를 위해 운동을 출세의 장으로 활용하는 출세의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보살의 경지에 가고 전인적인 인격체가 될 때 운동하라고 하면 언제 운동을 하라는 것이냐,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배울 때 그렇게 배우면 됩니다. 그리고 지도자가 모델을 보여주면 그걸 보고 따라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런 모델이 될 만한 케이스가 우리 정치에 없어요, 지금까지 그래요. 꾸중하면서 하라고 강요한 사람도 없고, 판만 벌어지면 좌우 제쳐놓고 자기가 그 자리에 서버리는 거예요.
--- 「9장 진보운동이 모셔야 할 세 스승」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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